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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성화와 한의학: 웨이덴의 성화와 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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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17 ㅣ No.496

[성화와 한의학] 웨이덴의 성화와 웰다잉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예수님의 그림보다 숨을 거두신 다음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예수님의 그림이 개인적으로 더 좋다. 그중에서도 로히에 반 데르 웨이덴의 그림이 좋다.

 

그림을 감상하자. 화면을 세로로 삼등분해서 보자. 화면 가운데에는 예수님을 비롯해 세 사람이 있다. 연장을 든 한 손으로 십자가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예수님 시신의 왼 팔꿈치를 받치고 있는 일꾼이 있다. 또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의 양쪽 겨드랑이를 수건으로 감싸고 있는, 화려한 옷차림에 수염을 기른 사람이 있다. 그이가 니코데모다.

 

화면 왼쪽에는 성모님을 비롯해 네 사람이 있다. 혼절하신 성모님의 오른쪽 어깨를 두 손으로 부축하고 충혈된 눈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요한이다. 그 뒤로 여인 둘이 있다. 예수님의 이모와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일 것이다(요한 19,25 참조). 한 여인은 수건으로 두 눈을 가린 채 울고 있고, 한 여인은 한 손으로 성모님의 머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성모님의 왼쪽 겨드랑이를 부축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세 사람이 있다. 예수님의 다리를 붙들고 있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은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다. 그 뒤 대머리에 턱수염을 기른 사람은 이 그림을 주문한 성당의 사제로 추측되는데, 그릇을 들고 있다. 니코데모가 가지고 온 몰약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맨 끝 예수님의 발치에 서서 두 손을 깍지 낀 채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숙여 예수님의 시신을 응시하는 여인은 마리아 막달레나다.

 

 

성녀 마더 씨튼을 개종시킨 성화

 

이제 예수님과 성모님의 모습을 보자. 예수님의 시신은 상체가 거의 60도로 굽어 있고, 무릎 아래에서 발끝까지는 거의 ‘一’자로 길게 늘어져 있다. 가시관을 쓴 피투성이 머리는 꺾여 있고, 얼굴은 창백하다. 성모님의 몸은 끔찍한 충격으로 시신처럼 쓰러져 있는데, 예수님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은 돌아가신 예수님보다 더 창백하다. 성모님의 늘어진 왼팔과 예수님의 처진 오른팔은 닿을 듯하지만 닿지 않은 채 평행을 이룬다.

 

얼마나 기막힌 그림인가! 그래서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예수님을 그린 수많은 그림 가운데에서도 눈물범벅인 이 그림이 개인적으로 좋다.

 

십자가에서 내려지시는 예수님의 그림에 감동한 이들이 무척 많겠지만 그 가운데 신실한 성공회 신자였던 뉴욕 출신의 엘리사벳 씨튼 부인이 있다. 그는 남편을 막 여읜 뒤 이탈리아의 가톨릭 신자인 안토니오 부부의 호의를 받던 중에 피렌체의 성 마리아노벨라 성당에서 ‘십자가에서 내리심’이라는 이 성화를 보고 크게 감동한다. 성녀의 전기에 따르면 이때의 감동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한다.

 

“이 안에 내 영혼이 잠기는 것만 같았다. 십자가 밑에 있는 마리아의 표정, 칼에 찔린 듯 죽음의 그늘 속에서 고통에 싸인 그 모습이 주님의 천상적 평화와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마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고통이 마리아에게 내려온 것 같았다. 그 그림을 떠나기가 참으로 어려웠고, 그 뒤 몇 시간 동안 눈을 감고 그 모습을 떠올려 보곤 했다.”

 

이후 여러 가지가 동기가 되어 씨튼 부인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사랑의 씨튼 수녀회 창설자가 된다.

 

 

존귀한 삶, 존엄한 죽음

 

참으로 큰일을 한 다음 마더 씨튼은 세상을 떠났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오래도록 겪고 있던 그를 보고 곁의 수녀가 매우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위로할 정도였단다. “아마 연옥을 이 세상에서 치르게 하신 거예요. 그리고 죽음 뒤에는 곧 당신의 평화와 안식의 품으로 받아들이실 거예요.”

 

죽음은 이토록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고통을 덜 받고 죽는 것을 복으로 여긴다. 웰다잉(Well-dying)은 그래서 나온 말이다.

 

「동의보감」의 첫머리는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가장 영귀한 존재”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그러니 영귀한 존재답게 존엄하게 죽음을 맞아야 한다. 그러려면 존귀하게 살아야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존귀한 삶, 그것이 웰빙(Well-being)이다.

 

「동의보감]」은 인간의 수명이 하늘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다고 했다. 그러나 천명에만 의지하여 개탄하지 말고, “반드시 인사(人事)를 다하여서 천의를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인사’란 ‘마땅히 사람으로서 해야 할 바’를 말한다. 이것이 웰빙이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질병만을 다스리는 것,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무병장수만을 바라는 것은 근원을 버리고 끝을 좇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수양이라고 했다.

 

“세상만사가 모두 공허하고, 종일토록 이룩하는 것이 모두 다 망상이요, 나의 몸 또한 헛된 환영이요, 화와 복 모두가 ‘무유’(無有)에 돌아가고, 생사가 모두 꿈과 같은 것”을 깨달아야 존귀하게 살고 존엄하게 죽을 수 있다고 하였다. 대나무 그림자는 섬돌을 쓸어도 먼지가 일지 않고 달그림자는 연못 깊숙이 들어가도 파문이 일지 않듯이, 흔들림이 없는 마음의 고요함을 가지라는 것이다.

 

마더 씨튼은 47세에 평소처럼 비오 7세의 기도문을 외우며 숨을 거둔다. “지극히 의로우시고 지극히 높으시며 지극히 사랑스러우신 하느님의 뜻은 모든 일에서 이루어지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모든 것 위에 영원한 찬미와 영광을 받으시기를!”

 

훗날 바오로 6세 교황은 마더 씨튼을 미국의 첫 성인으로 시성한다. 존귀한 삶과 존엄한 죽음은 이런 것이리라.

 

* 신재용 프란치스코 - 한의사. 해성한의원 원장으로, 의료 봉사 단체 ‘동의난달’ 이사장도 맡고 있다. 문화방송 라디오 ‘라디오 동의보감’을 5년 동안 진행하였고, 「TV 동의보감」,「알기 쉬운 한의학」 「성경과 의학의 만남」 등 한의학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을 여러 권 냈다.

 

[경향잡지, 2018년 2월호, 신재용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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