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전례ㅣ미사

[미사] 전례의 숲: 영성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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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9-08 ㅣ No.1686

[전례의 숲] 영성체 (1)

 

 

영성체는 성체 성혈, 곧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예식입니다. 미사가 잔치, 곧 공동식사라면 영성체는 빠뜨릴 수 없는 본질 부분입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음료를 마시지 않는 식사는 정상이 아니고 식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통에 따라 주례가 먼저 영성체를 합니다. “주례 사제 또는 공동 집전 사제는 신자들 뒤에 영성체를 해서는 결코 안 된다.”(구원의 성사 97)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 관습은 초 세기부터 내려온 관습으로 동방 교회들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직자보다 신자들이 먼저 영성체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식사에서 주인은 손님에게 먼저 음식을 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사와 영성체에서 신자들은 손님이 아닙니다. 주례와 봉사자들과 함께 주인입니다. 사제는 주인이라기보다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봉사자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로서 회중을 대표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신자 대표로서 가장 먼저 영성체를 합니다.

 

교우들은 봉사자에게서 성체와 성혈을 받습니다. 신자들은 스스로 모실 수 없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빵을 주시고 잔을 건네주신 분이 예수님이었듯이 봉사자는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성체와 성혈을 모시기에 앞서 신앙선언을 합니다. 이미 3세기에 정해진 기도문이 나타납니다(사도전승). “(주교는) 빵을 쪼개어 한 조각을 주면서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천상의 빵입니다.’ 그러면 영성체 하는 이는 대답할 것입니다. ‘아멘.’”

 

성 암브로시오와 성 아우구스티노가 증언하듯이 고대 로마 교회에서는 보통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면, 신자는 “아멘”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멘”은 인장을 찍는 것으로 하나의 신앙 고백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을 듣고 ‘아멘’ 하고 대답합니다. 그대의 아멘이 참되기 때문에 그대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됩니다.”

 

 

성체와 성혈을 모시기에 앞서 신앙선언

 

주님의 몸에 대한 공경 때문에 다른 표현들이 생겨났습니다. 전례 전통에 따라 다양합니다(L. 데이스).

 

- “이는 주 우리 하느님 구세주의 거룩한 몸, 귀중한 피.”(성 마르코 전례).

- “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 그리스도의 몸,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잔, 그리스도의 피.”(이집트 전례).

-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팔레스티나 전례).

 

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로마 교회에서는 중세에 생긴 기도문을 사용하였습니다. 청원 기도 형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저의(그대의) 영혼을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사제는 신자들을 위해서도 이 기도를 바쳤고, 신자들은 아무 말 없이 성체를 모셨습니다. 성체를 손이 아니라 혀로 받아 모신 역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공의회 이후 미사경본은 사제 영성체와 신자들의 영성체를 위하여 다른 기도문을 제시합니다. 사제는 옛 기도문을 단순하게 다듬은 기도문을 바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피는) 저의 영혼을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이 기도문은 영성체가 거룩한 식사로서 영원한 생명을 보장한다(요한 6, 54)는 뜻을 밝힙니다. 또한 영성체를 통하여 예수님의 마지막 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의 영광스런 몸과 결합되리라는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한편 신자들의 영성체를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고대의 단순한 구절을 사용합니다. 봉사자는 영성체하려는 이 앞에서 성체나 성작을 조금 높이 들어 “그리스도 몸(피)!” 하고 말합니다. 성체를 성혈에 적시어 줄 때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 합니다. 이 순간 그는 먼저 믿음과 존경심을 가지고 성체와 성혈에 경의를 표하고(총지침 160), 이어서 분명하게 “아멘”으로 대답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현존에 관한 믿음을 고백하며 성체와 성혈을 받습니다.

 

영성체에서는 보통 행렬을 합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신자들이 질서 있고 품위 있게 이동하려면 순서를 지어 행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이 행렬은 성체를 모시려는 이들이 이루는 일치를 드러내면서 영성체가 공동체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한편, 전례에서 모든 다른 행렬이(입당 행렬, 예물 봉헌 행렬) 그러하듯이 영성체 행렬도 순례하는 교회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행렬은 성체가 하늘나라를 향한 여행을 위한 음식임을 드러내고, 영성체를 통하여 바라던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받는다는 확신을 표현합니다.

 

 

영성체 성가는 영성체 하는 신자들의 일치 드러내

 

행렬하는 동안 성가(영성체송이나 다른 성가)를 부릅니다. 영성체 성가는 4세기에 증언이 있는 매우 오래된 미사 요소입니다. 고대에는 선창자가 시편 구절을 노래하고 신자들은 같은 후렴으로 화답하였습니다. 144(145), 시편 33(34)을 자주 불렀습니다. 예루살렘의 치릴로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거룩한 노래로 거룩한 신비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초대하는 선창의 노래를 들으십시오. 그는 노래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마찬가지로 시편 144(145), 15도 영성체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은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

 

영성체 성가는 기능성 성가이므로 영성체를 하는 동안에 부릅니다. 곧 주례가 성체를 모실 때 시작하고, 신자들이 영성체 하는 동안 계속합니다. 다만 영성체 뒤에 찬미나 감사 성가가 있을 때는 알맞은 때 끝냅니다(총지침 86). 이 지침은 찬미나 감사 성가를 부르기 위한 여백을 주고, 무엇보다 교우들에게 영성체 뒤에 침묵과 묵상의 시간을 주기 위한 배려입니다.

 

영성체 성가의 기능은 세 가지입니다. 영성체 하는 신자들의 일치를 드러내고, 기쁨을 표시하며, 영성체 행렬이 더욱 형제적 성격을 띠게 하는 것입니다(총지침 86). 성가는 성가대 홀로 부르거나 성가대나 선창이 교우들과 함께 부를 수 있습니다(총지침 87). 회중이 다 함께 부르는 방식은 제시하지 않는데 신자들이 행렬을 하면서 노래에 집중하기 어려운 현실을 헤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지한 것은 아닙니다. 고대 관습에 따라 신자들이 성가에 참여하는 것이 미사경본의 개정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영성체 성가로 로마 성가집들에 나오는 성가나 주교회의가 인준한 성가를 부릅니다. 노래하지 않을 때는 미사경본에 실린 영성체송을 낭송합니다. 신자들 전체나 몇 사람이나 독서자가 낭송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사제 자신이 영성체 한 뒤에,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주기 전에 바칩니다.

 

영성체 뒤에 찬미나 감사 성가를 부를 때에는 경우에 따라 이 낭송 방식도 사목 이유에서 좋을 수 있습니다. (영성체 성가 또는 영성체송은 꼭 해야 하고, 영성체(와 침묵) 뒤에 하는 찬미 성가는 선택입니다. 두 성가의 기능과 내용이 전혀 다르고 달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성체 뒤에 하는 성가를 영성체 성가로 갈음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미사경본에 실린 영성체송들은 거의 시편이나 다른 성경 구절을 인용합니다. 내용은 영성체와 관련이 있거나 전례 시기 또는 그날(축제, 예식, 기원, 신심, 위령) 미사와 연결됩니다. 영성체 성가를 고를 때 참고해야 할 부분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9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전례의 숲] 영성체 (2)

 

 

1. 그 미사에서 축성한 성체로 하는 영성체

 

초 세기와 고대 교회에는 신자들은 자신이 참여한 그 미사에서 축성된 성체를 받아 모셨습니다. 초대 교회부터 성체를 보관하는 관습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미사에 참석할 수 없는 병자들의 영성체를 위해서입니다. 보관된 성체를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나누어주지는 않았습니다.

 

중세에는 미사 거행 자체보다 미사의 효과에 관심을 두게 되어 미사 거행과 영성체의 깊은 관계에 대한 이해가 흐려졌습니다. 영성체를 자주 하지 않게 되고 성체를 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축성된 빵을 모시지 않고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일치를 이루는 것을 추구하는 “영적인 영성체”(신영성체) 관습도 생겼습니다. 영성체 하는 순간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미사 뒤에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미사 전에도 하였습니다. 이런 영성체는 당연히 미리 축성된 성체로 행해졌습니다. 이렇게 보관된 성체로 하는 영성체가 일반적이 되었고, 사제 영성체 뒤 곧바로 그 미사에서 축성된 성체로 하는 영성체는 예외가 되었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미사 거행에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강조하면서 “신자들이 같은 거룩한 제사에서 축성된 주님의 몸을 받아먹도록”(전례 55) 권고하였습니다. 편리함만 생각하여 사제용 큰 제병만을 축성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대부분 본당에서는 사제와 제의방 담당은 영성체할 신자들의 숫자를 대략 헤아려 제병을 준비합니다. 물론 필요한 때에는 감실에 보관된 성체를 나누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신자들은 이전 미사에서 축성된 성체로 영성체 해주는 것을 거부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사제는 그 미사에 참여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미사 밖에서 영성체 해줄 것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에서는 병자를 제외하고 신자들은 미사 밖에서 영성체 할 수 없습니다.

 

 

2. 성체와 성혈 모두 받는 영성체

 

초대 교회에서는 성체와 함께 성혈을 모시는 것이 정상적이었습니다. 3세기 교회 문헌은 ‘성혈이 든 잔을 받을 때 쏟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규정을 전합니다(사도전승). 오늘날에도 동방교회에서는 양형 영성체를 하는 고대 관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방 교회에서는 12세기부터 사제만 양형 영성체를 하고 신자들은 빵 영성체만을 하였습니다.

 

그 배경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축성된 포도주는 주님께서 실제 현존하시는 주님의 피기 때문에 한 방울이라도 흘릴 것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위생 문제도 작용하였습니다. 나아가 축성된 빵 안에는 피를 가지신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현존하신다는 중세 신학의 영향도 있습니다. “살은 양식 피는 음료, 두 가지의 형상 안에, 같은 주님 계시도다.”(토마스 아퀴나스 성체 송가). 1415년 콘스탄스 공의회는 평신도들이 성혈을 모시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이는 구원을 얻는데 양형 영성체가 필요하다는 주장(후스파 이단)에 대한 조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양형 영성체를 폭넓게 허용하였습니다. 미사경본은 트리엔트 공의회 가르침을 되풀이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한 가지 형상만의 영성체로도 그리스도를 참된 성사로, 온전하게, 그리고 모두 다 모시는 것이므로 영성체의 효과와 관련하여 오직 한 가지 형상만으로 영성체를 한 이들도 구원에 필요한 은총을 얻는 데 아무런 결함이 없다.”(총지침 282) 그러나 공의회 정신에 따라 신자들의 양형 영성체를 크게 권장합니다. “영성체는 성체와 성혈 양형으로 할 때에 한층 더 완전한 모습을 갖춘다. 양형 영성체로 성찬 잔치의 표지가 한층 더 완전하게 드러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 주님의 피로 맺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이 표현되며, 성찬 잔치와 아버지 나라에서 이루어질 종말 잔치의 관계가 더욱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총지침 281)

 

사제들은 신자들에게 양형 영성체를 장려할 의무가 있습니다. 실제로 새 미사경본은 양형 영성체의 범위를 거의 무제한으로 넓혔습니다. 세례(견진), 혼인, 서약 미사에서는 대상자들이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 참석한 모든 사제와(공동 집전하지 않고도) 미사에서 봉사하는 부제와 다른 봉사자들, 수도원 또는 공동체 미사에서 공동체 회원들, 신학생들, 피정, 영성 모임, 사목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제는 교구장 허락을 받아 자신의 판단에 따라 누구에게나 양형 영성체를 해 줄 수 있습니다. 교구장 주교는 양형 영성체에 관한 자기 교구 규정을 제정할 수 있고, 주교회의는 양형 영성체의 허용 범위에 관하여 사도좌의 승인을 받아 규정을 정할 수 있습니다(총지침 283).

 

양형 영성체를 위해서는 마땅한 교리교육이 필요합니다. 또한 축성된 포도주를 흘릴 위험과 위생적 어려움을 없애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양형 영성체를 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성체 할 사람이 너무 많거나, 성작에 다가서는 것을 쉽게 정돈할 수 없거나, 포도주의 출처와 질을 쉽게 보장할 수 없는 경우, 봉사자가 충분하지 않는 경우입니다(구원의 성사 102).

 

성혈을 모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직접 잔으로 마시거나, 또는 준비된 빨대나 수저를 이용할 수 있고 또는 성체를 축성된 포도주에 적셔서 할 수도 있습니다(총지침 245). 가장 정상적인 방법은 직접 잔으로 마시는 것입니다. 성체를 모신 다음 봉사자에게 다가가 “그리스도의 피” 하면 “아멘” 하고 응답한 뒤 두 손으로 잔을 받아 입에 대고 조금 마신 뒤에 다시 잔을 봉사자에게 건네줍니다. 봉사자가 성작 수건으로 성작 입 닿은 곳을 닦습니다(총지침 286). 그러나 신자들이 차례로 잔을 넘길 수 없고, 제대에 가서 직접 잔을 들고 영성체할 수 없습니다. 성체를 성혈에 적시어 영성체 하는 경우에게는 사제에게만 받을 수 있습니다(총지침 287, 구원의 성사 103). 성체이든 성혈이든 언제나 봉사자에게 받는 것이 충만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양형 영성체를 하는 때에는 성작을 여러 개 쓸 수 있습니다(구원의 성사 105). 그러나 성혈을 다른 그릇에 옮겨 담을 수는 없습니다(구원의 성사 106).

 

 

3. 손으로, 서서하는 영성체

 

고대 교회에서는 신자들이 손으로 성체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치릴로는 새 신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받쳐 왕좌처럼 만드십시오. 왼손은 임금을 영접하기 때문입니다. “아멘”이라 말하면서 그대 손 오목한 곳에 그리스도의 몸을 영접하십시오.”(신비 교육). 입으로 영성체를 하는 방식은 중세에 생겼습니다. 이 관습의 배경에는 성체에 대한 특별한 존경(축성된 빵은 축성된 사제만 만질 수 있다!), 작은 조각이 바닥에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을 피하려는 마음, 집으로 가져가는 따위 다른 남용을 방지하려는 생각이 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성체를 자신의 선택에 따라 손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총지침 161).

 

고대에서는 서서 영성체를 하였지만 중세에 입으로 성체를 모시는 방식과 함께 무릎을 꿇는 관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관습도 성체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었습니다. 사제가 입에 성체를 분배할 때 무릎을 꿇는 것이 더 편리하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공의회 전례 개혁 이후 서서 영성체를 하는 고대 관습을 되살렸습니다. 다만 영성체를 하기 전에 정중하게 절하여 경의를 표시해야 합니다(총지침 160). 영성체는 신자의 선택에 따라 서서할 수도 있고 무릎을 꿇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제는 무릎을 꿇고 영성체를 하기를 원하는 신자에게 원칙적으로 성체 분배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총지침 160).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0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전례의 숲] 영성체 (3)

 

 

신자들의 영성체가 끝나면 영성체 예식 전체를 마감하는 예식으로 들어갑니다. 감사의 예식과 영성체 후 기도입니다.

 

 

1. 침묵과 찬미

 

영성체를 마친 뒤에 공동체는 영원한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선물로 받은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두 예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각자 하는 침묵 기도와 공동체 전체가 부르는 성가입니다.

 

미사경본은 두 가지 모두 의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총지침 88).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고 다 생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무시해도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자들의 특성과 그때 상황을 생각하여 필요하면 생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먼저 각자 침묵 속에 기도를 바칩니다. 침묵은 전례 거행의 중단이 아니라 그 본질 요소에 속합니다. 특히 영성체 후 침묵은 미사 전체의 영혼인 감사드림이 펼쳐지는 풍요롭고 품위 있는 순간입니다. 그 뜻을 미사경본은 이렇게 밝힙니다. “영성체 후에 하는 침묵은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기도를 바치도록 이끌어 준다.”(총지침 45)

 

영성체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는 각자 주님과 하나가 되고, 또 모두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그러므로 침묵 기도는 개인 기도이기는 하지만 공동체가 특별한 순간에 한 마음으로 함께 바치기 때문에 공적인 성격을 띱니다.

 

미사에는 여러 침묵의 순간이 있습니다. 영성체 후 침묵은 무엇보다 미사에서 바친 감사제사에 머물도록 도와줍니다. 감사, 경배, 찬미의 기도입니다. 또한 참된 기쁨과 생기를 되찾기 위하여 삶의 질서를 정돈할 결심을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필요에 따라 화해성사에 다가갈 마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아울러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자신과 다른 이의 기쁨과 괴로움의 상황을 주님께 맡길 수도 있습니다.

 

한편, 미사에서 여러 이유로 성체를 모시지 못하거나 모실 수 없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에게도 이 침묵은 미사 참여의 중요한 순간입니다. 영적 영성체(신영성체) 안에서 성사 영성체를 하며 주님과 충만한 만남을 하려는 갈망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성체 후 침묵은 1~2분의 짧은 순간이지만 관상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영성체로 주님을 모신 우리는 그분의 좋으심과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분의 사랑을 느낍니다. 우리는 그분 은총으로 그분을 닮습니다. 겉으로 보면 침묵은 멈춤입니다. 스스로 말과 동작을 중지합니다. 밖에서 오는 소리나 모습들도 끊습니다. 안으로 보면 침묵은 모든 생각들을 흘려보내고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입니다. 마음은 차분해지고 맑아지고 밝아집니다.

 

침묵 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시편 구절을 마음으로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 하나이다.” 또는 익숙한 기도문이나 성가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예수님께 두며 짧은 문장으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단순하게, “주님!”, “예수님!” 같은 한 낱말을 되풀이 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호흡에 의식을 두고 감각과 느낌과 생각을 흘려보내거나, 무엇을 의식하지 않고 고요히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침묵 기도를 쉽게 생략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아가 침묵 기도에 도움이 안 되는 악기 연주나 음악(보기를 들어, 이른바 “특송”, 게다가 박수까지!) 또는 묵상 글 낭송은 신중해야 하겠습니다.

 

침묵 기도는 미사가 끝난 뒤에  계속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사제는 미사를 마치고 감사의 기도를 바치는 것이 마땅합니다(교회법 909조).

 

침묵 기도 뒤에 회중은 성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영성체 후 성가”입니다. 영성체 성가는 영성체 행렬을 동반하며, 성가대가 중심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영성체 후 성가는 영성체 한 뒤에 신자들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며 회중 전체가 부릅니다(총지침 87-88).

 

영성체 후 성가는 영성체 성가 또는 성체 성가와 다릅니다. 따라서 영성체 성가 뒤에 곧바로 영성체 후 성가를 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두 성가 사이에 어느 정도의 침묵 시간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 때문에 미사경본은 영성체 성가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총지침 86). 영성체송을 낭송한 뒤에 오르간 연주를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 성가의 뜻을 더 드러낼 수 있겠습니다. 영성체 후 성가는 자체로 한 예식을 이룹니다. 곧, 영성체 성가는 영성체 동안 계속 부르지만, 영성체 후 성가는 행렬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길 필요가 없습니다.

 

영성체 후 성가는 찬미와 감사의 정감을 표현합니다. 침묵 기도에서 신자들에게 공통된 정감이 이제 회중 전체의 노래 안에서 외적이고 공동체적 표현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 노래나 해서는 안 됩니다. 습관적으로 영성체 성가를 되풀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보통 찬양 시편(34, 150)이나 찬가는(다니 3, 57-88. 56; 3, 52-57) 대표적인 성가로 꼽힙니다.

 

 

2. 영성체 후 기도

 

신자들이 침묵 기도와 성가로 바친 감사의 마음은 교회의 장엄한 기도인 “영성체 후 기도” 안으로 흘러갑니다. 4세기 문헌(사도헌장)이 말하는 매우 오래된 미사 기도입니다. 본기도, 예물기도와 마찬가지로 주례의 기도로서 사제가 공동체를 대표하여 바칩니다. 주례의 기도는 정해진 예식 묶음을 마감하는 기능을 갖습니다. 본기도는 시작 예식들을 마감하고, 예물기도는 예물 준비 예식들을 마감하며, 영성체 후 기도는 영성체 예식들을 마감합니다. 다만 영성체 후 기도는 성찬 전례, 미사 전체를 마감하는 특징도 지닙니다. 이 때문에 고대 성사집에서는 “영성체 후 기도”와는 다른 “마침 기도”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구조는 본기도와 비슷합니다. 기도의 권고(“기도합시다”), 짧은 침묵의 순간, 사제의 기도, 회중의 환호(“아멘”)로 이루어집니다. 신자들이 이미 영성체 뒤에 침묵의 시간을 가졌으면 침묵은 생략합니다(총지침 165). 또한 본기도와 달리 기도를 맺는 문장은 짧습니다(총지침 89).

 

이 기도로 사제는 미사와 영성체의 효과를 청합니다(총지침 89). 이를 위해 빵, 음식, 약, 또는 이와 비슷한 낱말들을 사용합니다. 죄의 정화, 영원한 생명, 하늘나라, 성령의 선물에 대한 청원들도 꾸준히 나옵니다. 청원 내용은 전례 축제, 전례 시기, 미사 성격에 따라 특별한 색깔을 띠기도 합니다. 한편, 어떤 기도들은 신자들의 구체적 삶과 연결시켜 표현하여 미사와 삶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드러냅니다.

 

“주님, 저희를 성자의 살과 피로 길러 주시고 

주님의 성령으로 다스리시어 

저희가 말보다는 행동으로 진실하게 주님을 찬미하며 

마침내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연중 제9주일 영성체 후 기도)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1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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