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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신앙과 심리: 남편 곁으로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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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23 ㅣ No.350

[신앙과 심리] 남편 곁으로 가고 싶습니다

 

 

60대 초반의 단아한 모습을 한 자매가 상담실에 들어왔다. 외모와는 달리 그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넋나간 표정을 지으며 “남편과의 추억과 그의 손길을 누가 알겠는가. 나의 육신은 살아있으나 산 것이라 할 수 없다”며 남편 곁으로 가고 싶다고 하였다.

 

2년 전 남편을 떠나보낸 후 남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여 일상을 전폐하고 기도원을 돌아다닌 적이 많았다. 가족들이 남편의 죽음을 너무 쉽게 받아들여 최후진료를 접었던 것에 대한 회한과 자책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자신을 홀로 두고 간 남편도, 남편을 데려가신 하느님도 모두 원망스러웠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상처로 울부짖는 어린아이 같은 상처가 그녀의 이성을 삼킨 것이다. 심각한 우울증상으로 고통스러웠다. 사별은 정서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남아있는 배우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죄책감, 회피, 망자의 죽음을 수용하지 못하는 애착혼란으로 자살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고통에 공감하던 딸들이 엄마가 신앙인이 맞느냐고 멀리하였다. 막내딸은 어려서 엄마, 아빠의 부부갈등 속에 정서적인 방임으로 힘들었다며 엄마를 점점 더 거부하였다. 남편 사별 전, 막내딸이 임신 중임을 알았으나 축하해주지 못하였고, 딸의 득남 경사를 듣고도,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아쉬워해 딸은 화를 냈다. 남편 3주기 기일이 오기 전에 딸과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고 주님 앞에 해결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으나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안타까웠다. 큰딸과 작은딸들과도 유산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장례 후 우연히 만난 남편의 후배는 남편이 말년에 자서전 쓰기를 원하였다고 전하며 1주기에 맞춰 남편의 생에 대한 책을 대신 쓰라는 조언을 하였고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남편의 아까운 삶에 억장이 무너져 졸도하기도 했다. 도망 다니다 결국 자료를 모아 책을 완성하게 되었고 2주기에 남편의 일대기를 영전에 바쳤다. 그녀는 남편이 남긴 글을 모아 정리하는 동안 슬픈 마음에 조금은 위로를 받았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위안을 준 것은 남편이 틈틈이 기록한 성경묵상 글이었다. 충직하고 성실한 남편, 신심이 깊고 멋진 신사라 불리며 멋과 좋은 매너를 지녔고, 주위의 총애를 받던 사람.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글을 마주하며 그녀는 남편의 내면을 만날 수 있었다.

 

남편은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어, 왠지 초라해지는 자신이 싫어서 남편에게 무심해지거나 때론 공격적으로 남편을 비난하며 살았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많은 상처를 받고 묵상과 글을 통해 자신을 달래고 살아 온 것을 알았다. 강인하다고 생각한 남편이 의외로 여리고 예민하고, 그래서 우울과 불안감으로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울 때 성서 말씀을 통하여 주님과 성모님을 찾았던 삶. 그녀는 주위에서 내조를 많이 한다는 좋은 말을 들었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고 실제로 남편이 필요로 한 것은 못해주어 남편이 자신으로 인해 많이 힘들었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남편에게는 주님께 더 가까이 가는 계기가 되었다는 역설이 조금은 신기했다. 애도작업을 하며 그녀는 남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마음 안에서, 그리고 주위에 어떤 것을 통해서도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죽음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두려움과 불안을 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죽음은 단순히 모든 것이 끝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간다는 고귀한 의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가 남편의 일대기를 정리하며 남편을 만나고 원망감이 서서히 사라진 경험을 떠올리며 나는 그녀에게 자신의 자서전을 쓰기를 권하였다. 자서전 쓰기를 통해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반성하고 그런대로 만족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 온 의미 있는 일생이었다는 느낌을 가지고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에릭슨(Erikson)은 노년기에는 누구나 인생 회고 과정이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한 일생의 정리가 노년기의 성숙된 성격과 자아통합을 이루는데 필요하다고 하여 자서전적 연구방법의 효시를 이루었다. 이러한 회상은 과거의 즐거운 사건을 현재에 살리고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타당성을 부여하고 합리화하여 부정적인 정서를 극복할 수 있어 치유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그녀는 남편 3주기에 남편의 영전에 자서전을 바치리라는 꿈을 갖고 시작하였다. 꿈을 꾸고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감, 활력을 되찾았다. 의존적이고 한편 자기중심적인 자신의 모습 안에 긍정적이고 독립적인 면도 있음을 알기까지 수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그녀에게는 너무도 감사한 시간이었다. 자신이 지닌 자원을 나누는 봉사하는 삶에도 관심이 많아지고 자신의 가치를 되찾아 마음의 여유와 평화를 얻게 되어 성당의 신심단체에 가입하였다. 이제 그녀는 남편이 곁에서 수호천사와 같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고 웃음을 되찾았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로마 8,6).”

 

* 유정인(리디아)씨는 한국 가톨릭 상담심리사 및 한국 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상담심리사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메일 uli9942@hanmail.net

 

[외침, 2016년 11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글 유정인(유리심리상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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