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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선진사회를 앞당기는 촉진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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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18 ㅣ No.1362

[경향 돋보기 -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돌아본다] 선진사회를 앞당기는 촉진제로

 

 

부패 관행을 근절하는 데 꼭 필요한 입법

 

2017년 정유년 새해가 이미 밝았다.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을 탄핵의 심판정에 세운 거센 촛불민심은 구체제의 청산과 한국사회의 새 단장을 요구하고 있다. 분출하는 개헌과 개혁의 요구는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민심의 발로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켜켜이 쌓인 구체제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부패척결이다.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권력 사유화의 밑바탕에도 결국 부패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사회가 20여 년 가까이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근본 원인도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은 부패에 있다. 부패척결 없이 새로운 세상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현실은 어둡다. 오늘날 한국이 세계 13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지만, 우리 사회의 청렴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가운데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5년 부패인식 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OECD 34개국 중에 27위를 차지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51.9%, 전문가의 55.4%가 ‘우리 사회가 부패하다.’고 응답하였다. 행정 분야에 대해서는 국민의 51.6%가 부패하다고 답했다. 공직사회를 포함하여 사회 전반이 부패하다는 인식이 국민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오랜 논란 끝에 지난해 9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이 역사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공직사회의 부패행위를 효율적으로 예방하고 처벌하며 공직자들의 청렴도를 높이려는 법이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지난해 7월 28일 청탁금지법에 대해 제기되었던 4건의 헌법소원에 대해 최종 합헌 결정을 내려 이 법에 대한 각종 ‘위헌 우려’를 불식시켰다.

 

공직사회의 부패를 없애고 청렴 문화를 정착시켜 한국사회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자는 이 법의 입법목적은 지극히 타당하다. 또한 그 동안 처벌의 사각지대에 놓인 다양한 부패행위들을 금지행태에 포함해 앞으로 공직사회의 부패관행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핵심은 청탁금지와 금품 등 수수의 금지

 

청탁금지법의 핵심은 부정청탁의 금지와 금품 등 수수의 금지이다. 또한 이 법은 규제 대상자가 매우 넓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는 부정청탁 금지다. 우리 주위에서는 검찰이나 경찰에 불려가거나 심지어 병원에 갈 때도 지인을 동원해 청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업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를 받거나 승진을 위해 아는 사람을 통해 청탁을 넣는 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공정한 절차를 믿고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구조이다.

 

그런데 형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에는 공무원의 직무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알선이나 청탁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이 처벌조항은 모두 금품 등의 수수를 요건으로 하고 있기에 금품이 개입되지 않은 알선이나 청탁은 처벌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각종 인연으로 얽힌 한국사회, 그리고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공무원 조직의 특성 때문에 비록 금품 등의 수수를 조건으로 하지 않더라도 공직사회에서는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의 이익을 위한 알선이나 청탁 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그대로 두고 공무 수행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에 대한 다양한 알선이나 청탁 행위를, 비록 금품이 개입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금지하고 처벌함으로써 각종 청탁으로 혼탁해진 공직사회의 정화를 꾀하고 있다.

 

둘째, 금품 등의 수수 금지다. 뇌물수수를 척결하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기존의 법 조항으로는 공무원의 금품수수가 적발되더라도 대가관계가 입증되지 않는 한 처벌이 불가능하였다. 문제는 대가관계의 입증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검사장이 주식 매입비용을 선물로 받아 120억 상당의 불법이익을 얻고, 검사가 변호사에게서 수천만 원 상당의 외제 승용차를 선물로 받았다 하더라도 무죄가 되는 이유는 대가관계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형법이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수뢰죄 처벌조항은 쉽게 휘두를 수 없는 칼인 셈이다.

 

반면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이 1회 1백만 원 이상, 1회기 연도에 3백만 원 이상의 금품 등을 받은 경우에는 대가관계와 상관없이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대가관계가 인정되는 금품은 형법상의 수뢰죄로, 대가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청탁금지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처벌의 사각지대를 메꿔 공직사회의 부패를 상당 부분 예방하고 근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직자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깨끗한 손으로 살아가라는 강력한 청렴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셋째, 무척 넓은 규제대상(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 배우자)이다. 법률안 제정과정에서 논란이 심했던 대상은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이다. 반대여론은 민간영역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어 위헌 소지가 있고, 공공성을 이유로 언론사 종사자를 공직자에 포함하는 경우 다른 공공성을 띠는 민간영역과 형평성이 문제가 되며, 적용대상 범위가 과도하게 넓어짐으로써 법의 규범력과 실효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교육과 언론은 공공성이 강한 영역이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함께 참여하고 있어서 참여주체에 따른 차별을 두기 어려운 분야이다. 헌재도 사립학교 교직원과 관련해, 공교육 체계 속에서 사립학교가 공교육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공립학교와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점, 국가가 사립학교에 막대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는 점, 교직사회의 청렴의무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매우 높고 이를 단순히 자정 노력에만 맡길 수 없다는 점 등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언론인에 대해서도 헌재는 민간부문의 언론이라 할지라도 공적 성격이 매우 크고, 언론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신뢰도를 높이려면 언론인에게 공직자에 버금가는 높은 청렴성이 요구된다는 점을 감안하였다. 또한 언론계의 만연한 부패 관행이 크게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국민 인식을 고려할 때 이를 언론계의 자정 노력에만 맡길 수 없다는 점 등도 고려하여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공직자의 배우자를 규제대상에 포함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논란이 컸다. 공직자가 배우자를 통하여 뇌물을 전달받거나 배우자가 뇌물을 받은 뒤 가족관계를 이용해 공직자에게 부정청탁을 하는 우회적 통로를 차단할 필요성은 당연히 인정된다. 이런 점에서 청탁금지법이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 그 배우자를 규제대상에 포함한 것에는 입법목적의 타당성과 수단의 적절성이 인정된다.

 

 

선진사회를 촉진하는 기대효과

 

거듭 강조하듯이 청렴사회를 이루지 않고는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부정부패를 없애지 않고 더 이상의 국가발전은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14년 4월에 304명의 인명피해를 낸 세월호 참사를 상기해 보자. 위기 앞에서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러한 대형 참사의 이면에 이른바 ‘정피아’, ‘관피아’라는 부패 고리의 적폐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또한 현재까지 정확한 사고원인과 구조 불능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데에는 집권세력과 정부의 조직적 방해뿐만 아니라 언론기관의 침묵과 편파보도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온 사회가 충격과 아픔에 빠져 앓고 있는데 ‘정 · 관 · 언 · 산’은 보신과 기득권 수호를 위해 부패한 동맹관계를 맺고 철벽 방어를 해온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 대형 참사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부패고리가 여전히 유지되는 사회, 이런 사회를 우리는 선진사회라고 부를 수 없다. 공직사회의 부패는 결국 시민들에게 큰 피해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비싼 값을 치르면서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청탁금지법은 기득권 집단 간의 부패고리, 부패동맹을 끊자는 시도이다.

 

최근에는 침체되는 경기상황과 맞물려 청탁금지법이 경기침체와 내수위축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고급 음식점의 매출 하락, 비싼 선물 세트의 매출감소, 화훼농가의 어려움 등이 사례로 언급된다. 물론 청탁금지법의 시행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경제 분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부패한 청탁과 뇌물 관행을 용인하여 매출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사회정의나 경제정의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있는 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부패한 뇌물 제공과 청탁을 용인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부정한 수익의 창출과 공공의 이익에 대한 손해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부패 위에 구축된 사회경제 체제는 사상누각과 다름없다. 게다가 비중이 크지 않은 일부 업종의 매출감소를 근거로 국가 전체 경제의 침체원인을 청탁금지법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능한 정치인이나 경제관료들의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과연 OECD에 속한 어느 선진국이 경제성장을 위해 부패를 감내하면서 부패구조 위에 경제적 부를 쌓아 올리고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선진국에서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단호하게 부패와 전쟁을 벌이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지난 2016년 5월 OECD 사무국은 ‘뇌물척결(Putting an End to Corruption)보고서’에서 “부패가 민간부문 생산성을 낮추고 공공투자를 왜곡하며 공공재원을 잠식한다.”면서 경제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16년 보고서에서 이렇게 실증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부패는 정부의 핵심기능을 마비시키고 세금 납부자들의 납부 동기를 약화해 정부 세수를 감소시킨다. 부패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것만으로도 정부 세수가 국내총생산(GDP)의 0.8%p 증가한다.”

 

현대경제연구원도 2012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청렴도가 OECD 평균수준으로 개선된다면 4% 내외의 잠재 성장률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국 부패척결과 청렴문화의 정착이 경제성장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청탁금지법이 시민들과 공직자들에게 결코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호세 무히카는 중남미의 조그만 나라 우루과이의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1987년형 폭스바겐 비틀을 28년 동안 운전하면서 재임 중 월급의 90%를 이웃에게 기부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유명했다.

 

우리가 모두 이런 영웅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남에게 공짜 선물 기대하지 않기, 내 밥과 내 술은 내 돈으로 사서 먹기 정도는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 부정한 인맥과 청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정해진 절차와 순서를 기다리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작은 실천이 청렴문화를 확산시키고 공정질서를 확립시켜 결국은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청탁금지법이 만능은 아니지만, 앞으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선진사회를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 서보학 -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이다.

 

[경향잡지, 2017년 2월호, 서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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