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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마음이 머무는 피정: 갓등이 피정의 집 - 있는 그대로, 중고등부 몸 신학 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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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15 ㅣ No.807

[마음이 머무는 피정 - 갓등이 피정의 집] 있는 그대로, 중고등부 몸 신학 피정

 

 

수원교구의 첫 본당인 왕림본당이 있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 신앙 선조들은 이곳을 ‘갓등이’라고 불렀다. ‘갓등이’는 ‘갓을 쓴 등불’(같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박해 시대 신자들이 ‘사제’를 비밀스럽게 부르는 말이었다. 오롯이 신앙을 지키며 사제를 기다리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지명이다.

 

지금 갓등이에는 교구 사제 성소의 요람인 수원가톨릭대학교가 세워지고, 한국외방선교회 신학원과 천주섭리수녀회,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등이 가까이 있다. 이곳에 청소년, 청년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갓등이 피정의 집이 있다.

 

갓등이 피정의 집은 수원교구 청소년국 대건 청소년 법인에서 운영하며, 2012년 문을 열었다. 청소년국에서 운영하는 교육과 피정을 주로 하고, 여러 청년 사도직 단체의 연수와 피정, 그리고 청소년사목연구소에 운영하는 교육 등이 이루어지며, 위탁 피정도 한다.

 

지난 1월 9-10일에는 ‘2018 갓등이 몸 신학(생명 피정)-2차 Beginning(중고등부)’이 열렸다. 몸 신학 피정은 ‘몸 신학’을 바탕으로 성, 사랑, 생명을 성찰할 수 있도록, 청년 피정을 중고등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다. 이날 피정에는 수원과 서울의 아홉 본당에서 온 청소년 100여 명이 함께했다.

 


몸 신학 피정을 이해하려면

 

몸 신학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79년 9월 5일부터 1984년 11월 28일까지 129회에 걸쳐 매주 수요일 바티칸 광장 일반 알현에서 한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 교황은 성경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는 진정한 의미를 성 윤리가 퇴색해 가고, 가정도 위협받는 현대인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그 결과 ‘몸 신학 교리서’( 「하느님 계획 안에 있는 인간 사랑」)가 나왔다.

 

교황은 몸 신학의 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몸은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하느님의 선하심과 지혜를 드러낸다. 또한 몸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향한 성소에 대해서도 말한다. 곧 생명의 선물을 향해 열려 있는 인격들의 풍요로운 친교를 통해 남자와 여자 안에 새겨진 본래의 모상을 실현하고 빛을 발산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제시한다.”

 

‘나의 몸을 앎으로써 하느님을 바르게 만날 수 있고, 나의 전반적인 삶의 태도가 변화될 수 있다.’

 

이런 메시지를 담아, 금기시하거나 질문하지 못했던 성, 사랑, 생명에 대한 관심을 이끌고, 스스로 고민하고 목표를 찾아가도록 돕고자 만든 것이 몸 신학 피정이다. 청소년의 언어로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고, 성과 사랑, 생명의 의미를 함께 나누며 배운다.

 

피정의 집의 엄기홍 제라르도 씨는 몸 신학 피정이 “청소년 스스로 그 가치를 고민하고 선택하면서 아름답고 건강하게 살아갈 단초를 마련하는 교육”이라면서, 세 가지 메시지를 꼭 전하려 한다고 했다.

 

“첫째, ‘나’는 어떤 존재인가, 곧 하느님을 닮은, 영혼을 지닌 존재로서 그 존재 가치에 대한 것입니다. 둘째, 하느님의 사랑 고백, 곧 하느님 사랑의 속성을 배우고 살아 내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어렵지만 아름답고 거룩한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속되거나 더러운 것이 아닌 아름답고 거룩한 성, 사랑, 생명을 배우고 고민하며 살아 내는 것입니다.”

 

 

몸 신학 피정의 흐름

 

피정은 자신이 영혼을 지닌 몸으로 존재함을 인식하고 하느님을 닮은(모상성) 존재의 가치를 알아보는 정체성 찾기 작업으로 시작한다. 이어 첫 인간인 아담과 하느님의 행복한 일상, 원경험(원일치, 원순수, 원고독, 원죄)들로 말미암아 경험하게 된 인간 본성에 대해 묵상한다.

 

그다음엔 인간이 누려야 할 사랑의 조건(존재적 사랑과 인격적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조그만 종이에 저마다 생각하는 사랑의 조건 다섯 가지를 적어 벽에 붙인다. 이어 사랑을 하는 데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며, 성, 사랑, 생명이 속됨이 아닌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배운다.

 

배운 내용이나 청소년의 생각을 직접 역할극으로 표현하는 작업도 한다. 이날 피정에서는 만남, 연애, 혼인, 부부 관계, 임신, 출산, 가족 등 7개 주제로 청소년들이 역할극을 준비해 발표했다. 그리고 더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 사랑, 생명을 추구하고자 하느님의 은총에 의탁하는 시간을 갖는다. 때로 실수할지라도 자비의 하느님께서 끝없이 기회를 주시고 이끌어 주심을 묵상하는 찬양 기도를 끝으로 첫 날의 문을 닫는다.

 

다음 날은 배운 내용을 어떻게 실천할지 생각하는 시간이다. 먼저 일상에서 어떻게 살지 목표를 설정한다. 죽음을 이겨내는 성, 사랑, 생명의 아름다움과 존귀함을 세상에 어떻게 전할지 직접 만들어 보고, 이를 SNS에 직접 게시하며 본당에 돌아가 알릴 피켓팅 보드를 제작한다. 피정의 유일한 숙제는 ‘나 태어날 때 어땠는지 부모에게 물어보기!’다.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피정

 

“갓등이 청소년 피정은 몇 가지 원칙에 따라 진행합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줄 것, 피정 기간 공동체에 기여할 거리를 찾아 줄 것, 직접 소통할 도구를 이용할 것, 가르치되 절대로 화내지 말 것, 지칠 때까지 같이 놀아줄 것 등이죠.”

 

엄기홍 씨의 말처럼 피정은 주입식 강의 대신 청소년들이 직접 의견을 밝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방이나 식탁, 조 모임도 스스로 정한다. 청소년들은 자유로운 대화, 역할극 등을 통해 속마음을 나누며 스스로 답을 찾는다. 이를 통해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마찬가지로 소중한 타인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 안에서 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해하는 여정이 시작된다.

 

“강의하고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한 뒤 최소한의 설명을 하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어떤 작업은 발표도 하지 않아요. 혼자 생각해 적고, 그걸 붙여 놓으면 지나가다 읽어 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게 되거든요. ‘나는 이렇게 할 거야. 내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야.’처럼 ‘내가’와 ‘나는’에 집중하는 피정이죠. 저희가 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져 닫힌 마음을 여는 거예요.”

 

그래서 몸 신학 피정에서는 일반적인 피정과 달리 휴대 전화를 걷지 않는다. 청소년들과 뗄 수 없는 관계인 누리 소통망(SNS)을 십분 활용한다. 모든 참가자가 함께하는 ‘아무말대잔치’라는 오픈 채팅방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소통을 시도한다.

 

‘아무 말이라도 좋아. 숨지 말고 네 말을 해 봐. 언제든지 들어 줄게.’ 그렇게 청소년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 ‘난 이런 노래가 좋아. 난 이런 사람이 좋아, 네가 좋아하는 성가를 말해 봐.’ 따위의 질문도 던진다. 파견 미사가 끝난 뒤에는 자신의 SNS에 후기를 남기게 한다. 프로그램이 흥미로우니 휴대 전화가 있어도 아이들은 프로그램에 집중한다.

 

“이런 내용을 교회에서 다루는지 몰랐어요.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성이라는 것이 지저분하고 더럽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부모나 본당 어른(신부님, 수녀님, 교사)에게 물어볼 수 있는 내용이고 배워야 한다는 걸 알아서 좋았어요.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어요. 사랑해 보고 싶어요. 부모님께 감사해요. 질문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서 좋았어요. 내가 하느님을 닮았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내가 소중한 것처럼 남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피정은 성과 사랑, 생명에 대하여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쾌락이나 오르가즘, 피임, 낙태 등의 단어도 직설적으로 오간다. 사형제에 대한 이야기도 오간다. 생명의 가치는 모두 같다는 걸 전하려는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저지르기 쉬운 차악이 아니라 한처음 창조 때 하느님과의 관계를 지향하는 더 어렵지만 좋은 길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그 가운데 하나가 성과 사랑이죠. 그러면 사랑의 결실이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조건과 가치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가치 있음을 전하는 피정, 그래서 몸 신학 피정의 주제는 ‘있는 그대로’이다.

 

* 문의 : ☎ 031-298-8564 갓등이 피정의 집

 

[경향잡지, 2018년 2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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