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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신약] 신약성경의 기도: 바오로 서간들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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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23 ㅣ No.3250

[신약성경의 기도] 바오로 서간들의 기도



이번 호는 바오로 서간들에 나타난 기도를 살펴볼 차례다. 바오로 사도가 바친 기도와 기도에 대한 그의 가르침이 상당히 많지만, 제한된 지면 때문에 네 가지 주제만 다루겠다.


‘은총의 우선성’과 감사의 중요성

은총의 우선성

바오로 사도의 다마스쿠스 회심 체험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혜로운 개입의 결과였다. 이 은혜로운 체험은 ‘은총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그의 신학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바오로 사도에게는, 죄인이었던 나자렛 예수를 이제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드님이며 주님으로 믿고, 희망하며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은총이었다! 인간의 업적(공로)에 대한 하느님 은총의 우선성은 바오로 신학의 기초이다.

감사의 중요성

은총의 우선성에 대한 강조는 자연스럽게 ‘감사’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다. 바오로 서간에서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서간의 구성에서 드러난다. 바오로 사도는 편지를 시작할 때 번번이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라는 축원 다음에 곧바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만큼 감사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내용으로 보면 바오로 서간에서 ‘감사’(그리스어로 ‘에우카리스티아’)는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그리스어로 ‘카리스’)에 대한 응답이다. 그래서 바오로에 따르면, ‘하느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다. 그리스도 신앙의 출발점은 인간의 행동(업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거저 베푸시는 호의, 총애)이기 때문이다.

감사의 배경 -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는 자녀들이라는 자의식!”

바오로 사도는 스스로 하느님께 감사하는 모범을 보일 뿐 아니라, 감사하라고 교우들에게 권고하면서,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그들이 얼마나 하느님께 사랑받았으며 또 받고 있는지를 강조한다(로마 1,7. 5,5; 콜로 3,12 참조).

그런데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하느님의 은총’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 속량(贖良)의 은총이다(로마 3,21-26 특히 3,24 참조). 그리고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서 최고조로 계시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주셨습니다”(로마 5,8. 이와 관련하여 로마 8,32.35.39; 요한 3,16; 1요한 3,16; 갈라 2,19-20; 2코린 5,14도 참조). 바로 이 사랑이 온몸을 불사르는 듯한 바오로 사도의 헌신적 선교활동의 원동력이었다. 바오로 사도가 세상 곳곳에 세우려고 했던 교회는 바로 이 사랑, 곧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서 찬양하며 증언하려는 공동체였다.


청원기도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

필리 4,6-7에는 ‘청원기도’에 대한 참으로 좋은 말씀이 나온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줄 것입니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는 ‘기도’에 관한 여러 단어(기도, 간구, 소원)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 ‘감사’도 크게 보면 기도의 한 유형이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꾸준한 기도생활’의 중요성이다. 걱정이나 근심이 가득할 때, 그것을 끌어안고 있지 말고, 아버지이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털어놓으라고 권고하는 것이다(마태 7,7 참조). 하느님께서 기도하는 그의 사정을 모르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께 사정을 알려드리라는 뜻이 아니라(마태 6,8 참조),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표현하라는 뜻에서 청원을 드리라는 것이다.

필리 4,6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청원기도를 바칠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감사’가 지난 날에 이미 베풀어진 은혜에 대한 회상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때 분명히 드러난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지난 날에 이미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회상할 때,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불안에서 풀려날 때가 많다.

7절에서는 6절에 묘사된 그런 ‘기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말한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 지켜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체험했을 이 말씀의 내용을 많은 신앙인도 체험하고 있다. 곧 의지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눈앞이 캄캄하게 막힐 정도로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며 간절히 기도드렸을 때, 많은 신앙인은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공동번역 성서)를 체험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꼭 이루어지는 것은 ‘청원한 내용’이 아니라, ‘하느님의 평화’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 아뢴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놀랍게도(‘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이’) ‘하느님의 평화’는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평화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기도를 위한 성령의 역할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로마 8,26-27).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조차 모를 정도로 나약한(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란 어떤 때일까? 몇 가지를 들어보자.

갑작스러운 큰 사고와 그로 말미암아 가족 친지들과 사별할 때, 너무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크나큰 실패를 경험했을 때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며”, 함께 탄식하신다는 로마 8,26-27의 말씀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삶의 근저에서부터’(23절의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라는 표현 참조) 신음하는 인간을 하느님께서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 성령을 통해 그들과 함께 해주시며 그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신다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령의 현존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도 불굴의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이다(특히 로마 5,5 참조).

로마 8,27은 하느님과의 참다운 친교(코이노니아)는 그분의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 따라서 기도가 올바로 이루어지려면 성령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물론 바오로 사도는 성령은 하느님과의 친교뿐 아니라, 동료 인간들 사이의 친교를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라고도 말한다(2코린 13,13; 필리 2,1 참조).

성령의 도움은 청원기도 때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흠숭[경배], 찬양, 감사, 참회, 탄원 등 하느님과 친교를 이룰 수 있게 하는 다른 모든 기도 방식에도 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알고 그분께 기도드릴 수 있게 하고(로마 8,15; 갈라 4,6 참조),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성령의 역할이다(1코린 12,3 참조).

로마 8,26-27을 근거로 말하자면, 우리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기도야말로 그리스도인이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기에 기도할 때에는 ‘성령의 임하심’을 먼저 청할 필요가 있다.


‘기도’와 ‘감사’와 ‘기쁨’의 상호관계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바오로 사도가 여기서 권고하는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태도는 그가 다른 편지들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감사’와 ‘기도’와 ‘기쁨’은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1테살 5,16-18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참다운 기쁨과 ‘복음의 기쁨’은 “감사하고”, “기도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다(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참기쁨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환난 속에서도 가질 수 있는 기쁨’이며 근본적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다).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선물)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어찌 감사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면에, 진정으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예컨대 자신의 존재와 소유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만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감사할 수 있으며 또 진정한 의미에서 기뻐할 수 있겠는가?

* 한 해 동안 ‘신약성경의 기도’를 집필해 주신 김영남 신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 김영남 다미아노 ? 의정부교구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과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를 가르치고 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교 신학부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특히 바오로 서간)을 전공하였다. 최근 「로마서」(성서와 함께, 2014년)를 저술했다.

[경향잡지, 2015년 12월호, 김영남 다미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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