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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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신앙 감각을 일깨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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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07 ㅣ No.528

[레지오 영성] 신앙 감각을 일깨우자

 

 

진해 중앙동성당의 성모당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나의 어린 시절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성모당에서 복사단원으로서 함께 기도를 드리고 기합(?)을 받던 기억은 너무나 또렷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웃에 살던 절친한 친구의 권유로 ‘어린이 복사단’에 들어가게 된다. 친구는 사제에 대한 꿈을 지닌 야무진 아이였다. 이를 인연으로 레지오 마리애 ‘하늘의 문 Pr.’에 입단한다. 어린이 복사단의 필수 과정이다.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묵주기도’(묵주신공)를 접했다. 친구는 곧잘 했지만 나는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시간은 나에게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활동보고 때문이다. 보고사항의 주 종목은 당연히 전례봉사(미사복사)였다. 더불어 회합 전에 친구와 함께 성당주변을 돌며 휴지를 주웠다. 활동보고를 위한 핫 아이템(hot item)이었다. 그러나 일주일간 정해진 묵주기도를 드리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모른다. 묵주기도는 늘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대부분 주어진 기도분량을 채우지 못했고, 쁘레시디움 단장과 함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자연스럽게 그러나 지극히 강제적으로(?) 성모당을 찾았다.

 

그러나 기쁨도 있었으니 친구와 회합을 마친 후에 즐기는 닭꼬치 파티였다. 회계였던 친구와 함께 비밀헌금으로 종종 동네 포장마차를 찾았던 것이다. 공금유용이다. 나중에 용돈으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부모님으로부터 벼락같은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몸담았던 ‘하늘의 문 Pr.’이 마산교구 최초의 레지오 마리애 Pr.인 것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이 시절의 기억들은 중고등부시절에도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든든한 기초가 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철없던 시절의 레지오 단원 생활이었으나, 그런 시간 속에서 나의 신앙 감각(sensus fidei)이 자연스레 성장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사제의 삶에 응답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신앙 감각은 무엇이 참 하느님의 것인지 식별하게 해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 선포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 안에 깊이 감추어진 신앙 감각을 일깨우신다. 신앙 감각은 하느님 백성을 진리 안으로 이끄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심어주신 신앙의 본능으로, 무엇이 참으로 하느님의 것인지를 식별하고 참된 지혜에로 나아가게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요청한다.(「복음의 기쁨」 119-120항 참조)

 

세속성과 개인주의가 교회 안으로 깊이 스며든 지금, 신앙 감각이 무디어지거나 상실되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가지처럼 살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레지오 단원들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레지아 마리애의 정신을 점차 무디어져가게 하고 있다. 쁘레시디움 회합을 세속의 모임쯤으로 여기는 생각들, 힘든 활동과 간부 직책을 불편해하거나 거부하는 모습 등이 무디어진 레지오 마리애 정신의 단적인 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선출되신 후 가톨릭교회 내에 작용하고 있는 돈과 권력의 위험성에 대하여 분명한 어조로 언급하였다. 이는 지난 방한 때에(2014. 8.14-18) 한국 주교들과의 만남에서, 한국 교회가 번영하였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일하기 때문에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인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까지도 받아들이는 유혹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일어나 비추어라」 p.27참조) 말씀의 의미가 서로 일맥상통한다.

 

교회 안에서 권력에 의한 지배와 저항의 구조가 존재하고, 돈의 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복음의 기쁨」 55항 참조)이 뿌리 내리는 현실은 결코 지엽적 문제가 아니다. 교회를 강력하게 위협하는 본질적이고 매우 중요한 문제로 교회가 반드시 극복해 내어야 할 현실이다.

 

지상의 것들이 아닌 천상의 가치를 추구하고 사는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우선적 과제가 신앙 감각의 회복이다. 신앙 감각은 신앙생활의 기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이 나의 삶속에 어떤 가치로, 어떤 위치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신앙 감각의 생명력은 달라진다.

 

 

내가 무엇에 마음을 두고 사는지, 열정을 어디에 쏟는지 성찰해야

 

내가 무엇에 마음을 두고, 마음을 쓰고 사는지 살펴보자. 나의 시간과 열정을 어디에 쏟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런 성찰들은 현재 나의 신앙의 현주소를 알려주고, 나의 신앙 감각이 얼마나 무디어져 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얼마 전 저희 교구장 주교님께서 교구 사제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내가 사제라면, 적어도 하루의 70~80%를 사목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 그냥 주어진 미사, 고해성사 등을 봉행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비단 사제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은 아니다. 하느님 자녀 모두가 각자의 처지에서 깊이 성찰해 봐야 할 주제이다. 주어진 것을 행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의 신앙과 삶에 더욱 풍성한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무엇을 비우고 무엇으로 채워나가야 하는지를 묻고 답해야 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내 삶의 중심축을 내가 아닌 주님께 두는 삶 ? 내 안에 사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삶을 통해 신앙 감각의 생명력을 더욱 풍부히 할 수 있다.

 

과거 신앙 선조들과 순교자들의 삶은 복음의 기쁨에 흠뻑 물들어 있었다. 이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심어주신 신앙의 본능, 곧 신앙 감각이 살아있는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고, 무엇이 참으로 하느님의 것인지를 식별할 수 있었다는 표징이다(「복음의 기쁨」 119항). 그래서 그분들은 온갖 시련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음을 기억하자.

 

모든 믿는 이의 마음에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신앙 감각을 일깨우자. 그래서 세상이 주는 달콤함의 유혹에 도전하고, 하느님 나라를 쟁취하며 섬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복음이 되어주는 성모님의 군대로 거듭나기를 요청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7월호, 이원태 클레멘스 신부(마산교구 사목국장, 마산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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