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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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어리석은 마음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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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09 ㅣ No.506

[레지오 영성] 어리석은 마음 안고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수선한 정국과 사회분위기 속에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지향하며 살고 있는가? 과연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 물끄러미 십자가를 바라보며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저 자신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죄송하기에 고개 숙여 용서를 청해봅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다시 일어설 용기를 달라고 말입니다.

 

사실 마땅히 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차일피일 뒤로 미룬 것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대부분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 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핑계야 여러 가지 댈 수 있겠지만 가만히 따지고 보면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싫어서 안 한 것입니다. 그렇게 나의 마음이 완고해지고 메말라져 있었습니다. 왜 그랬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세상살이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하기를 게을리 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조용히 기도 안에서 주님을 만나기보다는 시끌벅적한 세상 소리에 귀 기울이며 맞장구치는 일에 더 마음을 썼습니다. 그렇다보니 점점 내 생각과 판단에 집중하게 되고 다른 이의 잘못을 찾아내고 지적하는 일에 골몰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자연스럽게 나의 올바름을 주장하는데 마음을 쓰면서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해간 것입니다.

 

시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시편 95,7-8) 그동안 주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니 저의 마음이 얼마나 완고해졌을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 다시 주님 앞에 꿇어 기도하며 용서를 청합니다. 이제는 세상의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님 지켜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저의 마음이 완고해지는 일이 없도록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우리 마음이 완고하여 온갖 세상걱정에 마음 빼앗겨

 

사순의 시기를 보내면서 우리를 위해 수난하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온통 자신의 생각과 주장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 앞으로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우실까? 도무지 이해하려 들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저들을 바라보며 말없이 가야만하는 그 길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실까? 아마도 유일하게 그 마음을 헤아리며 아파하시고 위로하시는 분은 성모님 한 분 뿐일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분을 따르던 제자들조차도 자신의 두려움에 갇혀서 그분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를 갖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저 자신은 제 생각에 골몰한 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내가 짊어져야할 십자가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잘 짊어지고 나갈 힘과 용기를 청합니다. 이 역시 나의 옳음에 빠져 있는 어리석음인 줄 모르고 말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셨는데 또 무슨 십자가가 남아 있단 말입니까? 주님의 마음을 도무지 헤아리려 하질 않으니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저 내가 나의 옳음에 빠져서 세상살이를 어떻게는 내 생각과 판단과 힘과 능력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그래서 그 십자가를 지고 힘겨워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실 뿐입니다.

 

나의 옳음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주님의 올바르심을 믿고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인생에 주어진 십자가의 무게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직 우리 마음이 완고하여 이를 믿지 못하고 온갖 세상걱정에 마음을 빼앗긴 채로 애써 힘겹게 살아갈 따름입니다.

 

 

성령의 이끄심 믿고 그저 내어 맡기길

 

성모님은 이미 아셨습니다. 성모님은 이미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셨고 즉시 마음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고 이끌어주시는데 걱정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마음도 다르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처절하고 안타깝고 힘겨워 보이는 십자가의 길이지만 구원을 향한 주님의 길이기에 아무 걱정할 것이 없음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예수님의 눈길을 바라보며 그 마음을 함께 읽어주시고 함께 안타까워하시며 온갖 형언할 수 없는 위로를 건네셨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걸어가셔야 할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같은 연민의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희망하십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믿고 그저 내어 맡기며 주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말입니다. 더 이상 나의 옳음에 빠져서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성령을 거스르는 일이 없기를 말입니다. 이미 성령께서 인도하시는데 이를 거슬러 나의 옳음대로 가고자 한다면 그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그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겠습니까? 그저 내려놓으면 될 일인데 아직도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주저하고 있으니 이 어리석음이 언제나 깨우쳐지려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3월호, 이근덕 헨리코 신부(수원교구 복음화국장, 수원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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