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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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구석구석 로마 구경: 성 에우스따끼오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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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14 ㅣ No.1796

[구석구석 로마 구경] 성 에우스따끼오 성당

 

 

여러분은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이탈리아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커피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이탈리아어를 사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즐겨 마시는 커피 이름의 대부분이 이탈리아어이기 때문입니다. 에스프레소(Espresso), 까페라떼(caffe latte), 까푸치노(cappuccino), 마끼아또(macchiato) 그리고 아메리까노(americano)마저도 이탈리아어로 된 이름입니다. 커피의 많은 이름이 이탈리아어란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있어서 커피는 영혼의 단짝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커피 없는 삶이란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는 한국 사람들에게 ‘로마 3대 커피전문점’이라 알려진 유명한 바(Bar)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두 곳이 판테온(Pantheon) 근처에 있습니다.

 

판테온 가까이 있는 성 에우스따끼오 광장(Piazza di Sant’Eustachio)에 위치한 산떼우스따끼오 일 까페(Sant’Eustachio il Caffe)는 부드러운 거품과 함께 마시는 쓰디쓴 에스프레소가 일품인 곳입니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란 영화의 배경인 이곳은 수많은 관광객뿐 아니라 현재인들 역시 즐겨 방문하는 유명한 바입니다.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이 바의 대각선 맞은편에도 다른 종교의 사람들로 북적이는 성당 하나가 자리합니다. 매일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종교, 국적,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남루한 행색의 주린 이들이 찾는 성 에우스따끼오 성당(Basilica di Sant’Eustachio in Campo Marzio)이 바로 그곳입니다.

 

성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성 에우스따끼오(1세기경)에게 봉헌된 성당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성인은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에서 플라치도란 이름을 가진 장군이었습니다. 성인은 로마 근교 띠볼리(Tivoli)에서 사냥을 하던 중 신비 체험을 합니다. 잡으려던 수사슴의 뿔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고상을 발견하였고, 그 사슴을 통해 ‘나는 네가 알지 못하지만, 이미 네가 존경하는 그리스도’라는 계시를 들었습니다. 이후 성인은 가족과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에우스따끼오로 개명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교로 개종은 사회적 지위와 명예, 그리고 부를 빼앗아 갔을지 몰라도, 그들은 하느님 나라 시민이 되었고, 순교를 통해 가장 명예로운 천상 면류관을 얻었습니다.

 

1세기경 순교한 성 에우스따끼오에게 봉헌된 성당의 역사는 795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도시를 여러 구역으로 나눠서 가난한 이들과 로마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돌보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로마 중심지에 자리한 이 성당은 가난한 이들과 순례자들을 돌보던 곳이었습니다. 이 일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성당이 주님의 성찬이 거행되는 영적인 구원의 식탁일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따스한 식사를 제공하고 그 음식을 나누게 하는 실질적인 식탁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 주님의 집은 오후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성전 안에서 식사를 하는 육체의 레스토랑이 되고, 저녁에는 영적인 양식을 원하는 마음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영혼의 레스토랑이 됩니다. 이 영육을 위한 식당의 쉐프(Chef)는 당연히 예수이시고, 성당 주임 신부를 비롯한 많은 봉사자들이 성당을 찾아오는 이들을 환대하며 쉐프 예수의 비법인 사랑의 감미를 더욱 감칠맛 나게 만듭니다.

 

영육을 위한 주님 레스토랑의 상징은 이곳 주보성인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지닌 뿔 달린 수사슴입니다. 이 사슴상은 17, 18세기에 완벽히 다시 재건된 성당 외관의 상단부에 위치하여 멀리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반깁니다. 또한 사슴뿔에 달렸던 십자고상을 통해 회개한 성 에우스따끼오의 회개를 상기시킵니다. 다시 말해, 이 성당을 찾는 이들이 회개의 상징인 수사슴 상을 보고 주님의 부르심을 되새기길 바라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영적 양식과 육의 양식을 나누는 성당의 내부에 자리한 중앙 제대는 동(Bronzo)과 다채로운 색의 대리석으로 장식된 18세기 작품이고, 제대 위에 설치된 천개(baldacchino) 역시 같은 시기에 완성된 작품입니다. 특별히 천개를 장식하고 있는 아기 천사와 성 에우스따끼오의 상징인 뿔 달린 수사슴은 천상 축제를 미리 맛보는 미사의 깊은 의미를 떠올리게 합니다. 수사슴을 통해서는 미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하느님 앞에서 우리 죄를 반성하며 잘못을 뉘우치는 회개의 자세를 생각하게 하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아기 천사를 통해서는 미사 안에서 나누어지는 천상 기쁨을 표현합니다.

 

중앙 제대 위 제단화에 장식된 성 에우스따끼오의 순교 장면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참으로 따라야 할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발견합니다. 성인은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당신 삶을 통해 증언했습니다. 성인과 가족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택하는 것을 통해 로마 시민이 누리던 세속적인 특권과 명예, 부를 포기하는 대신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참된 자유와 부활의 기쁨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주는 기쁨과 자유는 영원하다’는 진리를 순교를 통해 세상 앞에 설파했습니다.

 

지난 5월 우리 곁은 떠난 이 미카엘 수사는 당신을 방문하는 후배들에게 “성인 되자!”는 말씀을 즐겨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성 에우스따끼오와 가족이 보여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인의 삶을 본받아 우리들 역시 각자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면 좋겠습니다. 이는 우리 가운데 오시는 아기 예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8년 겨울호(Vol. 44), 글 · 사진제공 강찬규 포에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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