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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인물] 성경 속의 지도자들: 결점투성이인 외로운 지도자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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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03 ㅣ No.3343

[성경 속의 지도자들] 결점투성이인 외로운 지도자 노아

 

 

재난이나 지구 종말 영화의 주인공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만화에서나 나올 수 있는 슈퍼맨이고, 다른 하나는 그저 평범한 이웃, 그 가운데서도 좀 모자라고, 상처 받고 가족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인물이다.

 

슈퍼맨보다는 평범한 주인공이 더 감동을 주는 이유는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재난 앞에서 나와 우리 가족과 내 이웃은 어떻게 대처할지 하는 상상력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아의 생태적 사고방식

 

노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슈퍼맨보다는 오히려 그저 평범하고 조금은 내성적이고 어눌한 이웃집 아저씨에 가깝다. 사회의 중심부에서 힘과 재산을 자랑하는 권력가가 아니라, 조용히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특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다른 예언자들과 달리, 노아는 직접 방주를 만든 목수이자 선원이고 어부이기 때문에 신약시대에 이르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제자들의 사명을 암시하는 면도 있다. 요즘으로 보자면, 말 많은 지도자가 아니라 조용히 세상을 위해 손과 발을 움직이는 실무형 지도자에 가깝다는 뜻이다.

 

또 하나, 노아에게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생태적 사고방식이다. 흔히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지구를 관리’하는 우월적 태도로 우주를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시작한 뒤부터 셀 수 없이 자연을 훼손하고, 짐승들을 멸종시켰기 때문에 지금의 지구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노아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짐승을 빠짐없이 방주에 태웠다. 이러한 태도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지구와 우주 전체와의 조화보다는 조금은 치우친 인간본위의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유다 ? 그리스도교 교리에 청량한 생태적 사고방식을 환기시키는 노아의 지도력이 지금 우리에게 주요한 태도와 사고일 것이다.

 

 

신념과 도덕성을 갖춘 지도자

 

요즘 화성으로 이주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돈 많은 이들은 지구 종말을 대비하려고 지하 벙커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듣는다. 환경 파괴와 테러리스트들의 준동, 그리고 경제 불안 등, 지구촌에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소식이 하루도 빠짐없이 대중매체를 통하여 나오고 있으니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크게 봐서는 지구 전체, 작게 봐서는 내가 사는 공동체에 어느날 갑자기 통째로 엄청난 재난이 닥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까? 전쟁이나 지진, 그리고 세월호나 원자력 발전소 사고 같은 인재가 우리 공동체에 닥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확고한 신념과 도덕성을 갖춘 지도자의 지도력이다.

 

또한 그를 따라 성숙한 시민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보통 사람의 책임감일 것이다. 경제는 과거보다 발전했을지 모르지만 지난 수년 동안 따뜻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도, 성숙한 시민정신도 여물지 못해 길을 잃고 광야를 헤매는 우리에게 특히 노아의 선한 지도력이 다시 절박하게 필요해 보인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홍수가 나기 전에 노아는 많은 사람에게 홍수가 날 것을 준비하라고 경고한다. 성경에는 노아 다음에도 많은 예언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도자와 많은 사람은 예언자의 예언을 무시한다.

 

노아 또한 다른 예언자들처럼 홀로 방주를 준비한다.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채 다가오는 재난에서 살아남으려고 홀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외로운 지도자의 모습은 어쩌면 지금도 많은 지도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언뜻 보면, 선한 의도를 가진 우월한 지도자가 우매하고 악한 구성원들 때문에 고립되어 있는 형상이다. 인기가 없거나 무능한 지도자가 스스로 노아와 동일시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북한의 김일성 일가들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언제 북한을 침공할지 모르니, 북한 곳곳에 거대한 별장을 짓거나 외국에 계좌를 트고 돈을 빼돌리며 살아왔다. 다른 부패한 독재자들처럼 여차하면 자기들끼리만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 ‘노아’처럼 선구적 혜안이 있는 것이라 자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모습이 독재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간 한국의 적지 않은 문제의 지도자들 또한 입으로는 국민을 적의 침략에서 구하고, 침몰해 가는 한국경제를 살리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역설하면서 스스로는 노아 같은 외로운 지도자라고 진짜 믿고 있을 수도 있다.

 

 

조용히 맡은 소임을 다하는 지도자

 

성경 속의 노아는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거나 자기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그다지 큰 확신을 가지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아주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한다. 세를 과시하거나 다른 사람을 공포 분위기에 빠트리는 식의 나쁜 정치인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많이 외롭고 좀 별난 기인 분위기에 가까울 정도다.

 

하지만 그는 막상 큰 홍수가 닥치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욕심에 빠진 이들은 모두 큰 재난의 희생자가 되어 목숨을 잃지만 노아는 인내와 지혜를 발휘해 많은 생명을 살린다.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시끄러운 세력 싸움을 일으키면서 나와 너를 끊임없이 구별하며 전쟁 분위기로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속 좁은 지도자들이 아니라 노아처럼 조용히 자신의 소임을 다해서 가능한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이다.

 

그렇다고 그 지도자가 꼭 예수님이나 부처님처럼 완벽하게 신의 형상을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래서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자는 대목은 단순히 우스운 장면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극적 장치일 수 있다. 곧 인류를 종말에서 구한 지도자라도 어느 정도는 약점과 결점이 있다는 뜻이다.

 

벌거벗고 자는 노아의 모습을 본 자식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이불로 아버지의 몸을 가려준 속 깊은 자식이 있는가 하면, 어떤 자식은 그 일에 대해 바깥으로 나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 어쩌면 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지도자를 대하는 백성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

 

노아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비웃는 자식은 매스컴을 이용하여 전현직 대통령에 대해 무자비한 조롱과 인신공격을 퍼붓는 현재 우리 국민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있다.

 

 

지도자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야

 

세상에는 큰 위기를 앞두고 외롭지만 올바른 선택을 하는 지도자도 있고, 비겁하거나 비도덕적인 선택을 하는 지도자도 있다.

 

총체적인 불안과 공포 속에서도 지도자를 잘 따르며 현명한 선택을 하는 백성도 있지만, 모든 것을 지도자에게 미루고 자신의 일은 하지 않는 게으른 백성도 있다. 지도자도 국민도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다만, 자신들의 실수와 불완전한 모습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태도는 꼼꼼히 짚어나가야 할 일이다.

 

노아 이야기는 필자가 낸 「성경에서 사람을 만나다」에서도 언급한 대로 ‘파괴와 생명의 재창조’라는 주제를 다룬다. 총체적 위기 앞에서 우리는 때로 많은 것을 부수거나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 과정은 노아와 그 가족이 대홍수를 만나 마른 땅의 끄트머리 하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항해할 때의 먹먹한 마음과 유사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도자의 역량을 믿고 따르며 고통을 참아나간다면 파괴된 공동체도 다시 일어날 것이지만,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자신이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파괴는 재창조로 이어지지 않는다.

 

완전하지 못한 지도자와 구성원이 서로에 대한 흠집 찾기를 끊임없이 계속한다면 인간이 인간을 경멸하고 불신해 사회가 총체적인 냉소 사회로 바뀔 수도 있다. 바로 대홍수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주가 서서히 침몰하는 상황일 것이다.

 

흠 많은 노아와 어리석은 가족은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하며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앙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와 나는 어떤 것에 의지하며 어떤 성찰을 하며 살아가는가?

 

* 이나미 리드비나 - 심리분석 연구원. 한국 융 연구원 지도 분석가이며 서울대 외래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성서를 심리적으로 풀어본 슬픔이 멈추는 시간」, 「성경에서 사람을 만나다」 등의 책을 냈다.

 

[경향잡지, 2016년 2월호, 이나미 리드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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