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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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의 해9: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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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0-11 ㅣ No.1254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의 해]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줍니다

 

 

수능 성적표를 들고 집으로 향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너무나도 초라하고 보잘것없던 시험 결과에 엄청난 자괴감이 들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이걸로 뭘 할 수 있지…? 아버지, 어머니는 얼마나 실망하실까…. 아, 정말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다. 그동안 공부한 건 다 헛수고였어. 그렇게 기도도 열심히 했는데, 너무해….’ 수많은 생각이 들면서, 마음은 점점 수치심과 분노로 가득 찼습니다. 그렇게 집 앞까지 도착했습니다. ‘이 성적표를 어머니께 어떻게 보여 드리지? 아, 얼마나 실망하실까…. 아들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화를 내시면 어떻게 하지?’ 도저히 어머니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사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크게 울었습니다. 그렇게 울면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온갖 나쁜 생각들이 저를 더 깊은 구렁으로 몰고 갔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이불 너머로 전해지는 따뜻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 울고 있는 제게 다가오신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저를 안아주셨습니다. ‘괜찮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 이런 흔한 위로조차 건네지 않으시고, 그냥 꼭 안아주셨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때 흘린 눈물은, 가슴이 벅차올라 흐르는 눈물이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저를 꼭 안아주셨던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을 덮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스어 원문에서 말하는 ‘모든 것을 덮어 준다.’는 말은 ‘판타 스테게이’(panta stegei)라는 말로, 다른 이의 잘못에 ‘침묵을 지킨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각자의 기준에 따라 서로를 판단하고, 또 완고한 마음으로 타인을 심판하려는 경향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와 아픔을 줄 때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우리의 모습에서 사랑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결점과 허물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퍼뜨리지 않고 사랑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를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 준다는 말이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무작정 눈감아 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별없는 자들이 그 사람의 진실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못하도록 사랑으로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며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곁에 머물며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덮어 주는 사랑’이란 이렇게 사랑의 보호 아래, 다른 누군가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허물을 바로잡게 되리라는 신뢰,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그를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앞서 말씀드린 따뜻한 어머니의 포옹은 단순히 저의 부족함을 눈감아 주신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저의 결점을 드러내어 바로잡아 주시려는 훈계나 가르침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당시 제 안에 가득 차 있던 수치심과 자괴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저를 짓누르지 않도록 지켜 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께서는 꽁꽁 얼어붙어 있던 제 마음을 마치 당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제 어깨에 얹어 주시듯 당신의 따뜻한 가슴으로 다정하게 덮어 주셨습니다. 실제로 그리스어 ‘스테게인’(stegein)은 ‘지붕’이나 ‘덮개’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입니다. 지붕은 집에 들이닥치는 비바람, 그리고 스며드는 습기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줍니다. 사랑은 다른 누군가에게 보호와 안식을 줄 수 있는 지붕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남편이나 혹은 아내를 바라보며, 또 자녀와 부모님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판단으로 그들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물론 그들에게도 부족함이나 결점은 있습니다. 매일 말썽 피우는 자녀를 바라보면 한숨만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부족함만 바라보지 말고, 더 큰 차원에서 상대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기대하기보다, 하느님의 은총이 이슬비처럼 그들에게 젖어 들 수 있도록 기도하며 믿고 기다려 주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또 나 자신의 힘으로 상대방을 변화시키겠다는 욕심도 버려야 합니다. 그가 스스로 부족함을 마주하고 하느님 안에서 변화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도록 곁에서 사랑 가득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말로써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의 혀는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악한 것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야고 3,8) 그러기에 우리의 입은, 언행을 정화하여 참으로 다른 이들을 살릴 수 있는 은총의 입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분명 우리 안에 주어진 사랑의 능력을 더욱 키워 줄 것입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18년 10월호, 사목국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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