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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전례의 숲: 미사와 사랑의 식탁(애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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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2-11 ㅣ No.1381

[전례의 숲] 미사와 사랑의 식탁(애찬)

 

 

신약 성경에서 성찬례를 가리키는 주님의 만찬이나 만찬, 어린양의 혼인 잔치, 주님의 식탁, 빵 나눔과 같은 용어들은 공동 식사를 가리킵니다. 이밖에 섬김(디아코니아), 친교(코이노니아), 사랑의 식탁(아가페)과 같이 성찬례 맥락에서 공동 식사를 가리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미사가 지닌 제사 가치를 강조하면서 공동 식사 차원도 떠오르게 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전례헌장은 미사를 “성찬의 제사”와 “파스카 잔치”라고 제시합니다.

 

미사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일치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미사를 “자비의 성사, 일치의 표징, 사랑의 끈”이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1요한 4,8). 하느님의 사랑은 사심이 없고, 너그럽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용서하고, 언제나 관심을 보입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며 형제들 사이에서 사랑을 실천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주신 큰 계명입니다(요한 13, 34; 15, 12. 17).

 

율법의 요약이자 완성인 사랑은 믿음 희망과 함께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고 하느님을 알게 하고 하느님과 하나가 되게 하는 덕입니다.

 

신약 성경은 이 사랑을 보통 “아가페”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사랑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초기 교회에서 사랑 실천 방식 가운데 세 가지가 두드러집니다. 첫째 신자들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자비 실천 또는 희사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공동체 만남, 특히 전례에서 “거룩한 입맞춤”, “사랑의 입맞춤”으로 인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자들이 함께 하는 ‘공동 식사’에서 표현되었습니다. 이 식사를 “아가페”, 곧 “사랑의 식사”(애찬)라고 부릅니다 (유다 12). 아가페 식사는 성찬례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때 성찬례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였습니다.

 

 

아가페 식사는 형제적 사랑과 친교를 나누는 것이 목적

 

아가페 식사는 초기 신자들이 성찬례를 거행하기 전에 (또는 후에) 가졌던 공동 식사를 가리킵니다. 그 기원에 관하여 여러 가설이 있습니다. 쿰란 공동체 규칙서가 증언하는 “거룩한 공동 식사”나 로마 제국 전체에 퍼진 “장례 식사”와 같은 공동 식사(심포지움)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 히브리 문화에서 친구들 사이에 있었던 공동 식사(하부라)가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과 제자들도 이러한 형제적 친교의 식사 관습을 지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모인 제자 공동체가 이 관습을 이어받은 것은 자연스럽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식사의 배경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염원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가페 식사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만 있었던 관습으로 이름 그대로 형제적 사랑과 친교를 나누는 것이 근본 목적이었습니다. “빵 나눔”으로 일컫는 거룩한 공동 식사가 그 초기 형태일 것으로 봅니다. 아가페 식사의 이 친교의 특징은 로마에 있는 지하묘지(카타콤)의 그림에서도 드러납니다.

 

아가페 식사를 그린 그림들에는 대부분 일곱 명의 참석자가 나옵니다. 이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일어난 사건을 연상시킬 수 있습니다. 거기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일곱 제자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합니다(요한 21). 아침을 들고 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묻고, 베드로는 “예, 주님!”하고 대답합니다. 그러므로 이 그림을 통해 아가페 식사가 형제적 사랑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가페 식사는 먹고 마시는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가난한 이들을 참된 형제로 여기며 자기 재산을 나누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일곱 명의 식탁 봉사자(=부제)를 뽑아 세운(=서품) 사실을 싣고 있는데(사도 6, 1-6), 이것은 아가페 식사를 배경으로 두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 ‘배급’이라고 옮긴 그리스어 “디아코니아”에는 식탁 봉사와 말씀 봉사와 자선 모금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아가페 식사의 특징은 공동체 안에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돕는 자선 행위로 굳어졌습니다.

 

 

아가페 식사는 애덕 실천 위한 제도로 자리 잡아

 

대략 2세기 초부터, 어떤 곳에는 더 일찍이, 성찬례는 아가페 식사에서 분리되었습니다. 신자들의 수가 많아져 공동체 전체가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가페 식사 때 일어났던 안 좋은 상황들도 분리를 재촉했습니다. 보기를 들면, 아가페 “잔치를 벌이면서 자신만 돌보는”(유다 12) 이들이 있었고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하는”(1코린 11,21) 일도 생겼습니다. 아울러 성찬례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따로 거행해야 한다는 사실도 분리를 거들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성찬례는 아침으로 옮겨지고 아가페 식사는 그대로 저녁에 행하였습니다. 

 

고대 교회에서는 이렇게 성찬례에서 분리된 형태로 아가페 식사를 자주 거행하였습니다. 특히 순교자의 천상 탄일(순교한 날), 신자들의 혼인이나 장례 때에도 아가페 식사를 거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대 수도원의 식사도 이러한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지금도 이집트 콥트 수도원에서는 사막의 수도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주일 성찬례 뒤에 갖는 식사를 아가페라고 부릅니다. 테르툴리아노는 2세말 또는 3세기 초 무렵의 아가페 식사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가페 식사는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니라 경건한 예식이었습니다. 참석자들은 소박하게 먹고 마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공동 식사는 그리스어 [아가페로] 표현하는데 사랑을 뜻합니다.”(호교론 39).

 

식사는 저녁에 이루어졌으며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진행되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시작 기도를 바친 뒤에 참석자들은 자리를 잡습니다. 이어서 식사를 합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차분한 분위기에서 경건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식사가 끝나면 손을 씻고 방에 불을 켭니다. 그 뒤에 시편이나 다른 찬미가를 노래합니다. 모임은 마침기도로 끝납니다. 

 

아가페 식사는 차츰 교회 안에서 애덕 실천을 위한 제도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3~4세기 교회에서는 능력 있는 신자가 자기 집에서 공동 식사를 마련하여 공동체의 가난한 사람들, 특히 과부들을 초대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식사 자리는 보통 주교가 주례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사제나 부제가 주례하였습니다. 그러나 4세기 교회가 자유를 얻은 뒤에 아가페 식사 관습은 초기의 정신을 잃으면서 차츰 사라지게 됩니다. 신자들의 수효가 급증하게 되자 초기의 단순하고 소박한 관습을 간직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가페 식사를 개인 집이 아니라 성당에서 거행하게 되면서 부작용들이 생긴 것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공의회에서 아가페 식사를 규제하는 결정들을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성당 안에서 아가페 식사를 금지한 것도 들어 있습니다. 마침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아가페 식사는 사라지고 공적이나 개인적으로 애덕을 실천하는 방식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고대 교회 아가페 식사 관습을 그대로 재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공동체 모임에서 아가페 식사 방식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주님을 찬미하고 믿음의 형제들과 기쁜 시간을 보낸 것처럼 우리도 아가페 예식을 하면서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형제적 사랑, 애덕의 정신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어떤 본당에서는 가끔 그 지역의 노인들이나 어려운 사람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잔치를 마련합니다. 교우들은 직접 식사를 준비하고 그들을 대접합니다. 현대적인 아가페 식탁의 모습입니다. 행사 준비하면서 날을 잡아 피정을 하면 아가페 정신을 더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가페 만찬 정신을 오늘날 되살리는 다른 방식은 노숙자들이 이용하는 “빈민 식당”에 관심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빈민 식당은 “상설 아가페 식탁”입니다.

 

여러 교우들은, 특히 레지오 단원들은, 개인이나 단체로 빈민 식당에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일이나 다른 중요한 날 잔치를 치르는 대신에 그 비용을 빈민 식당에 기부하기도 합니다. 

 

직접 간접으로 아가페 식사에 참여하는 것은 미사의 참 뜻, 곧 주님 앞에서 형제들과 함께 하는 식사, 곧 천상 잔치에 참여하도록 이끌어 줍니다(루카 14, 12-14).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12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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