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세계교회ㅣ기타

추기경 정진석 회고록52: 은총의 해, 대희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04 ㅣ No.456

[추기경 정진석] (52) 은총의 해, 대희년


새천년 맞은 교회, 구세주 탄생 기쁨 나누며 ‘새로운 시작’

 

 

- 1999년 12월 25일 낮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대희년 개막 예식과 기념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정진석(가운데) 대주교. 가톨릭평화신문 DB.

 

 

1999년 12월 24일 자정,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전 세계 순례자들과 취재진이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성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聖門)을 열었다. 희년에만 여는 성문이었다. 역대 교황들은 망치로 이 문을 열었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손으로 성문을 열었다. 교황이 손으로 성문을 연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잠시 동안 기도했다.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 있던 수만 명의 순례자는 하느님 나라로 들어감을 상징하는 청동 성문이 열리자 우렁찬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감격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큰 박수를 받으며 대성전 안으로 입장한 교황은 제단까지 걸어가는 동안 여덟 차례나 멈춰 서서 어린이들을 축복하기도 했다.

 

특별히 이날 성문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상징하기 위해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서 가져온 향료와 꽃으로 장식됐다. 또 개막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독특한 분위기의 일본 명상 음악이 연주돼 눈길을 끌었다. 교황은 그해 예수 성탄 대축일부터 2001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까지를 ‘은총과 평화의 대희년 기간’으로 선포했다.

 

교황은 이어진 개막 미사에서 “그리스도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이며,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우리들 가운데 오셨다”며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사건인 강생의 신비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 봉헌예절에서는 한국 어린이가 교황에게 꽃다발을 증정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1999년 12월 22일 정진석 대주교가 가톨릭사회복지회 사제들과 함께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자를 위한 ‘2000년 대희년 맞이 성탄 거리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교황이 미사를 마친 후 지팡이에 몸을 지탱한 채 성 베드로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 자리에 함께한 순례자들은 감흥에 젖어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참으로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새로운 세기 새천년기는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구세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축하 분위기는 한국 교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바티칸의 성문 개방을 시작으로 한국 교회는 24일 성탄 자정 미사와 25일 각 교구별 대희년 개막 예식을 거행하면서 은총의 대희년이 개막된 기쁜 소식을 신자와 지역민들에게 알렸다. 한국 교회의 전국 교구장들도 성탄 메시지에 하나같이 회개를 통한 새로운 삶을 역설했다.

 

정진석 대주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12월 22일 서울역 지하도에서 가톨릭사회복지회 사제들과 함께 ‘노숙자를 위한 2000년 대희년 맞이 성탄 거리 미사’를 봉헌했다.

 

정 대주교는 IMF 이후 우리나라에 급속도로 늘어난 노숙자 700여 명과 함께한 이 날 미사 강론을 통해 “비록 지금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여러분의 처지를 가슴 아파하고 여러분을 위해 항상 기도드리는 이웃이 있음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노숙자 중에는 미사와 함께 오랜만에 고해성사를 보는 이도 있었다. 미사 후에는 노숙자들에게 식사와 성탄 선물을 나눠줬다.

 

- 1999년 12월 25일 대희년 선포식 미사에서 정진석 대주교가 복음서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제공.

 

 

이어 12월 25일 낮 12시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대희년 개막 예식과 기념 미사를 거행했다. 명동 가톨릭회관 앞마당에서 사제단과 신자 3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희년 개막 예식을 시작했다. 대희년 선포 칙서 ‘강생의 신비’가 낭독된 후 참석자들은 복음서를 앞세우고 향로를 든 향로지기와 십자가를 따라 명동대성당 입구까지 행렬했다. 이어 성당 문이 열리고 복음서가 현시되자 참석한 사제와 신자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대희년의 시작을 기뻐했다.

 

“대희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용서를 믿고 죄악으로부터 회개하여 거듭 새롭게 태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2000년 대희년이 우리 개개인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가 지난날의 어두운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탄과 대희년을 맞이하면서도 우리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먼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올바로 삶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 정의를 세우고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선의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뜻을 모아야 합니다” 

 

정 대주교는 명동대성당에서 새천년을 맞이하자니 자연스레 지난 세월 힘겹고 어려웠던 시간들, 그러나 은총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새천년기를 맞이한다고 생각하니 또 한 번 하느님의 신비를 느꼈다.

 

명동대성당은 어린 시절부터의 추억이 구석구석에 묻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명동대성당에 들어설 때면 가끔 옛 추억이 떠올랐다. 전례 중에 틀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서 있는 어린 진석부터 이념의 혼란으로 깊은 고뇌의 밤을 지새웠던 청소년기의 진석, 그리고 다시 신앙을 회복해 가슴 벅차게 하느님을 찾았던 청년 진석, 굽이굽이 길을 돌아 신학교를 마치고 서품을 받기 위해 제대에 엎드린 새 신부 정진석이 겹쳐 보였다.

 

정 대주교는 새천년기를 맞이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하느님은 왜 나를 이곳에 다시 부르셨을까? 부르심에는 항상 목적이 있기 마련인데 어떤 목적으로 나를 이곳 서울로 부르셨을까 하는 것이 묵상의 주제였다. 정 대주교는 청주에 살면서 청주를 떠난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저 청주에서 여생을 마치는 것이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생각지도 못한 장소로 하느님은 자신을 부르셨다. 정 대주교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6월 4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



2,27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