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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지리] 이스라엘 이야기: 에인 케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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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21 ㅣ No.3244

[이스라엘 이야기] 에인 케렘


엘리사벳 찾은 마리아, ‘마니피캇’으로 주님 찬송



성모 방문 성당 경내에 설치된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 동상.


예루살렘 남서쪽 외곽으로 나가면 ‘에인 케렘’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포도원의 샘’이라는 뜻으로, 철마다 꽃이 피고 푸른 수목이 우거져 무척 아름답다. 이른 봄에는 편도꽃이 만발해, 어린 요한이 뛰놀며 아몬드를 따먹었을 광경을 상상하게 한다. 에인 케렘은 성모님이 나자렛에서 수태고지를 받은 뒤 엘리사벳을 찾아 보신 곳이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에인 케렘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 지명이지만(루카 1,52에는 ‘유다 산골’로만 언급되었다), ‘벳 케렘’(예레 6,1)과 같은 곳이라고 추정한다. 히에로니무스 성인은 벳 케렘이 예루살렘과 트코아(예루살렘 남쪽)사이의 한 산지로 보았는데, 위치도 얼추 들어 맞는다. 벳은 ‘동네’ 또는 ‘집’, 케렘은 ‘포도원’을 뜻하니, 지명도 에인 케렘과 비슷하다. 예루살렘 성전까지는 걸어서 하루가 조금 안되는 거리이므로, 즈카르야가 사제 직무 때마다 왕래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즈카르야가 아내의 잉태소식을 들은 것도 성소에서 분향을 하던 도중이었다(루카 1,8-20).

에인 케렘의 한 등성이를 올라가면, 중턱에 ‘성모 방문 성당’이 나온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여름 별장으로 전해지는데, 엘리사벳이 다섯 달 동안 숨어지낸 곳이라 한다(루카 1,24 참조). 암브로시오와 토리노의 막시모 성인은, 엘리사벳이 늙은 나이에 임신하자 당황한 나머지 외딴 산골로 몸을 숨긴 것이라고 보았다. 아니면, 즈카르야가 수태고지를 받고도 믿지 않아 입이 함구되었으므로, 엘리사벳 또한 때가 될 때까지 주변에 알리지 않으려고 은둔했을 가능성도 있다. 마리아도 그로부터 여섯 달 뒤, 곧 자신의 수태고지를 들을 때에야 소식을 접하고(36절) 길을 떠난다.

나자렛에서 에인 케렘까지는 백 킬로미터 이상 되는 거리다. 갓 임신한 여인이 오려면 꼬박 며칠이 걸렸을. 당시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졌다는 두려움보다, 하느님이 자신을 도구로 삼으셨다는 기쁨에 넘쳤던 것 같다. 그래서 먼 길을 마다 않고, 요한을 품게 된 환희에 젖은 엘리사벳을 방문한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 성령으로 가득 차고, 태중 아기는 기뻐 뛰놀았다. 요한이 즐거워한 까닭은 마리아 태안의 주님과 가까이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천사의 예언(루카 1,15ㄴ)대로 요한은 태중에서 이미 성령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성령으로 가득 찬다는 것은 예언의 은사를 받게 되었음을 뜻한다. 성령이 주시는 은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예언의 은사다(1코린 14,1). 요한은 주님의 날을 준비하려고 세상에 나온 엘리야 같은 예언자였다(말라 3,23 마태 11,14). 엘리사벳도 예언자적 은사를 발휘한다. 엘리사벳은 당시 존경받는 사제의 아내이자 노년기에 접어든 부인이었다. 그런데 연배로나 지위로 한참 아래인 마리아에게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라고 축복한다. 마리아가 방문하게 된 자초지종을 듣기도 전이었는데 말이다. 엘리사벳의 축복은, 우찌야 장로가 민족을 구한 유딧에게 ‘그대는 이 세상 여인들 가운데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가장 큰 복을 받은 이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시기를 바라오’(유딧 13,18)라고 축복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곧, 엘리사벳은 유딧을 축복한 말은 마리아에게, 하느님을 축복한 말은 태중 성자에게 돌린 것이다. 예언의 은사로 모든 것이 주님의 뜻임을 미리 알았던 까닭이다. 그래서 루카 복음에서는 엘리사벳이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른 첫 인물이다.

에인 케렘 전경. 사진 중앙에 보이는 곳이 세례자 요한 탄생 성당이다.

 

 

이에 마리아는 ‘마니피캇’으로 답한다(라틴어 성모찬송의 첫머리인 ‘찬송하고’라는 말이 제목이 되었다). 이 찬송에서 마리아는 자신을 ‘주님께서 들어 높이신 비천한 자’의 전형으로 본다(루카 1,48.52). 주님의 자비(54-55절)는 성조들에게 약속하신 ‘계약’을 가리킨다. 곧, 마리아는 보잘것없는 자신이 계약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음을 기뻐한 것이다. 주께서 나자렛 시골의 어린 처녀를 택하시어, ‘아브라함을 통해 세상 만민이 축복 받으리라’(창세 12,3)는 약속을 실현시키려 하시기 때문이다. 다윗과 맺으신 영원한 계약(2사무 23,5)도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려 하니(루카 1,32-33), 마리아는 기쁨에 넘쳐 주님을 찬송하고 엘리사벳이 해산할 무렵까지 에인 케렘에 머물러 있었다(56절).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2월 20일, 김
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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