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강론자료

마르코복음 1,21-28 예수의 권위 (2018. 1. 28. 연중 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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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8-01-26 ㅣ No.2190

예수와 제자들은 가파르나움으로 갔다. 안식일에 예수는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모든 사람은 그의 가르침에 크게 놀랐다. 그는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악령 들린 사람이 회당으로 들어와서 소리쳐 말하였다. “나자렛 예수야, 네가 우리를 어쩔 것이냐? 너는 우리를 없애려고 왔느냐?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안다. 너는 하느님의 거룩한 외아들이다.” 예수가 악령에게 말하였다. “소란 피우지 말고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악령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킨 후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서로 말하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것은 새롭고도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악령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구나.” 예수에 관한 소문이 갈릴래아 전 지역으로 빠르게 퍼졌다.

 

예수는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부추긴다.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하면 살 것이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예수는 백성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한다. 이로써 예수의 권위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이 확증된다. 이에 비해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면서 자신을 백성 위에 높인다. 백성은 스승의 지혜를 배우느라 정작 하느님을 사랑하지는 못한다. 이로써 율법학자들의 권위는 세상에서 온 것임이 확증된다.

 

예수의 권위는 성령의 능력을 발휘하되 율법학자의 권위는 악령의 행실로 표출된다. ‘악령은 자아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욕망의 콤플렉스를 가리킨다. 악령 들린 사람은 자아의 분열을 일으킨다. 악령은 자신을 우리로 번갈아 지시하는데 이는 자아의 분열을 나타낸다. 예수에게 있어서 나는 나다.’ 예수의 자아는 오직 성령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령 들린 사람에게 있어서 나는 우리이다.’ 그의 자아는 다른 사람들의 평판, 또는 다양한 종류의 욕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자아의 분열은 곧 자아의 상실을 의미한다.

 

악령 들린 사람은 성령의 능력을 지닌 하느님의 외아들을 안다.’ 악령의 다중인격과 거룩한 외아들은 서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악령은 늘 소란을 피운다. 그리하여 율법학자들은 복잡하고도 어려운 언어로 백성을 압도하면서 사람들이 주는 재물과 명예를 사랑하되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른다. 이에 비해 예수는 말을 아끼고 행동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범을 보인다. 그는 재물과 명예에 초연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리하여 성령은 악령을 소멸시킨다. 악령은 사람의 자아를 떠나는 즉시 소멸된다.

 

사람은 악령을 버리고 성령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아의 부정을 겪는다. ‘경련은 자아의 부정 또는 거짓 자아의 죽음을 상징한다. 악령과 성령, 사람의 권위와 하느님의 권위, 거짓 자아와 참된 자아는 공통점이 조금도 없다. 양자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이르러 예수에 관한 소문은 갈릴래아를 넘어 온 지구를 뒤덮고 있다. 예수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성령을 받아들이면서 악령에서 해방되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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