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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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영성생활에 대한 단상 (5) 카나의 혼인잔치와 전례 안의 성모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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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09 ㅣ No.516

[레지오 영성] 영성생활에 대한 단상(斷想) (5) 카나의 혼인잔치와 전례 안의 성모 마리아

 

 

요한복음서에서 마리아는 오직 ‘카나’(요한 2,1-11)와 ‘갈바리아’(요한 19,25-27) 이 두 장면에서만 등장한다. 곧 요한복음서 전체 구도 안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공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의 위치에 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가 마치 괄호 안에 넣은 것처럼 놓여 있다. 말하자면 마리아라는 인물의 괄호 안에 예수님의 공생활 사명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가슴에 품고 있는 것처럼 아주 신중하면서도, 동시에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완전한 이해와 정감이 드러나는 카나에서 시작되어 갈바리아에서 마친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가 담겨 있는 것이다.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알리는 첫 시작이다. 세례 장면을 소개하는 공관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하늘로부터의 소리이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 마르 1,11 ; 루카 3,22) 그리고 이 소리는 메시아로서 고난의 사명을 전해주는 내용이었던 영광스러운 변모 때에도 하늘에서 들려온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마르 9,8; 루카 9,35)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인 세례 장면을 전하지 않는 유일한 복음서가 바로 요한복음서이다. 그 대신 요한복음서는 공생활의 시작에서 마리아의 목소리를 제시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이 말씀은 바로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내용과 병행하고 있다. 바로 마리아의 이 말씀이 카나에서 어머니를 통해서 예수님께 전달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전해주는 마리아의 말 속에 담겨진 이 예언적인 의미는 오직 예수님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말 속에서 하느님 음성 감지

 

예수님께서 당신 어머니의 말 속에서 하느님 음성의 메아리를 감지하였다는 증거가 바로 예수님께서는 처음에는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라고 거절하다가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는 말을 듣자, 마음을 돌려 곧 물을 술로 만들게 되었던 점이다.

 

곧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단지 어머니께 대한 체면치레에서 나온 존경이나 예의를 지키느라 마지못해서 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어이없는 소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나약한 마음에서 행한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성부의 뜻에 대한 메아리를 명백히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행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서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요한 2,11)고 표현하면서 카나의 혼인잔치를 통해 공관복음서에서 세례를 통해 제시하는 예수님의 공생활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복음서에서의 ‘때’란 그 사람이 특별히 숙명 지워진 사명을 성취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때’란 성부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예수께서 당신의 사명을 결정적으로 성취한 순간이다. 그것은 사탄, 곧 죄와 죽음을 쳐 이긴 그분의 승리의 때, 곧 수난의 때이며 고통의 때인 동시에 승리의 때이므로 요한복음에서는 그것을 영광, 곧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승리와 밀접히 연결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영광이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처음 드러났다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카나의 영광은 아버지께서 십자가상에서 아들에게 줄 영광과 온전히 동일한 것이며, 공교롭게도 요한 복음서에서는 카나와 갈바리아의 이 두 장면에서 이러한 영광의 목격자로 마리아가 등장하는 것이다.

 

 

교회는 성모 마리아 공경을 전례 안에서 공경하라고 강조

 

카나의 혼인잔치(요한 2,1-11) 내용은 전례력으로 연중 제2주일 다해와 공현 대축일 전(1월 7일) 복음으로 들려준다. 전례 안에서 주일과 대축일, 축일 또는 기념일로 성모 마리아는 구세사 안에서의 관련성에서 특히 주님이신 예수님과의 연관 안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의 전례는 그간의 성모신심에서 비롯된 수많은 축일을 대폭 쇄신하여 연중 1월1일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을 포함하며 4번의 대축일과 2번의 축일, 그리고 8번의 성모 기념일을 지내고 있다.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과거 ‘성모취결례’(2월2일)나 ‘성모영보’(3월25일)를 기념하는 전례일도 그 취지 또한 신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본연의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뀌어 ‘주님 봉헌 축일’, ‘주님 탄생 예고 축일’로 그 명칭을 바꾸었다. 그것은 성모님만을 따로 떼어 기리자는 취지가 아니라 전례의 중심이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중심이며, 그분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성모 마리아 공경을 무엇보다도 전례 안에서 공경하라고 강조하고 있다(교회헌장 67항). 그럼으로써 사적인 차원에서 성모공경에 관하여 ‘지나친 마음의 협소함이나 거짓 과장’을 피하기를 호소하고 있다. 교황 바오로 6세 회칙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에서 1차적으로 전례 안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공경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전례는 교의적 내용을 풍부하게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사목적으로도 큰 효과를 지닌 만큼 다른 모든 예배의 탁월한 모범이기 때문이다(1항). 또 전례 안에서 마리아 공경은 항상 육화에서부터 영광스러운 재림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신비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2항). 무엇보다도 전례 안에서 마리아 공경은 그리스도와 연관되어 있고, 그리스도께 속해 있기 때문이다(25항).

 

미사와 함께하는 전례란 다분히 전례력에 따라 축제의 성격을 지닌다. 축제는 일상에 힘을 부여해주기에 일상을 담게 된다. 아울러 평범할 것 같은 일상은 또한 축제를 통해 발산되는 그 무엇이 있기에 당연히 축제를 지향하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며 다시 카나의 혼인잔치로 돌아가 본다.

 

포도주는 묵을수록, 또 오래될수록 그 맛과 향이 숙성된다고 한다. 우리의 일상의 삶 또한 오래될수록 숙성되고 달콤하며 향기 그윽한 포도주와 같은 삶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영적인 삶이자 영성이 되겠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요한 2,10)라고 하는 손님들의 반응을 상기해본다. 우리는 이 표현을 단순한 감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감사의 표현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이 반응은 단조롭고 똑같기만 한, 어찌 보면 다소 짜증스럽기만 한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아직까지도 그 아름답고도 소중한 마음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한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다. 각박하고 냉혹한 현실과 고만고만한 일상생활에 찌들려 사람들에 치여 더 이상 사람에 대한 기대조차 포기한 채, 더러는 고달프고 서럽기만 한 삶에, 그래서 더 이상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삶이 없어서 그것이 그것과 같이 무감각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그 어려운 중에도 제일 좋은 것, 그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에서 비롯된 감사의 표현이겠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5월호, 이동훈 시몬 신부(서울대교구 상설고해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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