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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미사] 구엔 반 투안 추기경과 성찬례 -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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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24 ㅣ No.1612

[빛과 소금]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 구엔 반 투안 추기경과 성찬례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하다 2002년 9월16일 오랜 암 투병 끝에 하느님 품으로 떠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구엔 반 투안 추기경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희망과 기쁨을 삶으로 증언한 분이었다. 그는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한 교황청의 성직자들 앞에서 행한 사순 피정에서 ‘희망’이란 주제로 자신의 삶과 신앙에 관한 아름다운 증언을 들려주었다.

 

베트남이 공산화된 후 당시 사이공의 부주교였던 반 투안 주교는 1975년 성모승천대축일에 체포된 후, 무려 13년이란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그 가운데 초기 9년은 독방에 갇혀 지내야만 했다. 언제 풀려날지 알 수 없는 극도의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그에게 ‘기다림’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수감 생활 초기에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을 견디기가 더 힘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무엇보다 목자 잃은 양떼와 같았던 사랑하는 신자들과 교회 공동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괴로움에 휩싸이곤 했다. 당시 8년의 사목경험을 가진 젊은 주교로서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시작하고 꿈꿨던 자신의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온 주님의 음성이 그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왜 그렇게 근심하느냐? 너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을 구분해야만 한다. 네가 이루었고 계속해서 하기를 바라는 모든 것은 훌륭한 일이고 하느님의 일이기도 하지만 하느님은 아니란다. 하느님께서 네가 이 모든 것을 포기하길 바라신다면 즉시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하느님을 믿어라! … 네가 선택한 것은 하느님이지 하느님의 일이 아니다!”

 

이 내면의 빛은 그의 마음에 새로운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는 이 체험을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살고자 다짐했던 자신의 첫 마음을 성숙시키는 기회로 삼았다. 그리하여 매 순간순간을 온 사랑을 담아 자기 생애의 마지막 순간처럼 살기로 결심한다.

 

‘나는 기다리지 않으리라.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면서 살리라.’

 

하지만 창문도 없는 감방의 고립된 환경 속에서 이 결심을 유지하기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13년이라는 오랜 수감 생활 동안 반 투안 주교를 영적으로 지탱시켜 준 두 가지 중요한 실천이 있다.

 

첫 번째 실천은 자신이 기억하는 성경 말씀을 감옥의 방바닥에 써놓고 깊은 관상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곧 매일 마음속에 떠오르는 한 구절의 성경 말씀을 되뇌며 하루 종일 그 의미를 곱씹고 또 곱씹는 것이다. 이 꾸준한 실천을 통해서 그는 자기 삶의 영원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기도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얻는다. 또 하나의 실천은 날마다 세 방울의 포도주와 한 방울의 물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미사를 거행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의 제대였고 주교좌성당이었다. 그는 후에 감옥 안에서 봉헌했던 이 가난하고 소박한 미사가 자기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사였다고 회고했다. 미사에서 이루어지는 주님과의 일치는 그의 삶에서 유일한 희망의 근거였다.

 

“성체성사는 내 안에서 매일 거행되는 그리스도의 탄생이며 그분과의 깊은 일치의 표현이자 내 힘과 삶의 원천입니다.”

 

반 투안 추기경의 이 감동적인 일화들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중심인 말씀과 성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우리에게도 종종 삶이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반 투안 추기경의 눈부신 모범을 기억하고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한 꾸준한 기도와 성체성사의 은총에 우리의 마음을 의탁하도록 노력하자. 어떠한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사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2017년 2월 19일 연중 제7주일 인천주보 4면, 김기태 사도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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