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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마음이 머무는 피정: 가르멜동정녀회 - 풀꽃 영성 관상 기도 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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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2-23 ㅣ No.890

[마음이 머무는 피정 - 가르멜동정녀회] 하느님께서 키우시는 풀꽃의 영성


‘풀꽃 영성’ 관상 기도 피정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그래서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 언제나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도/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유안진의 시 ‘들꽃 언덕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하늘 향기 가득 찬 영혼이 되고자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만으로 가득 채우고자 기도에 마음 모으는 피정을 찾았다. 지난 10월 28일자 ‘서울주보’의 인준 단체 알림 난에서 ‘풀꽃 영성 관상 기도’라는 이름의 피정을 만났다.

 

 

지친 영혼들의 쉼터

 

“온 세상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놀라운 신비를 느끼며 하느님 사랑의 마음과 숨결, 눈길, 숨길, 그 심장에 오롯이 머무릅니다. 그리고 저희 영혼의 숨길과 눈길, 귀를 온통 하느님께로 열고 이 시간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지난 11월 4일 가톨릭출판사 요셉홀, 오후 2시가 되자 장경숙 엘리사벳 씨(가르멜동정녀회)가 기도말로 피정을 시작했다. 서른 명 남짓한 참석자들은 눈을 감고 정좌한 채 그이의 기도말에 잠심한다.

 

여느 피정과 달리 피정의 진행 순서에 대한 안내도, 설명도 없다. 원고도, 정해진 틀도 없다. 엘리사벳 씨의 기도말과 침묵, 그리고 이따금 부르는 고요한 성가만이 영적으로 몰입하게 한다.

 

“피정은 세상사에서 흐트러진 마음과 시선을 가다듬어 오롯이 하느님께로 향하고 주님 현존 안에 머물도록 주의를 집중시킵니다. 그런 다음 그날의 독서와 복음을 중심으로 깨달음을 통해 일상 안에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가도록 방향을 제시하지요. 특히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마음을 돌려 다시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초점을 맞춥니다.”

 

이렇게 한 시간 넘게 1부가 진행되고, 잠시 쉼의 시간을 가진 뒤 2부가 이어졌다. 2부는 고요히, 내면의 고요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숨결을 느끼며 관상하는 시간이다. 30분 남짓 ‘고요 속의 쉼’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며 주님과의 내밀한 친교를 이루도록 침묵하고 성가로 마무리한다.

 

피정은 파견 미사까지 포함해 오후 5시면 끝난다.

 

 

하느님과 만나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묵상 관상 기도 피정으로 불리던 풀꽃 영성 기도 피정은 가르멜동정녀회에서 세상사에 지친 신자들에게 삶을 되돌아보고 하느님을 만나는 계기를 제공하려고 마련한 피정이다.

 

가르멜동정녀회는 기도로써 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평신도 여성 공동체다. 장 엘리사벳 씨의 깊은 신앙 체험을 계기로 1991년 시작되었다.

 

“하느님의 사랑의 힘, 거역할 수 없는 그 거대한 사랑의 물살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함을 알았다. 태풍이 지나갈 때, 그 속에 눈부시게 피어 있던 우리 집 정원의 한 송이 흰 장미를 잊지 못한다. 뒷산 거목도 쓰러지고, 나뭇가지들이 돌풍에 휩쓸려 어지럽게 춤을 추는 그 난장판 속에서, 가녀린 줄기로 모진 강풍을 밤새 견뎌 내고 고고한 기품으로 피어 있던 한 송이 흰 웨딩 장미, 그것은 창조주를 생명을 다해 기리는 거룩한 기도의 모습이었다”(‘하느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중에서).

 

장경숙 씨가 본지 2003년 2월 호에서 밝혔듯이 그들은 풀꽃처럼 단순하고 겸손하며 가난한 기도의 삶을 택했다. 그리고 관상의 대가인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삶을 본받고자 공동체의 이름을 지었다.

 

2000년 12월 3일 자 ‘가톨릭평화신문’(당시 ‘평화신문’)은 “수도회는 아니지만, 수도회 못지않은 수도자적인 삶과 영성으로 교회의 숨은 빛이 되고자 노력하는 ‘알토란’ 같은 기도 공동체”라고 소개했다.

 

 

피정의 핵심은 하느님과 풀꽃

 

영혼이 하느님께 향하는 기도인 풀꽃 영성 기도 피정에서 전하고 싶은 주제는 하느님과 풀꽃(들꽃)이다.

 

“많은 이가 빛과 하느님의 사랑을 등지고 삶의 끝 날 검불에 불과할 세상 가치에 매달려 실망하고 좌절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하느님의 눈부신 빛과 사랑으로 향하게 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해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와 하느님을 참되게 사랑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피정을 열게 되었지요. 눈물과 감동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애타는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풀꽃 영성 기도 피정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하느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도록 피정자들을 이끈다. 세상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 문을 눈앞에 두고도 벽에 대고 문을 열어 달라는 이들에게 빛으로 나아가라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문이 여기 있다고 알려 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처럼 길가에 싹을 틔워 자라는데도 사람들의 눈 속에 담기기 어려운 들풀, 고개를 숙여야 보이고, 눈길 한번 받지 못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풀꽃은 하느님께서 돌보시고 키우신다. 그래서 하늘의 향기를 담고 있다.

 

작고 소박하고 순수하며 낮은 자리에서 자기 뜻을 포기하고 세상의 욕심을 다 비우며 생명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풀꽃’은 궁핍한 가운데 전부를 바친 과부(마르 12,41-44 참조)의 가난한 봉헌을 떠오르게 한다.

 

“비록 세상 사람들의 눈엔 작고 보잘것없고 미미하지만 참된 가난과 겸손으로 때 묻지 않은 순결한 사랑을 노래하는 풀꽃, 하느님께서 허리 굽혀 인사해 주시고, 입맞춤해 주시는 햇살 가득 담아 하늘의 눈금에 꼭 맞고 하느님 눈에 쏙 드는 ‘풀꽃 영성’, 이것이 저희가 사는 이유이고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며 피정을 하는 이유입니다.”

 

 

하느님께 집중하는 피정

 

풀꽃 영성 피정에는 10년 또는 20년 넘게 꾸준히 참석하는 이가 많다. 이들은 피정의 놀라운 열매는 변화라고 말한다. 강론 위주의 피정들과 달리 기도와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피정을 통해 자신이 변화되고 가정이 화목해지며 인간관계가 좋아진다는 말이다. 하얀 눈이 쌓인 땅을 처음 밟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깊은 평화를 느껴요. 세상에 시선을 두고 살다가 세상의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께만 집중하는 시간이지요.”

 

“큰일이 닥쳐 원망하는 마음으로 피정에 참석했어요. 깊은 침묵과 고요로 숨소리조차 기도요 깨우침이며 노래 같은 관상의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시간을 통해 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태하고 편하게만 살려는 저를 긴장하게 만들고, 우리가 소중하고 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는 시간이었어요.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하느님만 생각하며 살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전해 주는 피정은 성찰의 시간, 배움의 시간입니다.”

 

“25년 동안 이 피정에 참석했습니다. 흐트러진 생각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이정표, 인자하시고 거룩하신 예수님 품안으로 가는 지름길을 안내하는 피정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신기했어요. 집에 왔는데 여운이 오래 가더라구요. 늘 문이 열려 있고 채근하지 않는 피정, 성찰하는 기회를 주는 피정이에요.”

 

풀꽃 영성 기도 피정은 외양적으로 갖춘 게 없이 지극히 작고 소박한 피정이다. 그렇지만 공동체의 바람처럼 빛으로 넘치는 곳, 고요한 베들레헴 마구간의 순수함과 비움과 겸손의 자리를 향해 가는 길이 되는 듯하다.

 

“하찮은 모래 속에서 건질만 한 사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두움을 비출 가느다란 빛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이름 없는 작은 풀꽃들 속에도 찾아오신다. 고요한 성가와 성경 말씀에 의지해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처럼 그분께 젖어드는 곳, 오직 하느님만을 만나는 데 꼭 필요한 ‘나’의 현존과 ‘말씀’만이 있는 곳, 풀꽃 영성 관상 기도가 있는 그런 피정의 현장에 말이다.

 

피정은 다달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서울뿐 아니라 광주(둘째 월요일 살레시오 수도원 경당)와 부산(둘째 목요일 가톨릭센터)에서도 열린다.

 

* 피정 문의 : 010-3332-8789

 

[경향잡지, 2018년 12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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