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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구약] 구약성경의 물신: 풍우신 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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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18 ㅣ No.3594

[구약성경의 물신] 풍우신 바알

 

 

바알은 풍우신(風雨神)계열에 속한다. ‘풍우신’은 문자 그대로 ‘비바람의 신’이란 뜻이다. 풍우신으로서 바알의 의미를 살펴보면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왜 그토록 바알을 매혹적으로 생각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짧은 글은 고대 근동학이나 종교학적 정보보다는 신학적 시각에 충실할 것이다.

 

 

거룩한 권능의 비바람

 

최근 풍우신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슈베머(D. Schwemer)는 필자의 아카드어 선생이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슈베머에 따르면, 풍우신이 현현할 때 다섯 가지 자연현상, 곧 ‘비, 바람, 번개, 구름, 천둥’을 자주 수반한다. 이 가운데 두 가지 현상, 곧 ‘비와 바람’이 풍우신의 양면성과 거룩함을 대표하는 특성이다.

 

고대 근동인들은 기본적으로 농업과 목축에 의지했고, 그 시대에 비와 바람의 의미는 대단히 컸다. ‘바람’은 무척 강력하고 예측할 수 없는 힘이자 정치적 권력을 상징했다. 갑자기 몰아치는 큰바람은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대단한 파괴력을 지녔다.

 

하지만 ‘비’는 땅을 적셔 온갖 식물과 동물이 자랄 수 있게 하는 생명의 원천이었다. 중동의 건조한 기후에서 비는 자비와 사랑의 상징이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모순되는 두 가지 속성, 곧 비와 바람은 인간과 자연의 생존을 결정짓는 필수 요소였다. 또한 인간이 조작할 수 없는 자연현상으로서 신적 권능에 속한 것이라 믿었다.

 

그러므로 비와 바람을 한 몸에 지니고 자유롭게 부리는 풍우신은 ‘거룩한 권능(numinous power)’을 지닌 존재였다. 누구나 생존을 위해서 비바람의 신, 곧 풍우신에게 복종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비를 내려주어 생명을 키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적들을 폭풍처럼 섬멸하는 풍우신만 믿고 따르면 생명과 안전과 풍요가 보장되리라 믿었다. 풍우신 신앙이 고대 근동 전역에서 확인되는 이유다.

 

 

풍우신의 번역

 

고대 근동 신화 연구의 초기부터 학자들은 바알 등이 현현할 때 비와 바람과 천둥과 번개 등이 자주 수반함을 보고했다. 1925년 독일 학자 슐로비즈(H. Schlobies)는 이런 종류의 신을 ‘베터고트(Wettergott)’라고 불렀다. 독일어 ‘베터(Wetter-)’는 ‘날씨’를 뜻하지만, ‘악천후’라는 뜻도 있다. 독일 등 북유럽의 기후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이런 뜻이 붙었을 것이다. ‘고트(-gott)’는 ‘-신’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 신을 ‘날씨신’(또는 ‘기상신’)으로 옮기면 안타깝게도 오역이 되고 만다.

 

최근 영어로는 ‘폭풍우의 신(storm god)’으로 옮기는 추세다. 우리나라 일부학자들은 이를 줄여 ‘폭풍신’(暴風神)으로 부른다(필자도 이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폭풍신’으로 하면 또 오역이 되고 만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우리말 ‘폭풍’은 ‘매우 세차게 부는 바람’이요, 비슷한 말은 ‘왕바람’이다. ‘폭풍신’은 ‘비’의 요소를 포함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폭풍신’, 곧 ‘왕바람의 신’이라는 이름은 그 뜻이 정확하지 못하고 부족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다시 펴보면, ‘풍우’(風雨)는 한자어로서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첫째 뜻이 ‘바람과 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요, 비슷한 말로 ‘비바람’이다. 둘째 의미는 ‘바람과 함께 내리는 비’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풍우신’이야말로 ‘비바람의 신’의 양면적 성격을 직관적이고도 쉽게 나타내는 적절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풍우신

 

풍우신 계열의 신들은 고대 근동의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대제국의 중요한 신들이 많다. 그러므로 풍우신 계열의 신들은 정치적 · 종교적 영향력도 매우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알과 비슷한 속성을 지닌 풍우신들의 이름과 중요한 속성을 알아보자.

 

고대 근동학에 낯선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풍우신 계열의 신들을 두 부류로 나눠서 소개한다. 첫째는 고유한 풍우신들이고, 둘째는 풍우신의 속성을 후대에 흡수한 신들이다. 아래에서 소개하는 신들은 모두 중요한 신들로 하나씩만 다뤄도 많은 분량이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간략하게 나열한다.

 

고유한 풍우신의 대표 격은 수메르의 이쉬쿠르(dIskur)다. 이쉬쿠르는 아마 가장 오래된 풍우신으로서 풍우신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슈베머는 풍우신이라는 현대적 개념으로서 풍우신으로 직역할 수 있는 낱말을 고대 근동어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그나마 가장 가까운 낱말을 고르라면 이쉬쿠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밖에 시리아·필리스티아의 도시국가들과 아시리아에서 섬겼던 하다드(Hadad), 후르인의 테슙(Tessub), 히타이트인의 타루(Taru)가 고유한 풍우신이다. 하다드는 가장 넓은 지역에서 가장 오래 섬겨진 풍우신이자 바알의 아버지로서 바알에게 비바람을 부리는 능력을 물려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다음 호에서 하다드에 대해 조금 자세히 볼 것이다.

 

한편 히타이트의 이웃이었던 고대 그리스의 토르(Thor)는 이름이나 속성에서 타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요즘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토르가 바로 이 신이다).

 

본디 풍우신은 아니지만, 후대에 풍우신의 일부 속성을 흡수한 신으로는 바빌론의 마르두크(Marduk)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다양한 도시국가들에서 널리 섬겼던 엔릴(Enlil)이나 닌우르타(Ninurta)도 여기에 속하고, 이집트의 세트(Seth)도 풍우신의 속성을 비교적 많이 획득한 신이다. 그리고 바알은 이 두 번째 부류에 속한다. 바알은 풍우신의 거의 모든 속성을 흡수하여 ‘풍우신 바알’로 불려도 될 정도다.

 

이렇게 고대 근동 세계에는 다양한 풍우신이 존재한다. 풍우신은 지역과 시대에 적응력이 뛰어난 신이었고, 권력과 풍요를 약속하는 신이었으며, 고대 근동의 부강한 제국들에서 믿었던 중요한 신이었다. 후대에 풍우신의 일부 속성을 흡수하여 대중적으로 더욱 강한 영향력을 얻은 마르두크 같은 신들을 보면, 권력과 풍요를 약속하는 풍우신이 고대 근동에서 얼마나 대중에게 인기가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백성도 여느 백성처럼 권력과 풍요를 열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 백성의 일부가 외부의 화려한 세계에 눈을 돌려, ‘우리도 그들처럼’ 풍우신을 믿어서 더욱 부강한 나라를 만들자는 말에 설득당했던 정황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풍우신은 그만큼 매혹적이었고 대세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보편적 욕망’을 자극하는 신이었다. 그들은 시리아 · 필리스티아 지역의 강력한 풍우신이었던 바알에 마음이 끌렸을 것이다. 바알은 이스라엘인들의 눈과 귀로 가장 가깝게 체험할 수 있었던 풍우신이었다.

 

 

카르멜 산의 풍우신 경쟁

 

이런 풍우신을 이해해야, 카르멜 산에서 엘리야 예언자와 바알 예언자들이 대결한 ‘방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 대결은 풍우신 바알을 주님(야훼)께서 풍우신의 방법으로 승리하신 것이었다.

 

대결의 방법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다시 말해, 번개가 쳐서 장작에 불이 붙으면 이기는 것이었다. 엘리야는 바알 예언자들에게 바알의 방식, 곧 전형적인 풍우신의 방식을 제안한 것이다(1열왕 18,24 참조).

 

이 방법을 채택한 것 자체가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는 백성 앞에서, 그 백성이 마음을 뺏긴 바로 그 방식대로 당신을 드러내시기로 한 것이다. 백성이 하느님께 다시 마음을 돌릴 기회를 주시고자, 자신을 낮추시어 역사에 뛰어드신 것이다.

 

엘리야는 하느님께서 ‘풍우신 경쟁’에 뛰어드신 이유가 당신 백성을 위해서임을 분명히 말한다(이하 1열왕 18장).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주십시오”(37절).

 

엘리야는 제단 둘레에 고랑을 파서 물을 채우고 장작에도 물을 부었다(32-35절). 그리고 하느님을 불렀다. 그런데 결정적 장면에서 정작 그는 ‘풍우신 주님(야훼)’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36절)을 불렀다. 엘리야의 이 말은 주님(야훼)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다.

 

하느님께서는 풍우신적 대결에 응하여 승리하신 분이시지만, 본디 풍우신의 일종이 아니시다. 하느님께서는 먼 옛날 창세기의 조상을 선택하셔서 계약을 맺어주시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주신 유일한 하느님이시다.

 

구약성경은 주님의 대승을 이렇게 보고한다.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버렸다”(38절). 그리고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39절).

 

이렇게 대결과 승리의 동기는 풍우신적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런데 필자는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이 더욱 흥미롭다. 카르멜 산의 승리 직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놀랍게도 비바람이 몰려왔다.

 

엘리야 홀로 비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었다(41절). 그리고 종을 시켜 바다 쪽을 보게 했다(43절). 그러자 종은 “바다에서 사람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올라옵니다.”(44절)라고 보고했다.

 

성경은 “잠깐 사이에 하늘이 구름과 바람으로 캄캄해지더니,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45절)고 보고한다.

 

풍우신 바알을 완전히 꺾은 다음에 주님께서 풍우신처럼 현현하시는 이런 장면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미 풍우신 바알은 몰락하여 무력한 존재가 되었고, 주님만이 가장 강하신 존재라는 것이다.

 

*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고대 근동과 구약성경을 연구하는 평신도 신학자이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이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 위원이다. 저서로 「구약성경과 신들」과 「신명기 주해」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7년 2월호,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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