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강론자료

2018-05-23.....연중 제7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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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5-23 ㅣ No.2223

연중 제7주간 수요일 - 짝수 해

야고보 4,13-17             마르코 9,38-42

2018. 5. 23. 이태원

주제 : 세상에서 사는 자세

나에게 좋은 것으로 다가올 훌륭한 계획을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복한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계획을 세우고 똑같이 실천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현실의 삶에서 자신이 바라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첫인상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은 합니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좋은 표양을 줄 행동을 우리가 하고 살까요? 질문에는 언제나 대답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마음과 생각은 간절하다고 해도 실제로 행동은 쉽지 않습니다.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세상에서 돌아가는 현실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나의 삶에 좋은 일만 생기도록 놔두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일이 시작되기 전에 김칫국부터 마시는 행동이 너무 빠른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될 행동은 적게 하면서, 그저 나에게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라기에 생기는 일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실천은 하지 않고, 나의 행동이 만들 좋은 결과를 미리 말하는 것이 문제이겠습니까?

 

오늘 독서에서 들은 야고보 사도의 말씀은 부정적이다 못해 아쉽습니다. 그게 첫인상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부정적인 일이 일어나라고 고사(告祀,= <>액운이 없어지고 행운이 오도록 술··고기 등을 차려놓고 신령에게 비는 제사.)지내는 내용으로 본다면, 그것은 야고보사도에게 억울한 일입니다. 드러난 표현을 통해서 역설의 의미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 안에 담겨있을 역설의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의 일만 믿지 말고 하느님의 뜻이 작용하는 삶의 여유도 주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세상에서 얼마나 대단한 존재이기에, 하느님께서 활동하실 삶의 공간을 우리가 줄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 내 맘에 꼭 들게 행동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도 내 맘에 들지 않을 때가 있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 내 맘에 들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대하는 자세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서, 좋은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라는 사도 요한의 말을 예수님은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향해 드러내신 올바른 삶의 자세를 우리는 당연히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보다 더 나은 삶의 결과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하느님을 만족하게 하실 수 있을까요? 우리가 현실에서 드러내는 모습은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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