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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3: 바티칸 박물관의 피나코테카 -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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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16 ㅣ No.322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3) 바티칸 박물관의 피나코테카 -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천사’


하느님의 뜻 일깨우는 천상 음악 들리는 듯…

 

 

-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천사’, 멜로조 다 폴리, 1470년경, 프레스코, 알테 피나코테카, 바티칸 박물관.

 

 

전시공간뿐 아니라 휴식공간도 제공하는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에 속한 여러 박물관이나 미술관 중에는 ‘알테 피나코테카’(Alte Pinacoteca·바티칸의 미술품들만 따로 전시한 미술관)가 있다. 이 바티칸 미술관은 이미 살펴본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Museo Pio Cristiano) 바로 옆에 자리한다.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에는 주로 지하 묘지인 카타콤바나 로마 주변 묘지에서 출토된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품이 전시돼 있다. 카타콤바의 벽을 장식했던 벽화 일부나, 대리석 석관, 석관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부조나 조각 등이다.

 

하지만 알테 피나코테카에는 그리스도교 미술사에서도 오랜 역사를 지닌 이콘 몇 점과 고딕 및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바티칸 박물관 초기에는 한 자리에 조각이나 회화를 전시했지만, 소장품들이 증가하고 다양화되면서 조각과 회화를 구분해 다른 건물에 전시한 것이다. 이 미술관은 외양도 연분홍 벽돌로 장식돼 아름다움을 더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미술관 앞에는 잘 손질된 십자로 형상의 정원과 이중 원형의 분수대가 있다. 

 

바티칸 박물관은 방문자들에게 작품 전시의 공간만이 아니라, 휴식의 공간도 함께 제공한다. 이를 위해 박물관 내·외부 곳곳에 쉼터와 정원을 만들어 사람들의 피로를 덜어준다. 사람들은 바티칸 박물관의 작품을 보면서 문화적 갈증을 채우고 정원을 거닐면서 잠시나마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바티칸 박물관처럼 오늘날 대부분의 세계 박물관은 단순히 작품만을 전시한 창고 같은 공간이 아니라,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해 문화 안에서 쉬면서 삶을 재충전할 수 있게 도와준다.

 

 

성화는 눈으로 보는 성경

 

- 알테 피나코테카 외관과 정원 전경.

 

 

알테 피나코테카에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주제로 한 수많은 그림이 전시돼 있다. 이 작품들을 둘러보면 마치 신·구약 성경을 읽은 것처럼 느껴진다. 성화는 눈으로 보는 성경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우면서도 거룩한 성화 가운데는 천사들이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작품도 몇 점 벽에 걸려 있다. 그 작품들 앞에 서면 천사들의 합주가 귓전을 울리는 느낌이 든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천사’는 멜로조 다 폴리(Melozzo da Forli·1438~1494년 경)가 그린 작품이다. 멜로조는 천사들이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그림도 그렸는데, 이 작품 곁에 나란히 걸려 있다. 이 작품은 캔버스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프레스코(fresco)화이기 때문에 색상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레스코화는 소석회에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를 벽면에 바르고, 수분이 있는 동안 채색해 완성하는 작품이다. 따라서 물감이 자연스럽게 벽면에 스며들어 벽을 파손하기 전까지는 그림이 그대로 보존된다. 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때는 낄 수 있지만, 칠이 잘 벗겨지진 않는다. 대표적인 프레스코 작품이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1475~1564년)의 ‘천지창조’(1508~1512년)와 ‘최후심판’(1534~1541년)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천사’는 500여 년 전에 제작됐지만 색상의 화려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특히 천사의 얼굴은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보다 더욱 생생하게 보일 정도다. 이 작품은 현재 미술관에 전시돼 있지만, 원래는 대성당 벽이나 수도원 성당 벽을 장식했을 것이다. 성가대원들이 하느님께 찬양 노래를 부르던 성가단의 한쪽 벽면을 꾸민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두 날개 끝이 하늘을 향한 것을 보면 천사는 푸른 하늘로부터 막 내려온 것처럼 보인다. 황금색 머릿결을 가진 천사는 하늘 저편을 바라보며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화가는 천사의 머리에 화려한 후광을 그려 넣는 대신에 벽을 쪼아서 후광을 대신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은 후광에 뺏기지 않고 천사의 아름다운 얼굴에 집중하게 된다. 채를 잡은 천사의 오른손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우아한 모습이다. 천사가 입은 빨간색 옷과 황금색 겉옷은 바이올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가 얼마나 따뜻하고 고귀한지를 보여준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는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사람들을 일깨운다. 세상사에 몰두해 머리 위의 하늘을 잊고, 그 높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을 잊고 사는 무수한 사람을 천상 음악으로 깨운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온 우주와 세상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초대한다. 이 그림 앞에서면 천사가 조용히 들려주는 바이올린 소리, 그 소리 너머 계신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월 15일,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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