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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성사]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세례의 예표: 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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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07 ㅣ No.242

[빛과 소금]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세례의 예표 : 할례

 

 

할례는 고대 민족들 사이에서 사춘기 소년들에게 관습적으로 행했던 포피절제수술로서 성인 사회로 들어가는데 필요한 절차 중의 하나였다. 구약성경에서도 할례에 대한 다양한 증언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성년이 되는 의식으로 행해졌으며, 다른 고대 민족들과 달리 이스라엘에서 행해지던 할례 의식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표지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계약의 표지로서 할례는 아브라함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시면서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그리하여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가나안 땅 전체를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영원한 소유지로 줄 것임을 약속하신다(창세 17,5-8). 하느님께서는 이 세 가지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계약으로 주신다.

 

하지만 계약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기에 하느님께서는 당연히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계약의 준수 의무와 함께 그 계약의 표징으로서 “할례”를 요구하신다(창세 17,10-11). 아브라함의 후손들 중에 모든 남자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며(창세 17,12; 레위 12,3), 자신의 씨종을 포함하여 내국인이나 외국인에게 돈으로 산 종 역시 이 예식을 거행하여야 한다(창세 17,12-13. 23. 27).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들(이스마엘과 이사악)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남자 종들에게까지 할례를 거행함으로써 하느님과 맺은 이 계약을 충실히 이행한다(창세 17,23-27; 21,4).

 

창세기 34장에서 야곱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누이 디나를 겁탈한 이방인인 스켐인들에게 거짓 조건을 내세우며 할례를 베푼다. 탈출기에는 돈으로 사들인 종들과 이방인 역시 할례를 받았다는 조건하에 파스카 축제에 참여하여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탈출 12,44. 48). 여호수아는,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하느님께서 주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태어나 할례 받을 기회를 놓친 백성들에게, 주님의 명령에 따라서 할례를 베풀고 이집트에서 겪은 수치를 모두 치워버린다(여호 5,2-9). 이제 모든 백성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이행하였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정착하게 된다(여호 6장 이하). 따라서 할례는 하느님께 선택된 민족의 상징으로서 ‘계약 공동체에로의 참여’를 의미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를 받지 않은 다른 민족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갖게 된다(판관 14,3; 15,18; 1사무 14,6; 17,26. 36; 31,4; 2사무 1,20).

 

약속의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그분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짓게 된다. 그 밑바탕에는 하느님과의 계약의 상징인 할례를 받는 것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신명기와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러한 잘못된 선민사상을 질타하면서 신체에 행하는 할례에 만족하지 말고 ‘마음의 할례’를 행하여 하느님의 계명과 법을 지켜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요구한다. 왜냐하면 축복을 받고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영적인 의미를 반영하여 ‘마음의 포피’(예레 4,4)를 벗겨내는 ‘마음의 할례’가 더 중요하다(신명 10,16; 30,6; 예레 4,4; 9,24). 형식적인 할례에 얽매이기보다는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사랑과 믿음이 내적으로도 충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성서에서 할례는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한 행실과 죄악을 씻는 정화 의식이며, 이를 통하여 계약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죄의 용서를 받고 하느님의 구원에 참여할 수 있는 출발점이자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세례의 예표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4월 29일 부활 제5주일(이민의 날) 인천주보 4면, 송태일 안셀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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