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주님의 기도와 교부들: 기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의 삶과 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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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15 ㅣ No.1114

[주님의 기도와 교부들] 기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의 삶과 그 힘

 

 

기도의 필요성

 

예전에 겨울철이면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대로 얼음판 위에서 팽이를 치면서 놀았다. 팽이는 세게 치면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선 채로 돌다가도 힘이 떨어지면 흔들거리면서 곧 넘어지려 한다. 그러나 다시 채찍으로 치면 힘을 얻고 꼿꼿이 선다.

 

기도는 팽이와 같은 우리 생활에 채찍질과 같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기도가 힘을 실어 주면 우리 생활은 흔들림 없이 주님을 중심에 모시고 잘 서서 돌아갈 수 있지만, 기도의 힘이 약해지면 흔들거리다가 결국은 넘어지게 된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겠는가?

 

기도의 힘 없이는 주님께서 명하시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수 없다(요한 15,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아무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주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없다. 이 사랑의 계명은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 있지만,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킬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 곧 우리의 존재, 우리 생활 전체의 참여를 요구하는 이 계명은 우리 인간의 능력을 훨씬 벗어난다. 그러나 기도드리는 사람은 이 계명을 실천할 수 있다. 성인들은 이 사실을 확인해 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터키 청년 알리 악사를 감옥까지 찾아가 용서해 주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힘을 자신의 삶 속에서 활용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교부는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쳤다. “기도는 최고의 선이며 하느님과의 깊고 친밀한 나눔이며, 마음에서 솟아나야 하고, 밤낮으로 계속 꽃피워야 한다. 영혼의 빛이며 하느님에 대한 참된 앎이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며, 하느님을 갈망함이며, 신적 은총으로부터 생겨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다.”

 

기도를 다른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아기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탯줄로 엄마의 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엄마의 숨과 영양소가 이 줄을 통하여 아기에게로 흘러들어 가고, 아기의 배설물은 바로 이 탯줄을 통하여 엄마에게로 나오게 된다. 이와 같은 이치로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은혜가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살리며 성장하도록 돕고, 우리의 모든 잘못과 부족함은 이 기도를 통하여 주님께 전달되어 용서받고 치료받게 된다. 따라서 기도는 우리를 살리는 필수 요소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굶어죽는다고 말할 수 있다. 기도를 멀리하고 냉담하던 교우들이 기도를 하면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된다.

 

결론적으로 기도는 영혼 생명의 숨(호흡)이라 할 수 있다. 충분한 호흡량이 신체의 모든 장기가 건강하게끔 돕듯이, 영신적 오르막길을 떠난 우리들에게 기도는 필수적이다. 기도는 영혼의 날개와 같다. 닭은 날개가 있어도 잘 날지 못한다. 반면 독수리는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 높이 잘 날아다닌다. 기도가 넘치는 생활은 주님을 향하여 높이 날아오르도록 돕는다.

 

기도는 원수 마귀에 대항하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무기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쳤듯이, 기도의 힘은 원수를 쳐 이기는 무기이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기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성경에 나타난 기도의 인물들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표현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늘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공동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일정한 시기를 정하여 해마다, 달마다, 주마다, 그리고 날마다 기도를 드렸다. 기도는 그들 생활의 리듬과 같았다.

 

성경은 기도의 모음집이며 기도의 학교라고 볼 수 있다. 기도의 가장 좋은 교과서는 성경이다. 성경 안에 들어 있는 기도들은 성령께서 감도하신 기도들이다. 성령의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해 주시는 것이다. 새로운 삶의 원천이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서 해로운 것은 치워 주시고, 유익한 것은 풍성히 내려 주시는 분이시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시다(로마 8,26-27 참조).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들이 되어 하느님께 효도하고 하느님을 늘 찬미하며,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대해 늘 감사하도록 이끌어 주신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6-19).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로마 8,26-27).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은 기도하는 모범 인물을 성경 안에서 많이 만난다. 그 인물들의 태도와 말을 통해서도 기도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성경 중에서 전체가 기도로 가득 찬 책이 바로 시편이다. 하느님께서 심어 주신 150편의 기도를 모아 엮은 시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공식 기도서로 사용되었다. 시편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 일관되어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시험을 당할 때나 시련 가운데 있을 때나 시편은 그들에게 그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따라 서로 긴밀히 속해 있다는 표현이었다. 따라서 시편은 우리에게 기도가 무엇인지 알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방향을 보여 준다.

 

시편을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감사와 찬미의 시편, 흠숭의 시편, 청원의 시편, 용서를 청하는 시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날마다 기도를 드렸다. 성인은 매일 아침 다른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저녁에 기도를 드렸다. 수건으로 몸을 감고, 이마와 왼손에는 기도문갑을 붙이고 기도를 드렸다. 예루살렘 쪽, 곧 성전 쪽을 향하여 기도를 드렸다. 큰 소리로 두 가지 기도를 드렸는데, 축복의 기도와 ‘셰마 이스라엘’이라는 기도였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신명 6,4-9; 참조: 신명 11,18-21; 민수 15,37-41).

 

그러고는 오늘날 ‘셰모네 헤스레’라고 불리는 긴 기도를 바쳤다. 이 기도는 18가지 청원 기도로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앞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인용했던 기도문이다.

 

 

기도의 모범 인물들

 

기도의 모범 인물들로는 아브라함과 모세, 사무엘, 예레미야, 다윗, 솔로몬, 유딧, 이사야,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등이 꼽힌다. 모세나 사무엘은 늘 하느님 앞에서 백성을 위해 빌던 인물로 언급된다(예레 15,1 참조). 예언자 예레미야는 백성과 거룩한 도성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이로 묘사된다(2마카 15,14). “예레미야는 오른손을 내밀어 유다에게 금 칼을 주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의 선물인 이 거룩한 칼을 받아라. 그리고 이 칼로 적들을 물리쳐라’”(2마카 5,15-16).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드린 기도의 특성은 하느님께 드리는 큰 신뢰와 놀라운 담대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하여 하느님께 드린 기도(창세 18,16 이하 참조)를 살펴보면, 하느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아브라함과 얘기하지 않고 가시려고 하시지만, 아브라함은 여전히 서서 하느님께 질문한다. 질문의 요지는 의로우신 하느님께서 의인까지 벌하셔야 되겠느냐 하는 것으로,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창세 18,23-25)

 

아브라함은 여러 차례 질문하고, 반복해서 말씀드린다. 질문의 끈질김은 참으로 놀랍다. 자신의 질문이 건방진 것을 알지만, 물러서지 않는다(창세 18,27-32 참조). 아브라함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집요하게 친구를 조르는 듯한 모습이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의 간구함을 떠오르게 한다(마르 7,24-30 참조).

 

* 장인산 베르나르도 - 청주교구 신부. 2016년에 은퇴한 원로 사목자로 현재 강화꽃동네 성녀 헬레나 성당에서 통일을 기원하며 지낸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교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대구가톨릭대학교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경향잡지, 2018년 2월호, 장인산 베르나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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