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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미사] 전례를 살다: 평화의 예식과 하느님의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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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11 ㅣ No.1328

[전례를 살다] 평화의 예식과 하느님의 어린양

 

 

평화의 예식

 

주님의 몸인 성체를 합당하게 받아 모시기 위한 준비 예식 가운데에는 주님의 기도뿐 아니라 뒤이어 나오는 평화의 예식도 있습니다. 평화의 예식 또한 하나의 기도와 동작을 가지는 의식으로, 성체를 모시기 위한 직접적인 준비 예식에 속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형제와 화해하는 것이 제단에 예물을 바치는 것보다 앞서야 한다(마태 5, 23 이하)고 분명히 요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방 전례에는 예부터 평화 예식을 말씀의 전례를 마무리하는 보편 지향 기도 이후 그러니까 성찬 전례를 시작하기 전에 거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서방 전례는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영성체 전에 평화 예식을 거행합니다. 이를 통하여 이웃과의 평화는 주님을 받아 모시는 전제 조건임을 드러냅니다. 주님의 기도 예식이 끝나면 사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일찍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로 시작하는 평화의 기도를 바친 다음, 교우들에게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라고 평화의 인사를 한 후 교우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나누라고 권합니다. 이러한 평화 기도, 평화 인사, 평화 표시를 합하여 평화 예식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평화의 표시에 대해서만 살펴봅니다. 사제 또는 부제가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하고 권하면 교우들은 서로 묵례(默禮)나 악수 등으로 인사를 나누며 평화를 기원합니다. 초세기에는 이때 교우들이 사랑과 화해를 주고 받는 표시로 서로 입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명칭도 “평화의 입맞춤”이었습니다. 이 평화의 입맞춤은 아주 오래 전 전례적 표지였습니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증거가 있어 소개해봅니다. 초세기의 교부 히폴리토(215년경)는 저서 《사도 전승》에 이렇게 지시합니다. “신자들은 서로 인사하는데, 남자들은 남자들과 함께, 여자들은 여자들과 함께 할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들과 (평화의)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18장) 이 지시는 이해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초세기에는 실제로 평화의 입맞춤을 했기 때문입니다. 고대에는 친척들 간의 입맞춤이 애정의 표시일 뿐 아니라 존경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의 표시가 곧 양식화되어 포옹의 뜻만 남게 되었습니다.

 

로마 교회에는 아직도 주교와 함께 하는 장엄미사 때 공동 집전자들 간에 양볼을 차례로 맞대는 평화의 인사 양식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공동체가 평화의 인사를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이것이 어떤 방법으로 행해지는지는(예를 들면 포옹이나 악수 또는 묵례) 그 지역 백성의 문화와 풍습이나 특성에 보다 어울리게끔 지역 주교회의가 결정하도록 권한이 위임되었습니다. 이에 한국주교회의는 “서로 묵례나 합장, 악수 등으로 알맞게 인사를 나눈다.”고 정했습니다. 사실 우리 유교 문화권에서는 인사할 때 고개를 들고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예의에 맞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특히 연장자인 어른들에게 아랫사람이 인사할 때는 눈을 아래로 하고 허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인사하라고 배워 왔습니다. 그렇더라도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이 평화 표시가 일상에서 나누는 보통의 인사가 아니라 성찬례 안에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기 전에 서로에게 주님의 평화를 기원하고 사랑과 일치를 드러내는 표지임이 드러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성당에서는 옆자리의 교우들에게, 심지어는 부부 사이나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조차도 지극히 형식적인 틀에 박힌 몸짓과 아무 느낌이 없는 공허한 소리로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말을 나누는 것은 재고해 볼 사항입니다. 부부 사이에 한 주간의 수고와 정성에 대해 따스한 말과 함께 고마움이 담긴 몸짓 표지를 나누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특히 주일이나 대축일, 혼인미사나 장례미사(로마 미사 경본 지침에는 장례미사 때에도 평화의 인사를 나누게 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서는 평화의 인사를 생략하는데 이는 달리 생각해야 할 점이다. 유가족에게 하느님의 위로와 평화를 빌어주는 인사가 절실히 필요한 시간이다.) 때는 달리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또한 소그룹 미사나 가정미사 때는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로 친교를 나누는 방법이 주일 신자들이 많이 모인 미사 때와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사실 주일 미사 공동체 안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만을 알고 자신의 영혼과 하느님만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자세는 점차로 극복되어야 합니다. 영성체가 우선 하느님과 믿는 이와의 일치와 더불어 영성체하는 사람들 간의 일치라고 한다면 이러한 일치감을 표현하는 것은 의미 있는 것입니다. 인사에는 그 이상으로 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연인들은 서로 손을 잡습니다. 중세기에 예수님과 요한을 묘사한 그림에도 이런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과 사랑하는 제자는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어깨 위에 자기 머리를 기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왼손을 요한의 어깨 위에 얹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른손은 제자의 오른손을 잡고 계십니다. 또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경당 천정에 그린 그림을 보면 하느님 아버지는 아직도 잠들어 있는 아담의 손을 당신 손으로 건드리심으로써 그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인사라는 것은 “나는 당신 곁에 있다. 당신은 나를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화의 인사 때 유의할 사항으로 사제나 봉사자들은 미사 거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제단을 벗어나지 말고 제단에 머물러야 한다고 미사 경본 총지침은 가르칩니다.(총지침 154항)

 

 

하느님의 어린양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 죄인임을 체험하고 이를 고백합니다. 신앙인들의 이 근본적 느낌은 시편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님,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시편 130,3) 그러나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현존은 이미 우리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우리 죄는 용서받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공동체 안에서 믿는 마음으로 성찬례를 거행하는 사람은 일상생활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이 주님과 일치할 자격이 있는가 하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 제자들 앞에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우리 공동체 안으로도 들어오십니다. 우리의 태도는 이제 오시는 주님께 올곧은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카파르나움의 백인대장 말과 같이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마태 8,8 참조)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 우리의 부당함을 고백합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 자비에 대한 신뢰는 이 부당함을 능가합니다. 성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병자를 고쳐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모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성찬의 식탁에 초대하셨고 당신과의 만남을 준비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식탁에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그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에 사제와 신자들은 다함께 카파르나움 백인대장이 한 말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족한 자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부족한 사람들인 것처럼 우리 서로도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결점투성이의 죄인이지만 동시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초대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하심이 우리를 초대하시고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선사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온통 다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영성체로 나아가는 행렬은 선물을 받은 자들, 구원된 자들의 행렬이요, 기쁨의 잔치 행렬입니다.

 

[월간빛, 2014년 9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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