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강론자료

마태오복음 21,1-11 예루살렘 입성 (2017. 4. 9.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스크랩 인쇄

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7-04-06 ㅣ No.2170

예수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갔을 때에 그들은 올리브 동산에 있는 벳파게로 갔다. 거기에서 예수는 제자 두 사람들을 앞서 보내며 지시하였다. “저 앞에 있는 고을에 가면 줄에 묶인 당나귀와 새끼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풀어서 끌고 오시오. 누가 묻거든 이렇게 말하시오. ‘주님께서 원하십니다.’ 그러면 그는 즉시 내어줄 것입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예언자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다.

 

시온의 딸에게 일러라

보라, 너의 왕이 네게 오신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타시고

멍에를 메는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시네.

 

그러자 제자들은 가서 예수가 일러준 대로 당나귀와 새끼 나귀를 끌어다가 등에 겉옷을 얹었고, 예수는 거기에 올라탔다.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길에 펴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펼쳐놓기도 하였다. 예수를 앞뒤에서 따르는 사람들이 외쳐 말하였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축복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가자 온 시민이 들떠서 이 사람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군중이 대답하였다. “이분은 갈릴래아의 나자렛에서 온 예언자 예수요!”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입성은 예수가 세상에 평화를 주는 메시아임을 드러내는 상징적 행위이다. ‘줄에 묶인당나귀와 새끼는 마음과 몸이 명예와 재물에 묶여 자유를 잃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나타낸다. 제자들은 그것들을 풀어서예수를 태운다. 예수와 당나귀와 새끼는 각각 아버지, 성령, 아들을 상징적으로 가리킨다. ‘당나귀는 세상의 권력자가 타는 과 대비되어 예수가 세상 사람들에게 봉사하면서 그들을 살리는 메시아임을 드러낸다. 세상의 권력자는 사람들을 이용하면서 그들을 죽인다. 말은 전쟁의 도구임에 비해 당나귀는 생활의 도구이다. 인용된 성서구절은 즈가리야 9:9-10’이다.

 

길과 겉옷과 나뭇가지는 각각 망덕, 신덕, 애덕을 상징한다. 망덕, 신덕, 애덕에 대응하여 하느님께서는 자유(아들), 지혜(성령), 생명(아버지)을 내려주신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참된 자아의 깨달음을 주는 참된 왕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한복음 14:6)

 

호산나하느님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정도의 뜻이다. 군중은 예수가 다윗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로 나서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가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비해 갈릴래아의 나자렛은 무명의 촌락에 불과하다. 예수는 무명의 보통사람과 함께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 때문에 예수는 권력자, 부자, 학자 등 세상의 지배자들의 반대를 받게 될 것이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다. 군중이 기대하는바, 예수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지도자들의 불의를 바로잡고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그들은 당나귀의 상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민족과 계급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하늘나라의 소식을 알리는 예언자이다. 사람은 오직 하늘나라에 참여함으로서 참된 평화를 누린다. 하늘나라가 바로 참된 예루살렘이다



3,56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