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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 성빈센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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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30 ㅣ No.100

[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 성빈센트병원


한국전쟁 상처 속에 의료시설 건립, 가난한 이들 위해 무료진료소 운영

 

 

- 1967년 개원 당시 성빈센트병원 전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전통적으로 교회는 병들고 아파하는 이들을 위해 병원을 세우고 환자들을 돌봤다. 하지만 수도권의 여러 교구와는 달리 교구에는 교구가 직접 운영하는 종합병원이 없다. 그렇다면 교구는 병으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중부대로 93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에는 환자들과, 그 환자를 돌보려는 의료진들의 발길로 분주하다. 경기 남부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의과대학병원 성빈센트병원. 이곳은 교구가 수도회를 초청해 마련한 의료사업의 장이다.

 

교구 설정 당시 교구 내에는 아직 한국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가난하고 상처입고 병든 이들이 많았지만, 교구 내에는 제대로 된 의료시설 하나 없었다. 초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는 착좌 당시부터 교회가 의료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윤 대주교는 당시 교황공사였던 안토니오 델 주디체 대주교로부터 독일의 성 빈센트 드뽈 자비의 수녀회가 전교 지역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녀회를 교구에 초청했다.

 

윤 대주교는 성 빈센트 드뽈 자비의 수녀회 한국진출 40주년 행사 중 축사를 통해 “설정 당시 교구는 전쟁이 남긴 아픔들을 함께 겪으면서 가까스로 신설교구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었다”며 “전교를 위한 방안으로 이곳에 의료사업을 하는 수도회가 하나 진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윤 대주교의 뜻에 수녀회는 바로 부응했다. 수녀회는 독일인 수녀 3명을 파견해 1965년 병원을 짓기 시작했다. 병원은 교구 사제단과 신자들뿐 아니라 수원시민의 큰 기대와 환영을 받으며 1967년 6월 3일 개원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치과, 방사선과를 두고 180개 병상 규모였다. 당시 수원뿐 아니라 경기도에서 최대 규모의 병원이었다. 또한 병원은 교구와 협력해 가난한 이들이 본당 신부의 서명을 받아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무료진료소를 운영했다. 수녀회는 무료 진료를 위해 병원 총예산의 30~40%를 사용했다.

 

교구의 생명운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 곳도 성빈센트병원이었다. 교구는 “경제발전이 생명권 보장의 수단이어야지 경제 발전을 위해 생명권이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2대 교구장 김남수 주교의 뜻을 따라 행복한 가정 운동을 전개했다.

 

교구는 1976년 6월 ‘행복한 가정 지도자 교육’을 시작해 행복한 가정 운동 관련 세미나와 교육을 성빈센트병원에서 열었다. 병원도 교구의 교육에 강사를 파견해 자연법에 맞는 가족계획에 관한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병원은 지금도 여전히 생명을 살리는 활동에 여념이 없다. 개원 당시 8개의 진료과에서 10명의 의료진들이 매일 70여 명의 환자들을 돌보던 병원은 연간 100만여 명의 외래 환자와 25만여 명의 입원 환자를 치료하는 지역 의료의 구심점으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해 개원 50주년을 지낸 병원은 현대인들의 고통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암치료를 위해 ‘암병원’ 개원도 준비 중이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8년 4월 29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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