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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미사] 전례의 숲: 하느님 말씀과 말씀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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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3 ㅣ No.1341

[전례의 숲] 하느님 말씀과 말씀 전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미사, 특히 말씀 전례를 쇄신하였습니다. 고대 교회의 전례에 따라 독서자, 신자들의 기도, 강론, 독서대와 독서 후 침묵의 중요성도 복구하였고, 성경의 보고를 열어 신자들이 성경을 더 많이 듣게 하려고 미사 독서를 늘리고 선택 폭을 넓혔습니다. 무엇보다 말씀 전례에서도 주님께서 실제로 현존하시며,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에서 같은 신비를 다른 방식으로 거행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밝혔습니다. 

 

한 마디로 공의회 덕분에 하느님 말씀과 말씀 전례는 귀양살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말씀 전례로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은 성체와 똑같이 중요합니다. 공의회가 확인한 대로 사실 전례에서 교회는 생명의 양식을 하느님 말씀과 성체의 두 식탁에서 얻습니다. 말씀을 받아 모시는 것도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을 받아 모시는 것입니다(말씀 영성체).

 

또한 소홀한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교회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몸에 드린 것처럼 마찬가지로 하느님 말씀을 공경해 왔습니다. 실제로 미사에서 방식은 다르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성체와 똑같은 공경을 받습니다. 말씀과 성체는 모두 부활하신 분의 공현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말씀 전례를 거행하는 이유, 말씀을 선포하는 이유입니다.

 

미사의 두 부분,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말씀 전례를 성찬 준비라고 여겼습니다. 예를 들면, 밥상을 받기 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해 먹는 전식쯤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말씀 전례는 건너뛸 수도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실제로 미사에서 예물봉헌 전에 도착한 신자는 주일 의무를 채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의회 이후 이 전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미사는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두 전례는 긴밀하게 결합되어 한 예배를 이룹니다. 따라서 하느님 말씀 없이 성찬 전례를 거행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옛날처럼 “성사는 은총을 주고 말씀은 가르침을 준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성찬의 성사에 속하며, 말씀은 성체와 같이 성사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도 또 하나의 영성체입니다. 말씀 전례는 예배 준비가 아니라 참되고 고유한 예배입니다. 이 예배는 말씀 안에서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는 믿음에 바탕을 둡니다. 독서를 동반하는 예식들이 이 현존에 대한 믿음을 드러냅니다.

 

 

미사 안에서 성경이 말씀으로 변해

 

전례에서 성경을 책으로 읽지만 않고 사건으로 경축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전례 안에서 기록된 성경이 오늘의 사람을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입니다. 말씀 전례에 들어있는 독서와 기도와 여러 예식은 말씀이 사건이 되게 합니다.

 

따라서 단순하게 과거 말씀하셨고 과거 일어난 사건만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과 사건이 오늘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곧 하느님은 “오늘” 당신 백성, 곧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우리 구세주 세상에 태어나셨네. ‘오늘’ 하늘에서 참평화 우리에게 내렸네.”하고(성탄 밤미사 입당송) 노래합니다.

 

그러므로 전례에서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나자렛 회당에서 일어난 일이 되풀이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 21). 

 

미사 안에서 성령의 활동으로 빵이 성체로 변하듯, 똑같은 성령의 힘으로, 성경이 말씀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빵의 전례라고 않고 성찬 전례라고 하듯이, 성경 전례라고 않고 말씀 전례라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말씀의 전례는 분유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분유는 본디 액체 상태로 있었는데 보존을 위해 분유가 되었다. 그러나 제대로 먹기 위해서는 분유는 본래의 액체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도 말씀에서 나온 기록임으로 다시 살아 있는 말씀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말씀 전례가 성경이 말씀이 되게 합니다.

 

 

말씀 전례는 하느님 말씀을 공경한다는 뜻 담아

 

미사에서 단순히 읽는다고 하지 않고 선포한다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독서 자체는 읽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전례에서 읽는 것은 여느 때 읽는 것하고 다릅니다. 선포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분명하고 큰 목소리로 읽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선포는 공식적으로 읽는 것입니다. 나아가 전례적 선포는 예배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읽는 것이 기억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선포하는 것은 말씀하시는 분과 듣는 사람들 사이에 인격적 만남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례 거행에서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는 참된 만남과 대화가 생기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이 기록된 문서이기를 멈추며 하느님께서 오늘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변합니다. 그러므로 모임 안에서 신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본래 가졌던 힘을 다시 찾게 되며 하느님은 당신 백성과 직접적인 대화를 계속하게 됩니다. 

 

한편, 말씀 전례는 하느님 말씀을 공경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공경한다는 뜻입니다. 말씀 전례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말씀 안에 언제나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대한 공경은 독서대, 독서자, 그리고 예식을 통하여 드리는 영예로 드러납니다. 독서자는 독서를 마치며 “주님의 말씀입니다.”하고 말하며 선포한 말씀의 거룩함을 기억시킵니다. 회중은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환호합니다.

 

말씀 공경은 장엄한 예식으로 이루어지는 복음 선포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이 예식은 외적인 성대함과 교육적 효과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현존에 대한 믿음을 장엄하게 표현합니다. 

 

복음의 책이 아니라 회중을 만나러 오시는 분에 집중합니다. 복음의 말씀은 회중에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공현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주님의 살아계신 인격으로 여겼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가 증언하듯이 에페소 공의회 때 회의장에는 복음집을 왕좌에 모셔놓았습니다. 나아가 말씀에 대한 경의는 예식뿐 아니라 대화 구조를 나타내는 노래, 신앙고백, 신자들의 기도를 통해서 표현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당신 말씀에 현존

 

말씀 전례에서 선포하는 독서는 하느님에 “관한” 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전례에서 거행되는 말씀은 모인 아들딸들에게 하시는 아버지 말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그곳에서 가족에게 편지도 쓰셨습니다. 이윽고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셨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만나 말씀을 듣기 위해 큰 방에 모였습니다. 기쁨이 가득 찬 잔치인 셈입니다. 그런데 한 아들은 아버지가 쓴 편지에 나오는 어떤 문장의 뜻인지 알아보겠다고 큰 방에 오지 않고 다른 방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큰 방에 모여 말씀을 듣고 그 뜻을 물어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혼자서 편지를 보는 것은 그 다음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성경을 공부하고 분석하고 번역하고 하면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여 성경은 특정 종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문헌으로서 보존과 연구의 대상, 그리고 개인 묵상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은 활동을 멈추고 문자에 갇힐 위험이 있습니다.

 

성경이 전례 회중에서 선포될 때 거기 들어 있는 말씀은 잠을 깨고, 틀을 부수고 밖으로 나와 듣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살아 있는 사건, 살아 있는 인격체로 변합니다. 말씀이 숨을 쉬고, 온기와 색깔을 가지고 되어 살아나고, 생기를 되찾고, 활기차고, 말하고 활동하고 변화시킵니다.

 

과거에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났던 것처럼 이제 기록은 신현 현상으로 변합니다. 바로 이 순간, 말씀이 하느님의 입에서 나와, 성령의 활동으로, 독서자의 봉사를 통하여 백성의 귀에 마음에 이릅니다.

 

전례에서만 유일하게 살아 있는 말씀을 듣고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례가 출발지이고 목적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당신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십니다.”(미사경본 총지침).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당신 말씀에 현존하시며, 구원의 신비를 현실화하시며 사람을 성화시키고 아버지께 완전한 예배를 드리십니다.”(독서집 일러두기).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7월호, 심규재 실베스텔(신부, 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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