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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학이 만난 영화: 상상 훈련 - 올드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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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15 ㅣ No.858

[심리학이 만난 영화] 상상 훈련, 올드보이

 

 

“10년 동안의 상상 훈련, 과연 실전에 쓸모가 있을까?”

 

다섯 명의 깡패에게 둘러싸인 오대수가 깡패들을 향해 주먹을 날리기 직전 외친 한마디다. 복수를 꿈꾸며 10년 동안 얼굴도 모르는 상대와 상상 속에서 싸우는 훈련을 했던 그다. 과연 상상 훈련은 실전에서도 효과가 있었을까?

 

일순간에 깡패 무리를 쓰러뜨린 오대수. 그가 말한다.

 

“있다!”

 

오대수는 자기 이름을 ‘오늘만 대충 수습하면서 살자.’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아내와 어린 딸아이와 함께 사는 지극히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도 크게 잘한 일도, 그렇다고 큰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오대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납치된다. 깨어난 곳은 싸구려 모텔방처럼 생긴 여덟 평짜리 사설 감옥.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누군가를 강제로 감금시키는 곳이었다. 누가, 왜 자신을 납치해서 감금했는지조차 아무도 알려 주지 않는다. 그는 하루에 세 번 넣어 주는 중국집 군만두만을 먹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텔레비전에 자신의 아내가 처참하게 살해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바로 집을 나간 지 1년이 된 남편 오대수. 사설 감방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던 그가 이제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내를 죽인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 자살을 시도해도 누군가 들어와서 그를 살려 놓고 간다. 자기 마음대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오대수는 만일 자신이 살아서 나갈 수만 있다면, 자신을 이 감방에 처넣은 인간을 찾아내서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오대수가 날마다 상상 속의 적을 대상으로 훈련하는 이유다.

 

박찬욱 감독의 2003년 작 ‘올드보이’는 자신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일로 누군가는 마음의 상처를 받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그 상처는 더 커져서 처절한 복수로 이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설정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오대수가 사설 감옥에 갇힌 동안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갖춘 싸움꾼으로 재탄생한다는 것이다. 장도리 하나만 가지고도 수십 명의 조직폭력배를 제압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과연 상상 훈련만으로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 만화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7년 동안의 상상 훈련

 

현실에서 10년 동안 상상 훈련을 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만 7년 동안 상상 훈련을 한 사람은 찾을 수 있었다. 류치쿵(Liu-Chi Kung). 그는 1958년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콩쿠르에서 2등을 수상한 피아니스트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 혁명이 시작된 다음 해에 투옥되어 7년간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서 피아노를 치기는커녕 볼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석방되자마자 순회 연주회에 나섰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피아노를 만져 보지도 못한 사람이 출옥하자마자 관객들 앞에 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연주력이었다. 피아노를 7년간 만져 보지도 못했지만 그의 연주력은 오히려 전보다 향상되어 있었다. 평론가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류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날마다 피아노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건반을 누르면서 연습할 수는 없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상상 속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연주해 보았던 모든 곡의 음 하나하나를 마음속에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피아노를 만질 수 없는 현실에서도 그는 마음으로 피아노 건반을 누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뇌는 상상과 실제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뇌가 상상에 속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상상 훈련을 실제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우리의 마음속에 훈련의 기록을 남겨 두는 것이다.

 

덕분에 상상을 통해서 우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지식과 행동의 연결 고리를 강화할 수 있다. 류치쿵처럼 자신이 연주했던 곡을 상상 속에 반복해서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주요 지식과 행동의 연결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 트레이닝

 

상상을 통해서 정신 표상에 있는 행동 간의 연결 고리를 강화하는 훈련은 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실행되어 왔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부르는 데 이는 정신적인 이미지를 이용해서 행동이나 기술을 연습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미지 트레이닝이 스포츠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가장 큰 이유는 수행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미지 트레이닝은 연습을 통해서 습득한 새로운 운동 기술을 실전에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일단 획득한 운동 기술을 유지하는 데에도 효과를 발휘한다. 이미지 트레이닝은 윗몸 일으키기와 같은 단순한 운동에서부터 골프나 체조의 안마, 미식축구와 같이 다양한 종목에서 수행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테네시대학교 여자 농구 팀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기존 연습에서는 자유투 성공률이 52퍼센트였지만 야유를 퍼붓는 관중 앞에서 경기하듯 떠올리며 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이 추가되었을 때는 그 성공률이 65퍼센트로 증가했다.

 

 

성공을 만드는 상상 기법 ‘과정 시뮬레이션’

 

우리가 자주 하는 상상 가운데 하나는 성공에 대한 상상이다. 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성공의 결과를 상상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하거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를 상상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축하와 환호, 그리고 스스로 경험하게 되는 자부심을 상상하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또 다른 상상은 성공으로 가는 길을 상상하는 것이다. 대학에 합격하고자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녁까지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그리고 공부하지 말고 놀자는 친구들의 유혹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등을 상상하는 것이다. 곧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하는 것이다.

 

미국의 셸리 테일러(Shelley Taylor)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시험을 일주일 앞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의 효과에 대해 실험했다.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받은 이후의 결과를 상상하는 결과 시뮬레이션 조건, 시험 준비 과정을 상상하는 과정 시뮬레이션 조건, 또는 상상에 대해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은 통제 조건 가운데 하나에 무작위 할당되었다.

 

결과 시뮬레이션 조건의 참여자들은 날마다 5분간 긍정적인 결과에 대해 상상하게 했다. 점수가 발표되고, A학점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환호하는 가운데 자부심을 느끼는 장면을 시각적으로 상상하게 했다.

 

그 반면, 과정 시뮬레이션 조건의 참여자들은 날마다 5분간 A학점을 받고자 교과서를 열심히 읽고, 노트 내용을 보며, 과제에 집중하고, 공부하는 데 방해되는 유혹을 거절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상상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통제 조건의 참여자들은 시험 전 자신의 공부 과정을 모니터링하게 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과정 시뮬레이션을 한 참여자들이 다른 조건에 비해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더 높은 성적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정 시뮬레이션은 시험에 대한 계획과 준비를 구체화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곧 시험에 더 철저히 대비하게 한 것이다.

 

결국 과정 시뮬레이션이 학생들의 시험에 대한 불안을 줄일 수 있었고, 계획 활동을 증가시킴으로써 성적 향상에 도움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동안의 상상 훈련, 과연 실전에 쓸모가 있을까?”

 

“있다!”

 

“만일 실전 과정을 상상했다면!”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 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8년 8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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