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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8: 2세기 (3) 이단사상과 훼손된 영성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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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16 ㅣ No.880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8) 2세기 ③ 이단사상과 훼손된 영성 생활


형제에서 적으로, 그리스도교를 파고든 이단사상

 

 

- 그리스도교는 외부 세력의 박해에 이어 그리스도교 정통 교리와 생각을 달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인한 이단사상으로 내적 시련을 겪어야 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작 ‘최후의 심판’, 1536,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 가톨릭 굿뉴스.

 

 

그리스도교가 설립되고 100년 남짓 지나지 않은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이미 여러 외부 세력의 박해로 온갖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외부 억압은 외견상 느낄 수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외적인 위험을 극복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정통 교리와 생각을 조금 달리하는 그리스도인이 생겨나면서, 이단사상은 새롭게 내적인 위험으로 다가왔습니다.

 

내부에서 발생하는 이단사상은 초기에 발견하기 어렵고 어느 정도 진행되어야 알 수 있기에, 교회가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단사상을 따르던 그리스도인은 한번 훼손한 영성 생활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영지주의 - 선별적 구원관과 윤리적 방탕주의

 

그리스도교는 2~3세기에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의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다양한 고대 철학 사조와 이방 종교 사상에 젖어 있다가 개종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존에 친숙했던 생각들을 그리스도교 교리에 무리하게 적용했습니다. 따라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겉으로 보기에 성경에서 나오는 이야기들과 용어들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구조들과 비슷하게 비쳤습니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그들의 주장은 정통 신앙에 위배되는 결정적인 오류들을 많이 담고 있었습니다. 리옹의 주교 이레네우스(Irenaeus Lugdunensis, 130/40~200/202경)는 저서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에서 2세기에 대표적인 영지주의자로 바실리데스(Basilides, 117~138)와 발렌티누스(Valentinus, ?~160?)를 소개했습니다.

 

영지주의는 이원론, 점성술, 종교혼합주의 및 밀교(密敎) 신비사상 등을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그중에서 이원론이 중심축을 이룹니다. 즉, 플라톤 사상과 유사하게 온 세상은 본래 선한 영적 세계와 악한 물질 세계로 나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 세계를 지배하는 미지의 하느님과 선한 본성을 공유하던 인간이 악한 물질 세계에 예속되면서 자유를 잃고 부정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 구원 문제가 발생하는데, 영지주의는 그리스도교가 기존에 가르치던 교리와 상반되는 해결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면 모두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보편 구원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영지주의는 미지의 하느님에 대한 ‘영지’(gnosis), 즉 ‘인식’을 가져야만 물질 세계에서 해방되어 영적 세계를 향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은총보다는 인간이 이미 소유한 신적인 본성을 깨닫는 인식에 의존한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지주의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몇몇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고 언급함으로써 선별적인 구원을 주장했습니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인간이 물질 세계에 예속된 것은 개별 인간의 독자적인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타락에 의한 총체적인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악한 본성에 대해 각자 책임질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선별적인 구원관과 더불어 사람들로 하여금 ‘윤리적 방탕주의’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리스도인이 전통적인 영성 생활을 실천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몬타누스주의 - 과도한 예언 운동과 거짓 종말론

 

2세기경에 출현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에 위협을 주었던 또 다른 이단사상으로 몬타누스(Montanus, 2세기 활약)가 창시한 몬타누스주의(Montanism)가 있었습니다. 이방 종교 지도자였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몬타누스는 환시와 신탁에 기반을 둔 예언 운동을 펼쳤습니다.

 

2세기 들어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초대 교회 공동체와 같은 열광적인 분위기도 시들해졌습니다. 이에 몬타누스주의는 그리스도인에게 초대 교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자고 독려하기 위하여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다가왔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이 이단사상은 천년왕국을 맞이하기 위하여 깨어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몬타누스주의는 초대 교회의 열정을 복구하기 위하여 철저한 금욕 생활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즉, 자선과 단식, 독신 생활과 순교 등을 실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게다가 몬타누스주의는 시한부 종말론까지 언급하는 무리수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한 차례 정했던 시간에 종말이 오지 않아 기세가 꺾이기도 했으나, 이것을 만회하려고 더욱 엄격한 도덕적인 삶을 요구하면서 한동안 위세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몬타누스주의는 과도한 예언 운동과 거짓 종말론을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신비 생활을 왜곡시켰으며, 무리한 금욕 생활을 강조하면서 수덕 생활을 흐트러뜨렸습니다.

 

 

마르치온 - 극단적인 금욕 생활과 왜곡된 그리스도론

 

마르치온(Marcion, 85~160)은 이단사상을 설파했다기보다는 교계제도에 대립하는 신흥종교를 세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집안 출신이었던 마르치온은 이미 고향에서 교의논쟁으로 물의를 일으켜 추방당하자 로마로 왔으나, 로마에서도 정통 교리에 어긋나는 내용을 가르쳐서 역시 추방당했습니다. 그러자 마르치온은 독자적인 교회를 설립했고, 마르치온이 죽은 후에도 한동안 이 교회가 유지되었습니다.

 

마르치온의 신학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구약성경을 통해서 접하는 공정하고 벌하시는 하느님과 동일한 하느님일 수 없다고 철저하게 구분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신약성경에서 구약의 하느님을 조금이라도 암시하는 구절이 있으면 모두 삭제함으로써 루카복음서 일부와 바오로 서간 일부만 성경으로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선하신 하느님을 동경한 마르치온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세상을 떠나 철저하게 금욕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금욕 생활은 너무나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서 결혼 생활을 거부했으며 금주(禁酒)를 실천하기 위하여 성찬례에서 포도주 사용을 거부했습니다.

 

신약과 구약을 분리하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마르치온의 신학은 왜곡된 그리스도론을 탄생시켰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오시기 전에 태어났던 사람들의 죄를 사할 수 없었으며, 그리스도조차도 타락한 세상에 들어올 수 없었으므로 강생의 신비를 거부하면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했습니다.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은 올바른 신앙 고백에 기초해서 실천해야 합니다. 2세기에 나타난 다양한 이단사상은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을 왜곡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영성 생활로 나아가려면 자신이 올바른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지를 먼저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월 15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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