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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4: 세계 외교사에 숨은 평화의 사도, 교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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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1-05 ㅣ No.542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4) 세계 외교사에 숨은 평화의 사도, 교황청


교황청이 가진 무기라곤 묵주밖에 없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왕의 방’에서 외교단과 신년하례회를 한 뒤 시스티나경당으로 자리를 옮겨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올해 1월 9일은 사실상 ‘외교의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날 오전 사도궁 1층 ‘왕의 방(Sala Regia)’에 교황청 외교단의 대사들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신년하례회를 합니다. 교황님은 하례회 참가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말을 나눕니다. 교황님의 대외 활동은 해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신년 하례회와 외교단 초청 만찬

 

교황청의 2인자인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님도 이날 저녁 블랑까쵸궁에서 열리는 외교단 초청 만찬에 참석, 덕담을 나누고 외교 현안을 이야기합니다. 이날 행사에는 국무부와 외교부의 성직자들이 전원 참석합니다.

 

교황님과 외교단이 만나는 왕의 방은 신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특별한 공간입니다. 이곳은 중세 시대 교황님이 각국의 왕과 사신을 만났던 접견실입니다. 지금은 교황님이 외교사절과 교회 지도자, 여러 사회단체 대표 등을 만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왕의 방 바로 옆쪽에는 그 유명한 시스티나경당(일반인 공개)이, 바로 뒤쪽에는 바오로경당(일반인 비공개)이 붙어 있습니다. 시스티나경당에는 미켈란젤로의 명작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바오로경당에는 미켈란젤로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 2개가 양쪽 벽면에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는 장면과 바오로 사도가 다마스쿠스에서 회심하는 장면입니다.

 

교황 유고시에는 새로운 교황이 시스티나경당에서 콘클라베 방식으로 선출됩니다. 신임 교황은 왕의 방으로 나와 바오로경당으로 들어가 기도합니다. 신임 교황은 이렇게 업무를 시작합니다. 바오로경당의 베드로 사도는 눈을 매섭게 뜨고 있습니다. 초대 교황(베드로 사도)이 신임 교황에게 “똑바로 하시오! 나는 이렇게 순교했소!”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시스티나경당과 바오로경당으로 둘러싸여 있는 왕의 방은 새해 업무를 시작하는 교황님이나 외교단에 상징적 의미가 큽니다. 세상의 시작(천지 창조)과 끝(최후의 심판), 천국의 열쇠(베드로)와 성령의 칼(바오로)! 이 모든 것을 묵상하며 새해 업무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교황청의 정무 기능은 외교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화의 사도’인 교황님은 외교를 통해 세계 평화를 구현합니다. 교황청은 돈(경제력)도 없고 무기(군사력)도 없지만, 외교력은 세계 최강 수준입니다. 교황청이 가진 무기라고는 묵주밖에 없는데….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등 세계 각 나라의 최고 지도자(대통령책임제 대통령이나 내각책임제 총리)는 교황청을 방문하여 교황님을 알현(개별 면담)하거나 자국에 교황님을 초대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김대중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하여 교황님을 알현했습니다. 교황청의 외교 의전은 형식적인 절차 같아 보이지만, 물밑에서 이루어지는 외교 행위는 무척 활발합니다. 교황청의 외교 행위는 비공개가 원칙이어서 세상에 알려진 것이 별로 없어 보일 뿐입니다.

 

 

어떤 정치가도 못한 일들을

 

6년 전 예외가 하나 있었습니다. 2014년 12월 17일, 당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할 때 TV를 지켜보던 미국 국민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두 번 놀랐습니다. 오바마가 미국의 ‘철천지원수’ 쿠바와 국교를 정상화하겠다고 전격 선언할 때 한 번 놀랐고, 두 나라 간의 중재에 힘써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할 때 두 번 놀랐습니다. 물론 같은 시간에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도 오바마와 똑같은 내용의 특별 성명을 발표했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교황청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어떤 정치 지도자도 못했던 일이었는데, 교황님이 이 일을 어떻게 하셨지?”

 

교황청은 세계사에 남을 만한 역사적인 일을 해놓고서도 보도자료 한 장 내놓지 않습니다. 이것이 교황청의 관행입니다. 교황청 외교활동의 성과가 대부분 ‘비하인드 스토리’로 회자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해소와 핵전쟁 저지(1962년), 폴란드 민주화 및 공산 정권 붕괴(1980년대), 유럽연합 출범(1994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화해(2014년) 등 세계사의 주요 국면에 교황청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특히 교황청은 1948년 한국 정부가 유엔총회에서 승인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월 5일,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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