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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대림성탄] 신경에서 드러나는 성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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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28 ㅣ No.1738

[전례 생활] 신경에서 드러나는 성탄의 의미

 

 

두 가지 신경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기도문을 ‘신경’이라고 한다. 현재 전례 중에는 두 개의 신경, 곧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사도 신경’이 사용된다. 로마 예법의 성찬례에서는 전통적으로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만을 사용해 왔다.

 

이 신경보다 더 오랜 전통을 지니는 사도 신경은 초세기 교회에서부터 세례식의 신앙 고백문으로 사용하여 ‘세례 신경’이라고도 불린다. 사도 신경은 동 · 서방 교회가 함께 공유하는 신경이어서 교회의 일치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02년에 반포된 「로마 미사 경본」 제3표준판은 비로소 사도 신경을 함께 제시하면서 특히 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에 사용할 것을 권장하였다. 사순 시기는 파스카 성삼일 축제를 준비하며, 성삼일의 절정인 부활 성야 미사를 향해 나아가는 시기이다.

 

주님의 부활을 직접적으로 기념하는 부활 성야 미사 중에는 세 가지 입교 성사, 곧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것이 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파스카 사건과, 예비 신자가 주님과 함께 죽고 부활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는 세례성사는 파스카 신비 안에서 서로 일맥상통한다.

 

그러므로 세례 신경이라고 불리는 사도 신경은 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에 참으로 어울리는 신경이다.

 

 

신경에 할당된 전례 동작

 

신경에 나타나는 신앙 조항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당연히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묻히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파스카 사건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례 중에 신경을 낭송할 때에 고개를 깊이 숙이는 전례 동작이 부여되어 있는 부분은 파스카 사건을 언급할 때가 아니다.

 

바로 주님의 육화(강생)를 언급하는 부분, 곧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사도 신경)와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하고 고백할 때 고개를 숙인다. 다른 부분에는 없는 특별한 전례 동작이 주님의 육화를 언급하는 부분에 할당되어 있기에 비록 신학적으로 성삼일 사건이 최고의 중요성을 지닌다고 해도, 예식 거행의 측면에서는 육화 부분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례 중에 신경을 바칠 때 성삼일 사건에 해당하는 부분이 아니라 육화를 고백하는 부분에서 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더 나아가 ‘신학적인 측면과는 달리 예식 거행의 측면에서는 성삼일 사건보다 육화 사건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할 수도 있다.

 

 

주님께서 태어나신 날

 

교회가 처음부터 주님의 탄생일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다. 성탄에 대하여 가장 오래된 증언은 354년의 「로마 연대기」이다. 거기에는 장례일을 기록한 목록 두 개가 실려 있다. 하나는 로마 주교들의 장례일이고, 다른 하나는 순교자들의 장례일이다.

 

이 「로마 연대기」는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12월 25일을 순교자 장례일 목록의 맨 앞에 기록해 두고 있다. 두 개의 장례일 목록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은 336년에 작성되었는데, 당시에 주님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주님께서 탄생하신 정확한 날짜는 사실 오늘날까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면 12월 25일이 어떻게 주님의 탄생일이 되었을까? 이에 대해 다양한 가설이 제시되고 있는데, 가장 납득할 만한 것은 이러하다.

 

본디 12월 25일은 동지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동지는 태양이 가장 약해져서 죽음에 이르는 날이고, 바로 다음 날부터 태양은 다시 강해지면서 부활하기에, 12월 25일은 당시 성행했던 미트라교의 ‘불멸의 태양 탄일 축제일’이었다. 교회는 예로부터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하느님 현존의 ‘영광’을 드러내는 ‘광채’로 표현하는 가운데 어둠을 비추는 ‘빛’으로 고백하였다.

 

이러한 이교의 태양신 축제일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리기에 적합했다. 그래서 이날을 그리스도교의 축일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이교 축제를 지양하고 그리스도교의 축일을 장려하는 전기로 삼았던 것이다. 이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혼합주의 개념과도 잘 어울렸을 것이다. 실제로 이 황제는 321년에 주일과 태양신의 날을 시민 사회의 휴일로 제정하였다.

 

한편, 당시의 교회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던 아리우스파의 주장에 맞서고자 성자의 신성과 인성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아리우스파를 단죄한 뒤 성자의 단일한 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 있음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는 성자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교의를 전례로 천명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성탄절의 거행은 4-5세기 무렵에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서방 교회에서 시작하여 동방 교회에 이르기까지 두루 전파되었다.

 

 

육화 신비의 거행과 의미

 

교회가 본격적으로 주님의 탄생일을 축일로 지내기 시작한 것은 4세기 말이었다. 5세기 초에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파스카를 성사라고 표현한 반면에 성탄 축제는 단순한 주년 기념일이라고 하였다.

 

그는 파스카가 지난날의 사건을 기념하면서 우리 이성으로 인지할 수 있는 표지를 통해 그 안에 내재하는 초월적인 실재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 반면, 성탄에 대해서는 그러한 인식에까지 도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성탄의 의미가 깊고도 넓게 밝혀진 것은 5세기의 레오 1세 교황이 작성한, 성탄과 공현을 주제로 한 수많은 강론을 통해서이다. 레오 1세 교황이 여러 차례의 강론에서 강조한 성탄의 의미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죄와 죽음의 승리자이신 우리 구세주께서는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보시고 만민을 해방시키시러 오신 것입니다. 인간을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시려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흠 없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그리스도께서는 전 인류의 파괴자를 단죄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더러운 영혼들의 타락과 상처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치유하러 오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동정녀의 잉태와 출산을 통해 태어나셨으며,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실 수 있는 신성과, 수난을 당하실 수 있는 인성을 함께 지니고 계십니다.”

 

레오 1세 교황의 강론에 따르면, 주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은 파스카 사건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것이며, 결국 성탄은 파스카 사건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성탄은 하느님의 신비가 인간의 눈에 드러난 성사이다. 이 성사는 파스카와 구별되거나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파스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단일한 구원 사건을 이룬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수난하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실 수 있는 인성을 취하신 사건이다. 그래서 파스카 사건이 가능해지고,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신경에서 드러나는 육화 사건의 의미

 

그렇다면 전례 중에 신경을 낭송할 때에 육화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고개를 깊이 숙여 절하는 이유도 자연히 밝혀진다. 성삼일 사건보다 육화 사건이 더 중요하기에 그 부분에서 절하는 것이 아니다. 신경에서 ‘파스카 사건에 대한 언급이 시작되는 부분’, 곧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파스카 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절하는 것이다.

 

구원의 역사 속에 있는 우리는 종말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를 지낸다. 동시에 지금 이미 주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기억하면서 해마다 주님 성탄 대축일을 거행한다.

 

주님 성탄 대축일은, 우리가 “주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고만 말할 그런 날이 아니다. 이 대축일은 ‘주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온 세상을 위해 돌아가시고 묻히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함’임을 기념하는 날이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그러한 구원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체험하고, 다가오는 종말에 그 구원이 완성될 것임을 확신하는 날이 바로 주님 성탄 대축일이다.

 

* 한 해 동안 ‘전례 생활’을 집필해 주신 신호철 신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 신호철 비오 - 부산교구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 겸 교목처장,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7년 12월호, 신호철 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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