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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제는 사회 통합이다: 사회 통합, 선진국을 반면교사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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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20 ㅣ No.1412

[경향 돋보기 - 이제는 사회 통합이다] 사회 통합, 선진국을 반면교사 삼아

 

 

대한민국의 사회 갈등 양상과 사회 통합

 

사회의 다원화와 분권화에 따라 정부의 정책 결정과 집행에 수반되는 사회 갈등의 양상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정책 조정이나 협력이 점차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이해 당사자인 국민이나 주민은 번번이 해당 정책을 수용하지 못한 채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조기 총선을 통해 새 정부가 출범한 요즈음의 상황은 그간의 분열과 반목이 폭발할 것인지, 통합과 화해의 새 시대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기로에 놓인 형국이다.

 

사회 갈등은 사회 발전을 해치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그동안의 억눌린 욕구와 피해 의식이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표출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라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갈등은 사회의 목표와 성과 달성에 방해가 되므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며 권위적인 힘으로라도 막아 내야 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갈등을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산물로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퍼지고 있다.

 

 권위적인 힘의 봉인이 풀리면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없기에,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화롭게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참여와 협력을 강조하고 합의를 이룰 것을 중시하는 최근의 갈등 관리 방식은 이러한 고민과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성공적인 갈등 관리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지역적 사회적 신뢰를 높여 우리 사회의 사회 자본을 넓혀 보충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사회 통합과 정부에 대한 신뢰를 북돋우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사회적 신뢰와 사회 자본이 확대되면 사회적 갈등이 최소화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갈등을 관리하기가 쉬워진다.

 

결국 갈등 관리와 사회 통합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역량을 강화하는 선순환 또는 악순환 관계를 갖는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사회 통합과 사회적 신뢰, 사회 자본을 넓혀 보충하는 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최근의 공동체 활성화 운동과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사회 통합으로 나아가는 데 주요한 거점이 될 수 있다.

 

 

해외 사례의 시사점

 

이런 차원에서 우리보다 사회 통합의 수준이 높다고 하는 이른바 선진국의 갈등 관리와 사회 통합 노력을 살펴보는 일은 우리 사회의 화합을 촉진하는 데 중요하다. 서구에서는 사회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사회 통합을 촉진하고자 ‘대안적 분쟁 해결’(ADR :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방안을 발전시켜 왔다. ADR은 넓은 의미로는 사법적 해결 외의 갈등 해결 방식을 총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곧, 협상과 조정, 중재 등 법원의 재판 외 제3의 방법을 통한 갈등 해결 방법을 뜻한다.

 

소송을 통한 갈등 해결은 시간상 금전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법원의 판결 결과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문제 때문에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최근의 갈등 관리의 방향이나 사회 통합 이념과 배치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ADR은 본디 소송을 통한 문제 해결이 일반화된 미국과 같은 사법 국가에서 과도한 사법 비용을 줄이려는 방안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소송을 통한 갈등 해결이 갖는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방안으로 더 주목받고 있다.

 

송전 선로의 설치를 둘러싸고 독일 정부가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려고 한 노력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우리에게 중요한 참고가 될 만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참사 이후 독일 메르켈 총리는 2022년까지 모든 핵 발전소의 완전 폐쇄를 선언하였다. 이후 독일에서는 원자력 에너지를 대체하는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 논의가 더욱 활발히 진행되었고, 북부 지역의 풍부한 풍력이 중요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원전과 관련된 갈등 대신 풍력 에너지의 지리적 편중으로 말미암아 에너지를 끌어오려는 송전 선로의 설치 문제는 중요한 사회 갈등 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에 독일 연방환경부는 시민 단체의 대표를 포함하는 특별 팀을 구성하여, 송전 선로가 지나가는 지역 주민 대표와 정부, 그리고 시행자 간 합리적 갈등을 조정하였다. 사업 시행사인 한국전력과 사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보상을 포함한 ‘갈등 관리’를 진행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는 국가 주요 현안과 관련된 정책이나 사업에 대해 전 국민의 공공 토론을 일정 기간 동안 거치게 하여,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론화가 이뤄질 수 있게 한다. 이를 담당하는 기관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라고 할 수 있는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 Commission Nationale du Debat Public)로, 제도의 성패는 철저한 준비와 위원회의 독립성과 중립성 확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 공공 토론회 개최를 위한 기준은 여러 가지로 명시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위원회가 토론회 개최를 결정하며, 기본적으로 3억 유로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는 정부 사업은 공공 토론이 실시되고 있다. 공공토론에 부쳐진 사업 가운데 70% 이상이 원계획을 수정하였고, 토론 과정에서 백지화된 사례도 다수 있다. 공공 토론 과정에서 사업 계획은 더 세련되게 다듬어질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민 간 상호 신뢰를 증진하여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효과가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사용 후 핵연료’ 처분 시설의 공론화 과정도 우리네 공공 정책 추진 방식에 주요한 참고가 될 만하다.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 중인 모든 나라에서는 사용 후 핵연료의 안전한 관리와 처리(처분)가 가장 중요한 현안이다. 핵연료의 위험성 때문에 처분 시설의 입지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스웨덴과 핀란드는 자국 내 공론화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사용 후 핵연료 (최종)처분 시설의 공사를 진행 중이다.

 

아직까지 과학적 기술의 완성조차 이뤄지지 않은 현실에서 두 나라가 최종 처분장 입지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두 나라의 높은 정부 신뢰 수준과 적절한 공론화 절차를 통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가 일부 원자력 전문가와 환경 단체와 원전 지역 주민과 같은 대표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공론화’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과학적 불확실성 문제 해소와 사회적 갈등 예방은 공론화 절차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실행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 가능하다. 앞으로 주요 국가 시책 사업을 추진할 때 정교하게 설계된 공론화 절차 도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 정부의 사회 통합을 위한 노력

 

· 정확하고 적실한 갈등 진단의 필요성 - 공공 갈등의 현황과 추세에서 살펴볼 때 앞으로도 공공 정책에 따른 우리 사회의 갈등은 당분간 계속 증가하게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정책 수용성을 높이고 갈등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려면 예상되는 사회 갈등에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는 정부와 우리 사회의 자세가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급한 불을 끄는’ 식의 임시방편적 대응은 갈등을 제대로 관리하는 모습이라 할 수 없다.

 

모든 처방은 정확한 진단 이후 가능한데도, 정부는 갈등 사안이 사회적으로 논쟁거리가 된 뒤 며칠 안에 ‘처방’을 발표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빈번히 보이고 있다. 갈등 해소를 위한 처방으로서 정책 결정과 명령은 정확한 진단 뒤 이뤄져야 하며, 이는 효과적이고도 효율적인 협의와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열쇠라 하겠다.

 

· 조정에 대한 몰이해와 역량 배양 - 한국에도 여러 분쟁 조정 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나, 이들 제도를 진정한 조정 기제로서 받아들이기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많은 연구가 여러 분쟁 조정 위원회의 한계로 이행 강제력과 관련된 법적 효력의 한계를 문제 삼고 있지만, 이는 조정에 대한 개념적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정은 기본적으로 당사자 간 협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제삼자가 당사자들 스스로 서로 만족스러운 합의안을 만들게 도와주는 것이다. 한국의 여러 분쟁 조정 제도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법적인 이행 강제력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조정 위원회의 부족한 조정 능력에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실효성 있는 분쟁 조정 제도를 위해서는 조정 위원회의 실질적인 조정 능력을 배양하고, 이해 당사자들의 협상 능력을 제고하는 교육과 학습이 절실하다.

 

·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통한 사회 통합 노력 - 공공 갈등 발생을 최소화하고, 발생한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핵심은 지역을 포함한 전 사회적 신뢰 향상에 있다. 그러려면 무너진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이를 통한 주체적인 지역 문제의 해결 능력을 길러야 한다. 최근 지역 공동체 활성화 운동과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사회 통합으로 나아가는 데 주요한 거점이 될 것으로 본다. 사회적 경제와 공동체 활성화 의제는 우리 사회의 신뢰 제고와 갈등 저감 차원에서도 심도 있게 다뤄져야 할 가치가 있다.

 

· 갈등에 대한 도구적 접근 탈피와 정부 신뢰 제고 - 갈등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와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변하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정부의 갈등 관리에 대한 인식은 ‘정책과 사업을 위한’ 갈등 관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부 신뢰를 제고하고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신뢰 수준을 높이려면 갈등에 대한 도구적 대응 접근을 벗어나 더 적극적인 갈등 관리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신뢰를 높이려면 애초에 정책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 또는 사업 설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공공 갈등 해결을 위한 합의 형성 절차와 사전 공론화 절차는 이를 위한 중요한 ‘넛지’(Nudge : 강제적인 규제나 감시 대신 자연스러운 참여를 유도해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는 것)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위험 사회와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저서 「위험 사회」(Risk Society)에서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불확실성은 그만큼 더 높아지고, 그로 말미암아 사회 갈등은 더욱 폭발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창했다. 사회 갈등의 해결은 결국 과학성이나 합리성이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뜻이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사용 후 핵연료 처분 시설의 입지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부에 대한 높은 신뢰는 사회적 신뢰 향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합의로 이어진다. 사회 화합을 위하여 사회적 신뢰를 드높이는 노력과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 채종헌 - 한국행정연구원 안전통합연구부 부장.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의 갈등관리심의위원회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새로운 시대의 공공성 연구」,  「갈등 조정, 그 소통의 미학」 등의 편저자이다.

 

[경향잡지, 2017년 7월호, 채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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