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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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하느님 안에서 기쁨 되찾기: 교회 안에서는 신앙 이야기만 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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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8-24 ㅣ No.957

[하느님 안에서 기쁨 되찾기] 교회 안에서는 신앙 이야기만 하고 싶은데….

 

 

질문

 

왜 성당에서 정치나 세상의 이야기들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치나 사회 문제는 세속의 영역이 아닌가요? 교회 안에서 왜, 심지어 신부님조차 강론 시간에 정치 이야기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인생 의미의 심리학」이란 책의 저자인 심리학자 아들러는 모든 신경증자(신경증 환자)는 많든 적든 행동의 영역을 제한하면서 세계와의 접촉을 꺼린다고 했습니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인생의 세 가지 과제와 인연을 맺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직업, 교우, 사랑입니다.

 

그러나 신경증 환자는 직업, 교우, 사랑 이 세 가지의 현실적이고 절박한 인생의 과제로부터 거리를 두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직업적인 면과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에서 언급하는 신경증이라는 말은 내적인 심리적 갈등이 있거나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과정에서 무리가 생겨 심리적 긴장이나 증상이 일어나는 인격 변화를 뜻합니다.

 

아들러에 의하면 용기란 타인과 협력하고 사회적 관심을 표현해 내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사회의 일부라는 소속감을 느끼고, 타인과 연결돼 있다는 유대감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사람만이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고, 이런 용기는 직업과 사회, 우정과 애정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파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접촉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을 하라고 합니다. 서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접촉이 필요하고 접촉하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타인과 연결돼 있음을 인식하고, 인간관계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인간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공평함과 평등함이 매우 중요한 이슈입니다. 하느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고 교회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평등함이 인간관계의 선행 조건일 것입니다.

 

질문을 보면 성당에서 정치나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정치나 세상 이야기로 국한해서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는 대부분 정치적인 사안과 연결된 것이 많습니다. 정치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정치가 존재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생각의 차이가 존재하고 사람들이 좀 더 갖기 위해서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중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이런 상황은 같은 것 같습니다. 요즘 세계의 정치 상황에서 중국과 미국의 생각 차이와 주도권 싸움도 이런 표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특히 힘이 없어 보이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독단적인 행동은 경제적 우위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서 벌이는 파워 게임이며 자신들의 뜻대로 한국을 조종하겠다는 의미임이 확실합니다. 친일 세력을 조종하기 위해서 막대한 자금을 동원한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런 불평등함에 대해서 하느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현재 홍콩을 손안에 넣고 흔들려는 중국정부의 태도에 대해서 많은 중국의 연예인들이 동조를 하고 나선 것을 보면 중국정부의 행태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력 진압을 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고 나서는 태도에서 공평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평등함을 보존하려면 홍콩 시민들이 처한 억울함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지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이 땅에 하느님의 평화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많은 신부님들이 강론 시간에 정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한 방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정치 이야기라고 하기보다는 삶의 평등함에 대한 광야에서의 외침 소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들러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인용하자면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연결됨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용기를 지니고 유대감을 형성해서 구원에 이르는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할 때는 상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대방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들으려고 하면 좀 더 많이 들릴 것이고, 듣는 이의 사고 폭도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 질문 보내실 곳 : [우편] 04919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7층 [E-mail] sangdam@catimes.kr

 

[가톨릭신문, 2019년 8월 25일, 이찬 신부(성 골롬반외방선교회 · 다솜터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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