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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사목] 임계장 이야기와 교회: 은퇴 후의 삶은 더는 쉼을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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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26 ㅣ No.1232

[경향 돋보기 - 「임계장 이야기」와 교회] 은퇴 후의 삶은 더는 쉼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찍이 노동은 하느님께서 형벌로서 인간에게 부과하신 것이었다.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은 수고하여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마치 평생 노역형이 부과된 무기수처럼. 그래서일까? 우리는 스스로가 불쌍하였는지 은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동안 수고스럽게 일한 자신을 위로하면서 이제는 좀 쉬어도 된다고. 하지만 은퇴를 하면 정말 고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쉬어도 되는 것일까?

 


은퇴 그리고 그 뒤에도 일하는 현실

 

‘100세 인생’, ‘인생 이모작 시대’라고 흔히 말한다. 말이 쉽지, 온갖 정성을 들여 인생의 추수를 마친 다음 좀 쉬려고 하니 또 다른 농사를 지으라는 심리다. 거기다 한번 지어 본 경험이 있는 같은 작물이면 좋겠지만 이번에 또 완전히 새로운 작물을 기르란다.

 

게다가 천형인 노동도 감당하기 힘든데 거기서 생겨나는 우리끼리의 충돌로 고달프기까지 하다.

 

사실 언제 은퇴한다고 보아야 할지 애매하다. 은퇴자가 고령이리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법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그 전에 일을 그만두는 때도 있다. 55-64세 인구가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둔 평균연령을 살펴보면 60세보다 10년은 적은 49.4세이다. 이에 따르면 사실상의 은퇴 시기는 49.4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나이를 고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노인의 사전적 의미는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지만 연령상으로 정확히 몇 세인지는 알 수 없다. 법이나 정책에서 노인으로 규정하는 연령도 천차만별이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에 따르면 고령자는 55세이다.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은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므로 이때의 노인은 60세 이상인 사람이다. 통계청은 ‘생산가능인구’ 대상 연령을 15-64세로 계산한다.

 

은퇴자가 은퇴한 뒤 쉬지도 못하고 일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경제적 이유일 것이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노인 빈곤율이란 6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중위 소득의 50% 미만을 버는 이의 비율이고, 중위 소득은 소득 규모를 한 줄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 오는 소득을 말한다. 65세 이상 한국인 43.8%의 소독은 중위 소득의 반에 미치지 못한다. 이때 노동은 생계와 직결되며 은퇴라는 것은 생각할 여지도 없게 된다.

 

비단 빈곤한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노후 보장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고자 한다. 누구나 은퇴 이후에도 그전과 같거나 비슷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국민연금 등 노후 보장을 위한 공적 제도가 있지만 지급 시기나 액수 면에서 볼 때 간극이 존재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법률상 정년은 60세 이상이다. 반면 연금제도상의 노령연금이 지급되는 시기는 점차 늦춰지면서 65세에 이르게 되었다. 법 규정상으로만 비교해 보더라도 연금 개시가 필요한 시점과 지급이 실제 이루어지는 시점 사이에 5년의 시차가 발생한다. 물론 사실상 은퇴 시기를 49.4세라고 보면 그 시차는 더욱 커진다.

 

지급 액수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연금에 따른 노령연금을 받더라도 이는 은퇴 전의 소득 수준을 보장할 정도는 아니다. 소득 대체율이 생애 평균 소득액의 40-4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퇴 전의 소득 수준을 유지하려면 국민연금 외 다른 수단을 강구하여야 하는데 이 또한 여의치 않다. 부모가 성년이 된 자녀의 대학 등록금, 취업하기까지 용돈, 결혼 자금까지 대 주는 상황이니 자신을 위한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노후를 준비할 여력이 없다. 결국 은퇴하고도 일자리를 찾아 전전할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이 은퇴한 재취업자를 대하는 방식

 

은퇴자의 사회참여가 확대됨에 따라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일자리 부족 문제와 불법적이고 부당한 대우, 이른바 ‘갑질’ 문제다.

 

일자리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질적인 면도 떨어진다. 사회의 노인 일자리 공급보다 일하고자 하는 노인이 훨씬 많기 때문에 정부는 해마다 단기적인 임시 일자리들을 양산해 낸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노인 일자리 공급도 수요의 절반에 채 미치지 못한다.

 

민간 부문의 공급도 공공 부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민간 부문에서 주로 노인이 많이 채용되는 분야는 임시직, 계약직이라고 하는 비정규직이다. 고용노동부의 ‘감시단속적 근로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 경비원으로 취업 중인 근로자 가운데 60대가 63%를 차지하고, 70대 이상도 11%에 이른다고 한다.

 

단시간 근로의 경우 60대 이상 연령층의 비중이 높다. 이른바 단기적이고 임시적 일자리에 대해서만 은퇴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여기에 몰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서는 또한 편법적이고 불법적인 대우가 판을 친다. 노동법이 정한 내용을 교묘히 어기거나 아예 대놓고 어긴다는 말이다. 은퇴 뒤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이중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비정규직으로서 받는 고용의 불안정성과 동시에, 은퇴해야 함에도 여전히 생계 유지를 위해 다시 생활 전선에 뛰어든 약자로서 받는 부당함도 감내해야 한다.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여 부르는 말) 이야기」에서 언급하듯이 노동법의 사각지대이자 편법이 난무하는 일터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업무량은 그대로 둔 채 고용 인원을 줄이거나, 업무상 재해가 발생해도 이를 무시하기 일쑤이다. 관리 계약서에 명기되지 않은 업무를 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휴게실이나 작업장 같은 업무 환경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새로운 현실을 어떻게 마주할까

 

고령인 근로자라면 근로자로서뿐 아니라 고령에 대해서 더욱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할 터인데 오히려 그 반대 상황에 놓였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까?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주로 언급된다.

 

일자리 측면에서는 고령자 친화적 일자리의 발굴과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일자리 개발이 절실하다. 공공 부문에서 단기적 임시 일자리를 창출하여 공급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민간 분야에서 안정적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환경과 기반이 조성되어야 한다.

 

일자리 창출은 일자리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작업뿐만 아니라 기존의 일자리와 은퇴자를 어떻게 잘 연결할 것이냐와도 관계가 깊다. 은퇴자들에게는 일자리가 부족하고 회사는 인력난을 겪는 까닭은 직업 알선에 있어 부조화(미스매칭)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정년 연령의 재설정 또는 폐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리라 예상된다. 대법원은 지난해 육체노동으로 일할 수 있는 최고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한 바 있다. 현재 60세 정년 규정과 내용적으로 배치되는 결정이다. 물론 정년 연장이나 폐지는 청년 일자리 문제와 맞물리므로 세대 간 합의와 연대가 필요하다.

 

갑질 문제는 비단 고령자나 은퇴자 등의 문제만은 아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아직도 직업에 귀천이 있으며 이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적 인식과 풍조가 남았음을 보여 준다. 이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이 신이 내린 형벌이라면 직업은 그 죄명에 불과하다. 그럴진대, 직장에서의 역할과 직함이 퇴근하고서도 이어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나의 역할은 그 역할이 주어진 곳에서 끝나는 것이다. 퇴근 뒤 사회 속에서의 역할은 또 다르게 주어진다. 그 지역의 어른이자 원로로서, 그리고 좋은 이웃으로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노년기에 새로운 역할을 찾는 것이 성공적으로 늙어 가는 데 있어 필수적 조건이라 한다. 새로운 역할 찾기는 공식적인 취업뿐만 아니라 자원봉사, 종교, 취미 활동 등 비공식적 활동까지 모두 아우른다. 노동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없더라도 개인적으로 의미 있고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을 수 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가치의 다양성이 인정되고 가치의 척도도 새롭게 자리매김하여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율법은 그분의 아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배려와 존중, 인간 사이의 권리와 의무를 규율하는 법도 결국은 배려와 존중이라는 정신으로 요약될 수 있다. 노동법을 지키기 어려운 이유가 그 내용이 어렵고 잘 몰라서라면 배려와 존중의 정신으로 다가가면 된다. 강자와 약자와의 관계가 아닌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법률의 핵심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더욱더 ‘일을 권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더는 쉴 수가 없다. 특히나 고령자에게 일을 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산가능인구의 비율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초 통계청에서 발표한 ‘장래인구특별추계: 2017-2067년’에 따르면, 50년 뒤에는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46.5%를 차지하게 되어 생산가능인구의 비율(45.4%)보다 많아질 것이라 한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추세가 일자리 감소 추세를 앞선다면 고령자에 대한 노동시장의 참여 요구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언젠가 은퇴를 한다. 내가 당신과 다르지 않고 내가 곧 당신이 될 터이다. 일자리를 두고 세대 간 갈등도 빚어질 수 있지만, 고령 노동에 대한 해법은 세대 간의 상호 이해와 역지사지의 정신에서 출발한다. 은퇴자에 대한 존중은 곧 자신의 미래에 대한 존중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 장우찬 – 노동법을 공부했고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교양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람과 일의 관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경향잡지, 2020년 9월호, 장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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