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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교회, 공동체가 대안이다 (1) 지금 왜 공동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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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28 ㅣ No.173

‘열린 교회, 공동체가 대안이다’ (1) 지금 왜 공동체인가?


함께 살기 위해 ‘마을 공동체’ 만드는 사람들

 

 

현대는 공동체가 와해된 시대다. 근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는 전통적 공동체를 해체시켰다. 하지만 사람들은 팍팍한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와 억압적 국가주의를 경험하면서 다른 삶을 원하기 시작했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삶, 비경쟁적이고 적게 생산하고 적게 소유하는 삶, 자연을 착취하지 않고 공존의 대상으로 여기며, 타자를 인정하고 형제적 우애로 대하는 ‘대안적’ 삶을 ‘공동체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대안 공동체 운동’이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시민사회운동의 한 영역으로 시작된 ‘마을 만들기’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각 지역자치단체들의 지원으로 크게 확산됐다. 가톨릭신문은 해체된 공동체적 삶을 회복하려는 ‘대안 공동체 운동’의 의미를 살펴보고, 종교 공동체로서 가톨릭교회가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3회에 걸쳐 알아본다.

 

- 인주의화 되어가는 오늘날,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고 텃밭을 가꾸는 마을 공동체는 형제적 우애를 나누는 삶을 보여준다.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제공.

 

 

10명 중 3명만 “더불어 살아간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공동체 의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마다 실시한다. 2017년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10명 중 3명(31.4%)만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조사에서 절반(52.6%)이 넘었는데, 불과 5년 만에 이처럼 큰 차이를 나타냈다. 

 

게다가 젊은 층일수록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대는 2명 중 1명꼴(46%)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지만 20대는 18.4%, 30대는 18.8%만이 우리 사회 공동체에 대해 소속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다른 사람이 잘되면 내 일처럼 기뻐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내 책임처럼 여기는 태도도 크게 낮았다. 다만 대다수(82.3%)가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했다는 점은 다행으로 여겨진다.

 

굳이 조사 결과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공동체 의식’의 약화 현상은 일상에서 쉽게 드러난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김민희(리디아·52)씨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성적이 훨씬 더 좋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며 “그래서 친구도 공부 잘 하는 아이들만 가려 사귀라고 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우정이나 친구들과의 추억은 더 이상 자녀 교육의 관심사가 아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지상 과제이다. 

 

이른바 갑질은 인격적 관계나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힘과 부의 우위로 남용되는 횡포다. 국가와 계층, 개인 간 빈부 격차와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이웃에 대한 무관심, 연대와 책임 의식은 상실됐다.

 

 

마을의 재인식

 

“빈부 격차, 약자에 대한 차별, 흉포해지는 범죄, 희망을 잃어가는 청년 실업, 환경 파괴에 따른 삶의 질 저하 등은 근본적으로 상호부조 관계에 기반한 공동체적 관계망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이제 일상생활을 보내는 마을 현장에서부터 대안적 실천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근대화와 경제성장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마을의 가치와 의미를, 풀뿌리 마을공동체의 복권을 선언하고자 합니다.”(2015년 ‘전국 마을선언’ 중에서)

 

1990년대 지방자치시대 개막과 함께 ‘마을’이 새롭게 인식됐다. 1995년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를 맞으며 ‘지역화’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2000년대 접어들어서 ‘마을’이 부각됐다. 2012년 서울시는 ‘마을공동체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전국 각 지자체들이 뒤를 이었고 현재 거의 모든 지자체들이 중간 지원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가 마을만들기 사업을 공모하고 지원을 하지만 주도는 주민이 한다. 현재 전국 마을 공동체 수는 6000여 개에 달한다. 그 시초가 됐던 성공 사례는 ‘성미산마을’이다. 

 

서울 마포구 성산1동 ‘성미산 마을 공동체’는 평범한 동네였다. 주민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공동육아로부터 대안학교와 마을기업의 운영 등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마을 공동체’를 형성했다. 단순히 같은 지역이라서가 아니라, 주민들 간 관계망의 구축과 정체성의 공유, 서로 주고받는 상호 작용의 방식과 정도가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마을만들기’는 전원적이고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마을 공동체’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대안 공동체 운동’의 한 가지 유형이다.

 


대안 공동체 운동

 

대안 공동체 운동은 당대의 주류 사회 체계 및 문화에 저항, 새로운 삶의 형태와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운동이다. 역사적 다양성으로 인해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지만, 이상적 공동체 구축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공통적으로 지닌다. ‘대조사회’로 불리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 역시 당대의 대안 공동체 운동이었다.

 

경동현(안드레아)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은 근대와 탈근대 대안 공동체 운동은 이념과 실천에서 다른 특성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근대의 대안 공동체들은 기존 사회 체제와 국가 권력에 극단적으로 저항, 완전한 결별을 꾀한다. 하지만 탈근대사회 대안 공동체 운동은 기존 질서와의 결별이라기보다는 현재 삶의 조건을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상실됐다고 여겨지는 것들, 즉 주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와 협력, 이웃에 대한 조건 없는 배려와 돌봄, 공감과 연민, 경쟁에서 물러나 느리고 조용하게 누리는 평화 등등의 가치들을 회복하고 이러한 가치들을 유지해주는 정치적, 경제적 조건이나 삶의 유형을 추구한다.

 

그래서 어떤 대안 공동체가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경우 ‘생태 공동체’, 종교적 신념을 중심으로 할 때에는 ‘종교 공동체’, 또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투신이 공유될 때에는 ‘역사’ 또는 ‘문화 공동체’로 분류된다. 자녀 육아를 위한 ‘공동육아’, 주민들의 경제적 상황 개선을 위한 ‘신용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운영 등이 공동체 형성의 주된 동기가 되기도 한다.

 

 

마을 속으로 

 

경동현 연구실장은 최근 낸 박사학위 논문 「한국 천주교회 영성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연구」에서 대안 공동체 운동이 “근대화 과정의 산업화와 도시화로 해체된 공동체적 삶을 이 시대에 되살리고자 하는 공공성을 전제한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공동체 운동을 포함한 교회 안의 대안 공동체 운동들이 풀뿌리 대안 공동체 운동의 확산에 기여하길 기대했다. 

 

이화여대 교양교육원 김혜령 교수는 ‘마을공동체운동과 마을교회’(「기독교사회윤리」 제27집)를 주제로 한 논문을 통해 특별히 한국 사회의 마을만들기 운동을 두고 “세속적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고 의미 있는 변화”로서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윤리적 가치들을 협력으로 모색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리스도교 교회가 ‘마을교회’가 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아함을 갖게 된다. 왜 한국 사회 대안 공동체 운동의 하나로 크게 확산되고 있는 마을만들기에서 교회의 역할은 부각되지 않고 있을까?

 

종교는 공동체 운동의 원류와 원형을 지니고 있다.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대안 공동체의 원형이다. 한국에서 마을 공동체 운동의 원형은 1970년대 경기도 시흥의 철거민 정착마을 ‘복음자리’이다. 가톨릭농민회는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공동체 운동의 모범적 사례였다. 신용협동조합 운동은 애당초 가톨릭교회로부터 시작됐고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교회 안에서 처음 시작됐다.

 

변방으로 나아가는 ‘선교적 교회’로의 전환이 현재 보편교회의 화두다. 복음화는 교세 확장이 아니라 세상을 복음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인식은 이미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교회는 현재 사회 질서의 부조리를 해소하고자 하는 대안 공동체 운동에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교회가 마을 속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을까?

 

[가톨릭신문, 2018년 1월 28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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