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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마음이 머무는 피정: 명동대성당 도시 피정 - 도시민에게 쉼의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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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18 ㅣ No.842

[마음이 머무는 피정 -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도시 피정’] 도시민에게 쉼의 시간을

 

 

피정이란 세상을 피해[避] 고요한[靜] 곳에 머문다는 말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려는 사람들은 소란스럽지 않은 장소를 찾아 도심을 떠난다. 그런데 여기 큰 도심,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지역에서 열리는 피정이 있다. 지친 도시민들을 위해 명동대성당에서 여는 ‘도시 피정’이 바로 그것이다.

 

 

명동대성당 축성 120주년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 지구’, ‘대한민국 최대의 번화가이자 서울의 다운타운’, ‘한국 쇼핑과 문화의 메카’, ‘서울의 중심이자 가장 바쁜 도시’ …. 모두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명동은 사계절 내내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명소이며, 대한민국 도심 가운데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이곳에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대규모 고딕 양식의 성당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인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이 있다.

 

성당이 자리한 이 지역에 처음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784년 명례방 종교집회였다. 그리고 대성당을 축성, 봉헌한 것이 1898년 5월 29일이다. 1900년부터 순교자들의 유해 일부를 모시게 되었고, 1942년에는 최초의 한국인 주임 신부가 부임하였으며, 최초의 한국인 주교의 서품식도 거행되었다.

 

성당의 이름을 종현대성당에서 명동대성당으로 바꾼 것은 광복을 맞던 해인 1945년. 그리고 1970,80년대 근현대사의 격동기에 명동대성당은 한국 사회의 인권신장과 민주화의 성지로서 그 구실을 톡톡히 했다. 오늘날에는 기도하고 선교하는 공동체로서 세상을 향하고 있다(명동대성당 안내문 참조).

 

그리고 요즘 명동대성당은 ‘문화가 있는 명동’을 표방하며 모든 이에게 열린 사색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상업과 관광의 대표 도시’에서 ‘정신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도시민들에게 치유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해인 수녀가 진행한 도시 피정

 

불이 꺼진 성당, 성가가 잔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의자에 정좌한 채 침묵에 잠긴다. 성당 밖 세상의 일상도 도심의 소음도 모두 잊은 채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지 않은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할 말을 잃은 저희에게 영적인 지혜를 밝혀 주시고 타는 목마름을 적셔 주소서.”

 

지난 5월 7일 올해 두 번째 도시 피정이 열렸다. 명동대성당 성전 축성 1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하나이기도 한 이번 피정의 주제는 5월 성모 성월을 맞아 ‘다시 불러 보는 초록빛 이름, 어머니’로, ‘이해인 수녀님과 함께하는 도시 피정’이었다.

 

이날 피정은 이전의 도시 피정과는 달리 수도 서원 50주년과 시인 등단 40년, 투병 생활 10년째인 이해인 수녀가 자신의 시 열여덟 편을 홀로 또는 참가자들과 함께 낭송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로사리오 앙상블이 연주를 들려주었고, 생활 성가 가수 김정식 씨와 테너 송봉섭 요한 씨가 이 수녀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불렀다.

 

인도 캘커타의 시끄러운 도심 속에서 어떻게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며 사느냐는 물음에 사랑의 선교회 마더 데레사 수녀는 “세상이 시끄러운 것과 네 마음이 무슨 상관이냐? 네 마음이 조용하면 되었지.”라고 답했다며, “우리가 서로 세상에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작은 위로 천사의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이해인 수녀는 당부했다.

 

90여 분 동안 음악을 듣고 시를 함께 읽었을 뿐인데 어느 새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이 가벼워진다.

 

 

지친 도시민들에게 쉼의 공간을

 

명동대성당은 해마다 5월 한 달 동안 ‘문화가 있는 명동’ 행사를 진행하는데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명동을 찾는 신자들과 일반인들에게 도심 속 문화 축제로 자리매김해 왔다.

 

도시 피정은 명동대성당의 ‘문화 명동’ 프로그램의 하나로 2016년 5월 처음 시도되었다. 그해 주제는 ‘나에게 불어넣어 주는 따뜻한 힘, 마음 쉼’이었다. 가장 번잡한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음악과 시, 그림을 통로 삼아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고요해지는 시간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경쟁과 소음에 지친 도시 사람들에게 쉼의 공간과 시간을 주려고 도시 피정을 마련했습니다. 조용한 공간과 침묵의 시간을 마련해 드리고, 그 안에 우리 삶에 필요한 묵상 주제들을 제시해 드렸습니다. 피정 때마다 명상의 방법과 자세를 가르치고, 좋은 음악과 시, 그림으로 묵상을 도와드렸습니다.” 명동대성당 주임 고찬근 루카 신부의 말이다.

 

도시 피정은 90여 분 동안 세 개의 소주제를 침묵 가운데 묵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묵상 때는 시와 음악, 때로는 그림(성화)이 활용된다. 주제에 따라 즐거웠던 기억, 보람되었던 기억, 잘 쉬었던 기억을 살펴보기도 하고, 지난 시간과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날들을 그려 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도시 피정은 2017년에 다섯 번, 그리고 올해 두 번 열렸다. 피정에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는 물론 비신자들까지 적게는 100명, 많게는 300명이 함께한다.

 

 

도시 피정의 핵심은 침묵과 쉼

 

번잡한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는 때때로 ‘고요함’이 절실하다. 예수님께서도 가끔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 “예수께서는 때때로 한적한 곳으로 올라가셔서 기도를 드리셨다”(루카 5,16).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좀 쉬자 하고 말씀하셨다”(마르 6,31).

 

“영적으로 얼마나 피곤하십니까? 잘 오셨습니다. 지금은 진정으로 나 자신을 만나고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경쟁 사회에서 무장하고 살아가며,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고 마음에 힘을 주는 이들이 침묵을 훈련하고 배우길 바랍니다.”

 

고 루카 신부는 피정 때마다 여는 말씀을 통해 그날의 묵상거리를 설명한다.

 

“침묵은 말을 참는 것만이 아니라 말을 하지 않고 잊어버리는 것,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도시 피정을 통해서 생각도 못했던 소리가 내면에서 들려오셨는지요? 여러분 내면의 존재와의 만남이 침묵이고, 그분이 예수님, 하느님 또는 진정한 나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삶 속에서 여러분의 길을 더 잘 살려고 침묵 훈련을 하는 것이 도시 피정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고 신부에 따르면 침묵은 말하지 않는 것, 소리를 내지 않는 것, 생각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내가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교만함, 육체의 욕구, 명예의 욕구가 없어지고, 나를 없애면 남는 것은 하느님뿐이다. 피정을 통해 침묵으로 깊이 들어가는 훈련을 하면 언젠가 큰 깨달음, 하느님과의 만남을 얻을 수 있다.

 

“온 몸에서 힘을 빼고 바르게 앉아 봅니다. 호흡에 집중하면 잡념이 사라집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제시하는 주제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 생각이 없는 내가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있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나까지도 없어지는 침묵의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명동대성당의 도시 피정은 가장 번잡하고 번화한 거리에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긴 시간 내어 피정에 참가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잠시나마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다. 잡다한 생각을 단순화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시간이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그분에게 가는 것만으로도 그분 안에서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다시 힘을 내어 살아볼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고요한 가운데 휴식하고, 자기 삶을 돌아보며 마음속 응어리를 좀 덜어 내면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고 좀 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의 : 성당 사무실 ☎02-774-1784  

 

[경향잡지, 2018년 6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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