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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정진석 회고록68: 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 기념 바오로의 해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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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01 ㅣ No.480

[추기경 정진석] (68) 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 기념 ‘바오로의 해’ 성지순례


바오로 사도의 숨결을 느끼다 신자들과 함께여서 의미 더해

 

 

- 정진석 추기경이 야외 미사 중 강론하고 있다.

 

 

정진석 추기경은 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 기념 ‘바오로의 해’를 맞아 2008년 11월 서울대교구 홍보국과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공동 주최한 크루즈 성지순례에 참여했다. 바오로 사도를 비롯한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그리스, 터키 일대를 둘러보는 성지순례였다. 

 

오랜만의 성지순례였다. 그리스, 터키 지역은 그가 신학생 때부터 성지순례를 꿈꿨던 곳이지만 시간과 기회가 없었다. 특별히 그는 바오로 사도 탄생 2000년을 기념하는 ‘바오로의 해’에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지순례를 떠나게 되어 무척 기뻤다. 정 추기경이 성지순례를 간다는 소식에 300여 명의 신자들이 함께하기 위해 성지순례를 신청했다. 보통 성지순례를 하면 30명 남짓 떠나는데, 그 10배가 넘는 인원이 몰리는 바람에 인솔을 담당한 홍보국과 가톨릭평화방송측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례자들은 10박 11일간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선포지를 걸으며 믿음 안에서 새로 태어난 바오로 사도를 따라 오늘날의 사회 환경에서 세상 모든 이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사도가 될 것을 다짐했다. 정 추기경을 중심으로 307명 순례자들은 부서진 돌멩이와 풀 포기마다 서려 있는 초대 교회 사도들의 발자취를 좇아 진지한 순례 여정을 걸었다.

 

 

300여 명 순례단과 사제 10여 명

 

성지순례는 바오로 사도 선교 여정의 일부인 코린토와 아테네, 테살로니카, 필리피, 에페소 등지와 사도 요한과 관련된 파트모스 섬, 요한 묵시록의 7대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300여 명의 순례단을 지도하는 사제단도 10여 명에 이르렀다. 지도 신부단은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통해 순례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도록 인도했다.

 

정진석 추기경(왼쪽)이 미사 중 사제들과 손바닥을 마주 치며 평화의 인사를 하고 있다.

 

 

정 추기경은 첫 기착지에 도착하자 순례단과 똑같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신자들 속에서 함께하려고 노력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자들과 식사하고 강의를 들었고, 일과 중간중간에 있는 레크리에이션도 함께했다. 순례에 참가한 신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정 추기경에게 친근감을 표현했다. 신자들 사이에 함께하는 정 추기경도 마치 소풍 온 학생처럼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신자들은 정 추기경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같이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 추기경도 순례단 신자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이름도 불러주면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뿐만 아니라 식사나 이동 때 매번 다른 조에 들어가 한 사람이라도 더 알려고 애를 썼다.

 

 

틈만 나면 마이크 들고 열강을 

 

예정에는 없었지만 정 추기경은 곳곳에서 마이크를 잡고 수차례의 열강을 이어갔다. 정 추기경은 보통 원고를 철저히 준비해서 강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순례지에서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전해 주는 즉흥 강의를 펼쳤다. 오랜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끼고 체험한 내용이어서 오히려 신자들은 더 몰두해서 강의를 들었다. 어떤 신자들은 정 추기경에게 듣고 싶은 주제를 먼저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정 추기경은 틈만 나면 마이크를 들고 열강을 했다. 이 강의를 중심으로 나중에 책 한 권을 엮기도 했다.

 

- 정진석(왼쪽에서 세 번째) 추기경이 신자들과 함께 강의를 듣고 있다.

 

 

정 추기경이 강의에서 강조한 내용은 한결같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생의 진리에 눈 뜨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워진 바오로 사도를 따를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다음으로 가정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강의했다. 그는 현대의 가정 문제를 지적하며 부모가 자녀에게서 존경받을 수 있도록 올바른 부부 관계와 부모 역할을 정립해 줄 것도 당부했다.

 

“부모는 가정에서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돈과 권력으로 사람을 온전히 움직일 수 없다. 진정한 권위는 무력ㆍ금력과 전혀 다른 것이다. 권위는 상대가 존경하는 마음이 있을 때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존경하는 마음은 그럼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있을 때 비로소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고, 상대를 존경할 때 그 사람은 권위가 있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때리기만 하고 미워한다면 자녀는 부모를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의 권위도 서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위대한 여정을 따라 순례를 하고 있다. 그럼 바오로 사도는 어떻게 해서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있는가. 2000년 전에 태어난 이가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이끌고 있는가. 무슨 힘으로…. 그 힘은 바로 권위다. 권위는 존경에서 나오고, 존경은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럼 사랑은 어떻게 해야 생겨나는가. 사랑은 상대를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청소년들이 인기 스타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모가 자녀에게 기쁨을 주고 그들을 인정할 때 사랑이 생겨나는 것이다.”

 

정 추기경은 이번 순례를 ‘정화’와 ‘조명’의 영적 순례의 길로 승화시켜 참된 신앙 안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했다. 정 추기경의 진정성 있는 강의는 듣는 신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순례 여정 중 정 추기경은 에페소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집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성모님의 집에서 미사를 시작하는 정 추기경은 시작부터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정진석 추기경(왼쪽)이 에페소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집에서 사제, 수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 추기경은 미사 강론에서 “이곳에서 자연히 우리 신앙의 어머니, 그리고 우리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그분들을 만난 것은 기적이다. 그리고 기적은 우리 삶 곳곳에 있으며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기적이란 믿음의 결과가 아닌가.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주십사 간절한 기도를 드리자”고 했다. 정 추기경은 미사 후 야외 제대 옆 성모님의 집 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한참을 기도했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 정 추기경은 깊은 상념에 잠겼다, 순례하는 동안 정말 오랜만에 신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새로운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마치 새로운 시선을 갖고 새로운 것에 눈을 뜨는 느낌이었다. 그에게는 많은 신자들과의 성지순례가 아주 특별한 체험이 됐다. 작별의 시간이 되자 신자들은 정 추기경에게 다가와 아쉬워했다.

 

“추기경님! 일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체험했습니다. 함께해주셔서 모든 게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성지순례 동안 하루하루가 지나보면 은총이 아닌 순간이 없었습니다. 건강하세요.”

 

정 추기경도 일일이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인사를 나눴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은 그동안 정이 들어서인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 매일을 순례 떠나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의 삶 자리를 성스러운 땅, 성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은총을 하느님께 청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0월 1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사진=서울대교구 홍보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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