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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그리스도인의 분노 다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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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18 ㅣ No.843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그리스도인의 분노 다루기

 

 

감정은 인간 심리의 자연 요소로서, 감성과 정신생활을 영위하는 장을 마련해 주며 그 둘 사이의 통로를 보장해준다.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행복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게 하고, 그를 위해 도움이 되기도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764항, 1762항 참조).

 

하느님께서 주신 감정 가운데 하나인 분노는 우리의 힘을 북돋아 주고 생존을 방해하는 것을 이겨 내도록 도와준다. 또한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게 하며 우리의 신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려 하는 악을 막아 내고 떨쳐버리게 한다.

 

분노는 정의 구현을 위한 질서를 회복하게 하는 데 큰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분노는 이성과 의지에 따라 이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더 성공적이고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그 분노가 부적절한 행동으로 이어질 경우에 개인과 사회에 큰 파멸을 가져오는 강력한 위험 요소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분노가 적절한 역할을 잘 하도록 지도하고 훈련해야 한다. 우리가 분노에 대해 받아 왔고 또 현재 받고 있는 지도와 훈련은 어떠한가? 많은 이가 그 지도와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해 욕구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비굴하고 반항적이 되기도 하며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고 죄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노를 잘 다룬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온화한 모습으로 변모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와 연결된다. 그래서 분노를 다루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적인 과제로 신앙생활의 중요한 측면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먼저 성경과 교부들로부터 그 가르침을 청해 보자.

 

 

성경이 소개하는 분노

 

종종 성경의 어떤 구절만을 언급하는 것으로 성경이 말하는 분노를 정의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 성경이 소개하는 분노를 이해하려면 좀 더 통합적으로 다가서야 한다.

 

■ 부정적인 감정

 

성경은 분노의 감정을 버려야 할 것이나 심판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시편 37,8; 마태 5,22; 에페 4,31 참조). 또한 분노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에(창세 49,6-7 참조) 참는 것이 좋은 일이고 이를 잘 참는 사람이 지혜로운 이이며(잠언 29,8 참조), 분노를 참지 못하는 자는 미련한 자라고 말한다(잠언 14,17.29 참조).

 

■ 죄와의 구별

 

성경은 분노 그 자체를 죄와 동일하게 여기는 것에 주의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에페소서에서는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4,26)라고 표현하면서 화 자체가 죄가 아니라 그것을 오랫동안 지닌 채 풀지 않는 것을 죄로 여긴다.

 

■ 의인들의 분노

 

성경에 따르면 의인과 하느님의 사람들도 분노한다. 그들이 하느님께 기도하는 부분에서 그들의 분노가 얼마나 강렬한지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살날들은 줄어들고 그의 직책은 남이 넘겨받게 하소서. 그의 자식들은 고아가,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소서. 그의 후손은 끊어지고 다음 세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시편 109,8-9.13).

 

“주님,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당신 얼굴 앞에서 지우지 마소서. 그들을 당신 앞에서 거꾸러지게 하시고 당신 분노의 때에 그들을 마구 다루소서”(예레 18,23).

 

거룩한 말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성경과 의인들의 기도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 하느님의 분노

 

성경에서 분노에 대해 관찰하다 보면 하느님께서 인간보다 훨씬 분노를 많이 하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분노에 더디시고 참으시는 분’(시편 103,8; 이사 48,9 참조)이며 ‘자비와 사랑이 무한하신 분’으로 소개된다.

 

이러한 양면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의 분노는 인간의 부정함이나 불경건함을 포함한 인간의 죄를 향한 하느님의 반응으로 그분의 사랑, 그리고 자비와 다른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의 분노와 인간의 분노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구별된다. 먼저, 하느님의 분노는 증오나 악의, 원한이 없고 이기적인 이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을 향한 관심이고 염려이며 인간의 파괴적인 행동을 바로잡으려는 것으로 결코 인간과의 관계를 깨트리지 않으며 오히려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 반면, 인간의 분노는 주로 자신의 이익과 욕구에 제한을 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에 생기거나, 속임수와 강간, 질투, 시기 등과 같이 자기중심적인 차원에서 발생한다. 또한 증오나 악의, 원한 등에서 나오며 분노의 대상을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향한다.

 

 

교부들과 분노


■ 영혼의 적

 

일찍부터 교부들은 분노라는 감정이 영성생활을 해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파괴력이 있음을 지적했다. 사막의 교부였던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분노를 일컬어 영혼을 어둡게 만드는 가장 극렬한 감정이며 이는 사탄이 촉발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인간의 눈을 어둡게 하고 기도하는 상태를 망가뜨리는 적이라고 여겼다(「프락티코스」  참조).

 

요한 카시아노 성인 또한 분노가 마음에 요동을 일으키는 악한 감정이기에, 이것을 제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는 수도자들이 스스로의 악한 욕망에 대해서는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제도집」, 7-8 참조).

 

■ 분노의 단계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분노가 마음에 품는 것, 말로 표현하는 것, 가혹한 비판과 비난을 퍼붓는 것과 같이 세 단계로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와 유사하게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도 분노가 마음에서 출발하여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다.

 

특별히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사람이 상처를 마음에 담아 놓고 앙갚음하려는 마음을 품는 욕구 단계를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인 말과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보았다. 이때 마음에 품었던 욕구를 잘 다스리면 감정으로 끝날 뿐 죄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이성의 사용을 강조했다(「악에 관한 논제」, 12 참조).

 

■ 필요한 정서

 

칠죄종의 목록을 정립한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사람이 분노하면 분쟁과 비난, 모욕, 분개 등과 같은 악을 열매로 낳기에 성령이 떠나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고 여겼다(「욥기 교훈」 참조).

 

하지만 그는 신앙인이 불의와 악에 대해 분노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악이라고 말하면서 분노 그 자체를 악으로만 여기지는 않았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 또한 때로는 분노가 불의에 대해 일어나는 강력한 정서이지만 분노로 말미암아 불의를 바로잡고자 하는 욕구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는 분노의 양면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분노는 이성의 통제에 따를 경우 정의를 세우는 데 필요한 정서이지만 분노가 인간을 향하고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려는 의지로서 발생한다면 죄가 된다”(「악에 관한 논제」, 12).

 

분노에 대한 교부들의 말을 주의 깊게 살피다 보면, 분노를 단죄하던 시기부터 분노에 대해서 상세하게 살피는 시기, 분노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한 시기 등 분노에 대한 이해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조금씩 풍요로워짐을 알게 된다.

 

오늘날 교회의 분노에 대한 이해는 어떻게 발전하고 있을까? 심리학도 교회의 이런 과정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 김인호 루카 - 대전교구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저서로 「신앙도 레슨이 필요해」,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하기」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성찰」, 「너무 빨리 용서하지 마라」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8년 6월호, 김인호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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