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가톨릭 교리

신앙교리: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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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0-10 ㅣ No.2055

[공부합시다! 신앙교리]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응답

 

 

최상으로 주어진 세례의 은총

 

“그리스도인은 세례로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997항) 그야말로 은총 중의 은총이 세례의 은총 아닐까요? 내가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 그리하여 내가 구원의 길로 초대를 받은 것보다 더 큰 은총이 있을까요? 우리가 세례로써 받는 은총을 특별히 ‘성화의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성화 은총은 사람이 하느님과 함께 살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그 사랑을 완전하게 하는 ‘상존 은총’(常存恩寵, gratia habitualis)이며, 지속적이고 초자연적인 성향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000항)

 

상존 은총이란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살고 행동하고자 하는 변함없는 마음가짐’으로 우리 안에 지속적으로 머물며 함께하는 은총을 말합니다. 여기에 대칭되는 은총으로는 ‘조력 은총’(助力恩寵, gratia achtualis)이 있는데, 이는 ‘회개의 시작이나 성화 활동의 과정에서의 하느님의 개입’으로 상존은총에 더하여 우리의 성화를 그때그때 도와주는 은총을 말합니다. 곧 우리의 세례 때 은총이 주어져 있고, 그 은총이 항상 우리 안에서 하느님에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작용하는데(=상존은총 혹은 성화은총), 그러한 응답의 과정에서 하느님께서 또 은총을 주셔서 우리가 더 잘 응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조력은총 혹은 도움의 은총)입니다. 이러한 은총의 이름들은 세분화하기 좋아하는 중세의 스콜라 신학적 고찰의 결과로 편의상 분류된 것인데, 크게는 다 하느님의 사랑과 호의로 말미암은 것으로 세례를 통해 풍성히 주어진다고 하겠습니다.

 

 

은총을 입은 나의 응답은?

 

하느님의 은총은 그 은총을 받는 사람의 응답과 무관하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즉 공짜로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이지만 일방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시고 그럼으로써 다 되는 은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은총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입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그것을 입은 사람의 반응, 곧 응답을 요구하는 성격의 것입니다. 곧 하느님의 은총을 입은 나는 내가 입은 그 하느님의 은총에 대하여 응답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자유로운 주도(主導)는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시고, 그에게 자유와 더불어, 당신을 알고 사랑할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002항) 그렇다면 은총은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동시에 우리의 응답을 요구하는 과제라는 말이지요.

 

 

회개의 증거를 행실로 나타내는 삶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에 응답하는 삶은 회개의 삶을 사는 것, 곧 회개의 증거를 행실로 보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회개하는 것 자체가 하느님에 의한 것으로, 회개는 곧 우리를 성화하는 하느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성령의 은총이 작용하여 내는 첫 결실은 회개이다. 복음서의 첫 대목에 나오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 하신 예수님의 선포에 따라, 회개는 우리를 의롭게 해준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89항)고 가르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죄인들의 의화는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의롭게 창조한 일을 능가하며, 그것은 죄인의 의화가 [하느님의] 더 큰 자비를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성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가톨릭교회교리서 1994항)

 

 

노력하는 기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는데, 내가 할 노력은 생략하고 기도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그러한 노력에 하느님께서 도와주십사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영국의 양심이라 불리는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는 23세의 젊은 나이로 영국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하고 신학교에 들어갈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공회 신부 존 뉴턴*이 그 생각을 반대하며 설득했습니다. “나는 주님이 자네가 성직자가 아니라 정치가로서 억압받는 이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일하도록 부르셨다고 생각하네.” 이에 윌버포스는 숙고 끝에 계속 정치인으로 일했는데, 1833년에 영국의회가 ‘노예제도 폐지법안’을 통과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원주민들을 붙잡아 노예로 팔아 막대한 수입을 올려 노예매매가 국가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했답니다. 그래서 노예제도를 통해 직간접으로 많은 금전적 혜택을 누리던 소위 기득권들의 찬성을 받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노예제도 폐지를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으로 깨닫고 그 사명을 수행하려고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무엇보다 간절히 수행한 것이 바로 기도였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노예제도 폐지 법안이 통과될 수 없음을 알고, 하루에 세 시간 이상을 하느님께 기도하며 보낸 것이지요. 윌버포스는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온 힘을 다하고, 그러면서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항구하고 열심히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 여러분! 내 자신이 받은 은총에 감사하며 간청기도보다 감사와 찬미기도를 더 즐겨 바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내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따르겠다는 자세로 기도합시다! 하느님의 은총을 새롭게 구하기에 앞서 그분께로부터 받은 은총에 감사를 드립시다!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참아냅시다!

 

* 참고로 존 뉴턴(John Newton, 1725-1807)은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싣고 미국으로 가는 영국 노예선의 선장이며 노예 상인이었습니다. 그는 1748년 5월10일 항해 중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의 위험에 처하자 하느님께 매달리며 자신의 구원을 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뉴턴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 후 몇 년간 그는 노예 사업을 계속했지만 결국 노예 상인 생활을 청산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마침내 성공회 목사가 된 그는 이후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노예제도에 반대하게 됩니다. 뉴턴은 그야말로 자신이 받은 은총에 감사하고, 그러한 은총에 대한 자각과 감사 속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주신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그 소명에 충실하게 자신의 남은 생을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경험에서 지었다고 알려진 복음성가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놀라운 주님의 은총)이지요.

 

작곡미상의 노래인데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놀라운 은총이여! 나같이 타락한 자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내리시는 다정한 음성! 나는 버려진 자식, 그러나 지금은 집을 찾았네. 나는 눈뜬장님, 그러나 지금은 볼 수 있네.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하신 그 은총이 내 두려움을 도로 거두어 주셨네. 그토록 소중한 은총을 깨달은 순간, 나는 처음으로 믿었네. 내 주님을! / 가시밭길 쑥 넝쿨 다 지나서 나 이제 여기 왔네. 이토록 멀리까지 나를 고이 인도하신 은총이여, 이 몸을 천국으로 이끌어 주시리. / 천 년 만 년 천국에서 복락을 누릴 때 태양같이 빛나는 우리의 마음 주님 찬미하는 노랫소리는 처음과 같이 세세에 영원하리.”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10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목국장, 대구 S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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