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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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 성 프란치스코 수녀회 영성의 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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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3-12 ㅣ No.619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 성 프란치스코 수녀회 영성의 사도직

 

 

시대적 요구

 

1949년 수녀회가 창설된 후 회원 양성에 주력함과 더불어 사도직으로써, 콜베 성인과 창립자 신부님이 꼰벤뚜알 프란치스꼬 수도회 회원이었던 만큼, 자연스레 꼰벤뚜알 프란치스꼬 수도회의 사도직을 지속적으로 도와주게 되었다.

 

주로 전쟁고아들을 돌보았던 성모의 기사원은 지금도 수녀원 가까운 위치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만 기존의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양육형태에서 현재는 이혼가정이나 가정불화로 인한 아이들이 주거하면서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생활하고 대학입학 혹은 취업 등 사회에 진출하기 전까지의 생활공간으로 그 양상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때로는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데 성공한 선배들이 방문하여 재정적 도움이나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 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곳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을 때, 원장 신부님의 말씀 속에서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절로 듬뿍 묻어나왔던 생각도 난다. 한편으로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양상만 달라진 채 여전히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에 대한 복지가 필요한 상황들에 대해 마음이 씁쓸하였다.

 

이렇듯 고아와 노인들을 돌보던 가운데 어느 정도 회원 양성의 기반이 된 본회가 카리스마에 부응하기 위한 사도직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하였다. 수도회가 나가사키에 자리한 만큼 자연스레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먼저 떠올렸고 나가사키 시에 알아보던 중, 마침 전쟁 후 어느 때보다도 사회복지시설의 필요성이 요구되던 시기에 지역사회가 본회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사업을 위탁받게 된다. 이리하여 1961년 첫 사도직인 지적장애인 시설이 본원 바로 옆에 자리 잡게 된다.

 

그 당시에는 일본도 사회복지수준이 발달이 되지 않은 상태여서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 부족과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들이 많았다. 수녀원 근처에서 실제로 위험상황에 직면한 이들이 발견되고 그들이 보호될 수 있도록 거주공간이 필요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장애인 복지시설 설립 구상과 함께 지자체의 도움으로 건립에 착수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건물을 짓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기에 여러 장애에 부딪혔다. 일례로 시설을 짓기 위해서 몇 가지 필요조건을 검토하던 중 애초 마련된 부지에서 물줄기를 찾아내지 못하는 결정적인 난관에 부딪혔다.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지역에 어찌 건물을 올릴 수 있으랴! 더욱이 생활공간으로 자리할 장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창립자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간절한 청원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요셉 성인의 전구를 청하면서 기도했는데 정말 기적적으로 새로운 물줄기를, 그것도 물을 풍부히 길어 올릴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어려움들, 특히 환경적이나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마다 요셉 성인을 통한 주님의 도우심으로 잘 해결되었다고 한다.

 

 

수도회 모토

 

본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수도회에서 지은 요셉 경당이 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수녀님들이 가서 요셉 성인께 기도를 드리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미사를 드린다. 이는 창립자 신부님께서 요셉 성인께 전구의 기도를 청하면서 약속한 3가지를 이행하겠다는 관례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3가지란 첫째, 요셉 경당을 지어 그곳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일, 둘째, 요셉 성인과 관련된 제의 마련, 마지막으로 요셉 성인께 대한 기도와 묵상에 관련된 책자 완성이다.

 

이러한 발자취들을 통해 예수님의 양아버지이시며 성모님의 배필이신 요셉 성인에 대한 신심과 성인들의 통공에 대한 창립자 신부님의 순수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콜베 성인께서도 마찬가지셨으리라 생각된다. 원래부터 폴란드 국가가 성모님께 대한 깊은 신심이 있기에 당연히 성모님의 배필이신 요셉 성인에 대한 공경과 신심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본원 바로 옆 미사카에 원(園)의 설립 후, 본회의 사회복지사업이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마다라, 요부코, 오이따, 사가 등의 여러 지역에 장애인 시설, 양로원, 유치원, 고아원 등의 복지사업이 수도회 사도직의 주를 이루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느 노(老)수녀님께 들은 바로는 예전에는 사회복지 일이 지금보다 많이 힘든 때였던지라 수녀님들이 사회복지 외에 다른 분야의 사도직을 희망하며 창립자 신부님께 건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신부님은 “많은 사람이 사회복지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데 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만약 성모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하고 꾸짖으셨다고 한다.

 

한편 그 즈음 교황청 대사께서 나가사키에 방문하셨다. 그 때 본회의 사도직을 보며,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활동 수도회가 세상 안에서 봉사와 나눔을 통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며 격려와 함께 사회복지 분야의 지속적인 사도직 수행을 당부하셨다고 한다. 그래선지 모르지만 지금도 본회가 본당 사목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콜베 성인과 창립자 신부님은 진정한 프란치스칸 제자답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님 말씀을 영성의 한 모토로서 사도직을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것이다.

 

[성모기사, 2019년 3월호, 오정순 비비안나(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 성 프란치스코 수녀회 수녀, 해외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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