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가족의 행복, 하느님 안에서 찾고 계십니까?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01 ㅣ No.1069

가족의 행복, 하느님 안에서 찾고 계십니까?

 

 

인간은 가정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세상으로 나온다. 마치 어머니의 품과 같이 그 안에서 안정을 느끼고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정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가정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 자이언티, <양화대교> 중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수는 아버지와 가족을 위해 노래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들.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집. 어떠한 허물이나 실패라도 받아주는 곳. 적어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정이 아닌가. 삶이 힘들고 고될수록 우리의 울타리가 튼튼하길 바라보지만 현실은 다르다. 2017년 3월 15일, 통계청과 한국 삶의 질 학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 결과를 보면 2006년을 100으로 했을 때 2015년 지수는 111.8로 나타났다. 10년 전보다 조금이나마 개선된 다른 영역들과는 달리, ‘가족 · 공동체 분야’만 유일하게 10년 전보다 1.4% 낮아져 뒷걸음질 쳤다. 집안마다 가훈 하나쯤 걸어두던 시절은 과거가 되었다. 상투적인 대화만 오가는 가족관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의 길을 찾고 자아성취를 추구한다. 공동체성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의 정체성 역시 모호해진다.

 

 

미로에 갇힌 듯한

 

오늘날 사회는 결과로 모든 것을 평가한다. 개인은 각자의 경쟁에서 이겨야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때로는 처절할 정도로 스스로를 소진시키기도 한다. 2017년 1월, 세종시에서 한 공무원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35세의 그녀는 세 아이 엄마였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그녀는 토요일과 일요일마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새벽에 출근해 업무를 보고 돌아왔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6년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305시간 많았다. 반면, 한 취업포털에서 직장인들에게 인생의 최종목표를 조사한 결과, 1위는 ‘화목한 가정’이었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 가정은 신앙 공동체의 기초이다. 부모와 자녀의 삶을 신앙으로 승화시키는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가정은 행복을 꿈꾸지만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에 갇힌 듯 매몰되어 간다. 최근 뉴스에 등장하는 가정폭력, 아동학대 사건들은 가정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단지 사적인 영역으로 여기고 가정 안에서는 ‘내 맘대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시, 단절, 폭력은 남이 알면 부끄러울까 침묵하지만, 가정에 더욱 등 돌리게 한다.

 

 

가정을 대신할 수 없다

 

현대 가정이 처한 현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높은 이혼율, 모두가 바쁜 현실, 대중매체의 영향 등. 그래서 더 나은 신앙 교육을 교회가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정을 대신해 누군가 나서야 한다고 말이다. 가정은 이제 교육자로서 신뢰를 잃어버린 걸까. 오늘날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직까지도 단순히 자녀들을 1년에 약 30주간,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본당이 마련한 신앙 프로그램에 데려다주기만 하면, 당연히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리라고” 여기게 되었다(토마스 H 그룸, 「신앙은 지속될 수 있을까?」,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4). 그러나 신앙은 근본적으로 삶 속에서 스며드는 것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평생에 걸친 신앙과 삶에 대한 태도가 무의식적으로 결정되는 곳이 가정이다.

 

자녀들은 가정에서의 직접적인 가르침보다 서서히 스며드는 가정 분위기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큰애가 아들이에요. 애가 사춘기 때, 방황을 심하게 했어요… 지금은 독립적이고, 부모에게 마음으로 존경하는 모습으로 변했어요. 이를 보니까 예수님의 모범적인 상, 신앙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알게 모르게 일상에 투영이 되었던 것 같아요”(A 가정의 아버지). 과연 자녀들은 어떨까? “신앙이라는 무언가 공통적인 것 아래에서 살아 온 것이 행복했어요. 나름에 공동체에서 공유하고 경험했던 것들이, 특히나 경제 논리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삶을 살기를 요구하잖아요”(B 가정의 자녀)(강선훈, 「가정신앙교육의 자녀 전인형성에 관한 연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5 참조).

 

 

완벽한 가정은 없다

 

신앙 안에서 한 사람을 기르는 일은 그 가정이 완벽해야 가능한 일이 아니다. 흠 많고 연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소명을 우리에게 내려주셨지만 우리는 부족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그 자리에서 비켜선 것은 아닐까? 모든 이는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저마다 머물 가정을 필요로 한다. 종교교육학자인 토마스 H 그룸은 그의 저서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한 명의 그리스도인을 길러내려면 어떤 공동체나 가정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한 명의 그리스도인을 길러내려면 마을에 다양한 학교들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가정이 있어야 한다’고 답한다.

 

사회는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많은 돈을 벌어 비싼 승용차, 더 큰 아파트에 사는 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달리고 또 달린다. 하지만 행복은 보장되지 않는다. 가족이란 공동체는 사회에서 최소의 버팀목이 되며 개인은 그 안에서 치유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그 어느 곳보다 신앙이 살아야 하는 장소이고, 하느님을 증거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곳이다. 사회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우리 삶을 침해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행복하기 위해 오늘날 가정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외침, 2017년 12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이지원 팀장]



1,38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