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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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인물] 성경의 세계: 미칼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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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19 ㅣ No.3503

[성경의 세계] 미칼 공주 (1)

 

 

미칼은 사울의 둘째 딸이며(1사무 14,49) 다윗의 두 번째 부인이다. 자존심 강했고 지혜로우며 용감했던 여인이다. 왕인 아버지 뜻을 어겨가며 다윗을 구했고 왕이 되어 승승장구하던 다윗을 서슴없이 비난했던 여인이다. 그만큼 주관이 강했고 솔직했다. 당연히 거친 운명을 견디어야 했다. 미칼(Michal)은 미카엘(Michael)과 어원이 같다. 누가 엘(神)과 같은가? 이런 해석이다. 이름에 어울리게 당당한 삶을 살았다.

 

사무엘기에는 미칼이 다윗을 사랑했다는 구절이 있다(1사무 18,20). 활달했던 그녀가 사랑을 겉으로 드러냈음이 분명하다. 고대사회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군가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자 사울은 미칼을 다윗 아내로 줄 생각을 한다. 미칼은 다윗의 어떤 점을 좋아했을까? 어느 정도 그를 알고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 사울은 다윗을 제거하려 할 때다. 아버지가 죽이려는 사람을 사랑하다니! 미칼이란 여인을 상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애를 다윗에게 아내로 주어야겠다. 그 애를 미끼 삼아 필리스티아인 손으로 그를 치게 해야지.’(1사무 18,21) 사울은 다윗을 불러 필리스티아인 포피 백 개를 가져와 미칼을 아내로 삼으라고 한다. 포피는 남자 성기를 감싸는 가죽이다. 불가능해 보인 일을 다윗은 성공한다. 이렇게 해서 미칼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사울은 다윗 살해를 공개적으로 선언한다(1사무 19,1). 하루는 자객을 보내 다윗을 죽이려했다. 하지만 미칼이 구한다. 남편을 탈출시키고 침대엔 수호신을 눕혀 다윗처럼 꾸민 것이다(1사무 19,13). 이후 다윗은 도피자 신세가 되고 미칼은 홀로남아 어정쩡한 신분이 된다. 사울은 그녀를 갈림 출신 라이스의 아들 팔티와 혼인시킨다(1사무 25,44) 아버지와 맞서 남편을 구했던 미칼은 모르는 남자의 아내가 된 것이다. 혼인결정 과정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미칼의 거친 운명이 상상되는 대목이다.

 

이후 사울은 전사한다. 강력한 후계자 요나탄도 함께 죽었다. 넷째 아들 이스보셋(Isboseth)이 왕이 된다. 하지만 약했다. 실권은 사울의 사촌 동생 아브네르가 쥐고 있었다. 한편 다윗도 유다지역 왕이 되었다(2사무 2,4) 두 세력이 겨루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느 날 아브네르는 다윗에게 돌아선다. ‘저와 계약을 맺어주십시오. 제가 임금님 편이 되어 온 이스라엘을 임금님께 돌아가게 하겠습니다.’(2사무 3,12) 배신이었다. 그러자 다윗은 제안한다. ‘좋소. 그대와 계약을 맺겠소. 대신 한 가지만 요구하겠소. 사울의 딸 미칼을 데려오시오.’ 이렇게 해서 미칼은 다시 등장하게 된다. 다윗은 왜 미칼을 원했을까? 사랑이었을까? [2016년 10월 16일 연중 제29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성경의 세계] 미칼 공주 (2)

 

 

사울이 죽자 민중은 갈라진다. 유다 지파가 다윗을 왕으로 내세우며 뭉친 것이다(2사무 2,4). 벤야민 지파는 아브네르가 장악했다. 사울의 사촌 동생으로(1사무 14,50) 군사령관이었다. 넷째 아들 이스보셋이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약했다. 두 진영은 실력대결로 맞붙었다(2사무 3,1). 싸움은 오래갔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네르가 사울의 후궁 리츠파를 범했다(2사무 3,7). 이스보셋이 강력히 항의하자 아브네르는 다윗 편으로 돌아선다. 사령관의 배반이었다. 승세는 다윗 쪽으로 굳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미칼을 요구한다. ‘미칼을 돌려주시오. 필리스티아인 포피 백 개를 바치고 그녀를 아내로 얻었소.’(2사무 3,14) 왜 미칼을 원했을까? 남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는 미칼을 달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옛사랑의 그림자는 아니다. 사울 쪽 인재를 포섭하려면 그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왕의 사위란 명분으로 그들을 데려오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통일 왕국의 왕위를 굳히려 했던 것이다. 정통성 문제에서 미칼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이스보셋은 누이 미칼을 불러들인다. 수세에 몰린 그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미칼의 남편 발티는 울면서 따라왔다고 한다(2사무 3,16). 다정했던 두 사람을 상상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미칼은 다윗에게 돌아왔다. 두 사람은 옛사랑을 회복했을까? 미칼의 마지막 등장은 다윗과의 언쟁이다. 계약 궤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다윗은 춤을 췄다. 뛰며 춤추는 것을 미칼이 창문으로 봤다고 성경은 전한다(2사무 6,16). 젊잖게 춤췄을까? ‘이스라엘 임금이 건달패 하나가 알몸을 드러내듯 여종들 앞에서 벗고 나서니 볼 만하더군요!’ 미칼의 비난을 미루어볼 때 다윗은 맨살을 드러내고 춤춘 것이 분명하다. 왕으로서의 처신은 아니었다. 누구도 다윗에게 쓴소리 못하는 상황에서 미칼은 그를 비난한 것이다.

 

다윗은 아브네르를 죽이고 이스보셋을 살해했다. 유다 지파가 왕으로 등장하는데 장애 되는 인물을 제거한 것이다. 물론 직접 나선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묵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미칼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친정세력의 몰락과 다윗 왕조의 등장을. 그리고 이렇게 이용되다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삶에 대한 당당한 모습을 다윗을 비난하는 목소리에서 읽을 수 있다. ‘그 뒤 사울의 딸 미칼에게는 죽는 날까지 아이가 없었다.’(2사무 6,23) 다윗이 그녀를 가까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10월 23일 연중 제30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전교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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