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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구석구석 로마 구경: 로마의 영적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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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07 ㅣ No.1776

[구석구석 로마 구경] 로마의 영적 맛집

 

 

지난 해 여름 한국에 갔을 때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수도형제들과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낯선 목적지를 향해 달리던 차에서는 자연스럽게 지역 명소와 맛집을 주제로 수다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광고성 블로그가 넘쳐나는 인터넷에서 가장 성공적인 맛집 검색의 키워드는 무엇일까란 의문에 도달했는데 모두의 의견이 ‘현지인이 추천하는 곳’으로 모아졌다.

 

그래서일까? 로마에 살면서 여행을 오는 분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신부님이 아는 현지인이 가는 맛집 좀 소개해 주세요”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로마에 꽤나 오래 살았지만 현지인이 찾는 이탈리아 식당을 잘 모른다. 내게 익숙한 맛집은 한국 식당뿐이다. 내가 아는 한 로마 최고의 이탈리아 맛집은 파스타가 맛있기로 소문난 ‘성 안셀모 수도원 식당’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신부님, 로마 사람들도 잘 모르는 로마의 숨겨진 보물을 한 곳만 소개해 주세요”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캄피돌리오(Campidoglio) 근처에 위치한 ‘성녀 프란체스카 로마나 봉헌자 수도원’(Monastero delle Oblate di Santa Francesca Romana)을 소개해 주고 싶다.

 

그럼 왜 이곳이 숨겨진 보물과 같은 곳일까? 그것은 바로 이 수도원이 지닌 특별함에 있다. 이곳은 봉쇄 수도원도 아니고 찾아가기 어려운 외곽지에 위치한 수도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이곳은 일년에 딱 한 번만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다. 수도회의 창설자인 성녀 프란체스카 로마나(Santa Francesca Romana, 1384-1440년)의 축일인 3월 9일에만 수도원의 굳게 닫혀졌던 문이 활짝 열려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어린 시절 수도 성소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있던 성녀는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혼인 성소를 선택하였다. 그리하여 성녀는 인근의 부유한 영주인 라우렌씨우스(Laurentius)와 혼인하여 자녀들을 낳고 살면서 혼인생활의 이상적인 모범을 보였다. 비록 부모님의 뜻에 따라 혼인 성소를 택했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늘 하느님을 찾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다. 나중에 성녀는 산타 마리아 노바 수도원(Monastero di Santa Maria Nova)의 봉헌자가 되어 세상 속에서 베네딕도 수도규칙을 따르며 살았다.

 

성녀가 살던 1400년대 로마는 안팎으로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외적으로는 기근과 흑사병의 창궐로 사람들의 목숨이 위협을 받고 있었고, 내적으로는 교황파와 대립교황파의 분열로 인해 사람들이 둘로 나뉘어져 반목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녀는 자식을 흑사병으로 잃고, 교황파에 선 남편을 멀리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에 낙담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고 더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자기 집을 병원으로 바꾸어 흑사병과 기근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였고, 이러한 일을 체계적으로 해 나가고자 세상 안에 살면서 자선을 실천하는 수도회를 창설했다.

 

이 수도원은 원래 성녀가 살던 집이었기 때문에 1400년대 로마의 일반 가정집 구조를 하고 있다. 수도원의 정문도 당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문을 들어서면 마구간으로 쓰이던 공간이 나온다. 지금 그 공간에는 성녀와 수호천사가 조각된 상이 자리 잡고 있지만 오른편에는 당시 가축들에게 먹이를 먹이던 구유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마구간을 지나 왼편으로 시선을 옮기면 집의 내부로 들어가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오르기 전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림에는 인물 다섯 명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림 중심부에는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이 나란히 계시고 그 양 옆으로, 한쪽 편엔 사부 성 베네딕도가 목장과 규칙서를 손에 들고 있고, 다른 쪽엔 성녀 프란체스코 로마나와 수호천사가 자리 잡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성녀 프란체스카 로마나와 함께 등장하는 그림 속 사부의 수도복 색깔이다. 17세기에 그려진 수도원 정문의 프레스코화도 그렇고, 내부로 통하는 계단 위의 프레스코화와 건물의 2층에 자리한 기도소(Oratorio)의 15세기 프레스코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부의 수도복은 보통 쉽게 떠오르는 검은색이 아닌 흰색으로 그려져 있다. 그 이유는 성녀가 자신의 수도회를 설립하기 전 올리베따노회(현재는 올리베따노회가 베네딕도회 총연합에 속한 연합회이지만 당시에는 별개의 독립된 수도회였다.)의 봉헌회원으로서 베네딕도 수도규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녀와 함께 등장하는 사부는 올리베따노의 상징인 흰색 수도복을 입고서 나타난다. 성녀의 곁에는 늘 수호천사가 함께 묘사되는데, 수호천사가 어두운 밤에도 등불을 들고 성녀가 가는 길을 밝혀주며 성녀의 삶을 지켜 주었음을 기억한다.

 

수도원 내부로 들어가는 계단은 ‘거룩한 계단’(Scala Santa)이라고 불리는데, 계단을 따라 위로 쭉 올라가면 성녀가 실제 생활하던 공간이 나온다. 건물의 3층에는 당시 식당으로 사용하던 공간이 나오는데 한쪽 벽엔 성녀가 체험했던 영적 투쟁의 모습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 공간의 곁에는 실제 성녀가 살던 방이 있다. 매우 작은 방인데, 성녀는 작은 독방에서 은수자들처럼 하느님만을 찾고 하느님을 만나 힘을 얻어 그 힘으로 로마라는 세상 속에서 이웃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했다. 건물 2층에 위치한 기도소의 프레스코화를 통해 성녀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힘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곳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성녀의 삶 자체를 담아놓은 하나의 자서전이다. 성녀는 자선이라는 도구를 통해 온전히 하느님을 찾고, 약한 이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위해 자신을 오롯이 봉헌하는 삶을 살았다.

 

‘성녀 프란체스카 로마나의 봉헌자 수도원’은 어찌 보면 하나의 ‘영적 맛집’이다. 자선을 통해 이웃에게 참된 사랑을 실천하며 살던 프란체스카 로마나 성녀가 운영하는 영적 맛집. 오늘날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영적 갈증과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영적 맛집으로써 더욱 많은 수도원들이 사람들에게 소개되길 바라며 이번 연재를 마무리한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8년 여름호(Vol. 42), 글 · 사진제공 강찬규 포에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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