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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복음으로 세상 보기: 사형제 찬성, 반대 아직도 고민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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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07 ㅣ No.1626

[복음으로 세상 보기] 사형제 찬성, 반대 아직도 고민하시나요?

 

 

“신부님! 마지막 코스에서 만나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하셨지요?

 

솔직히 저도 스산한 형장에서 신부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거든요. 음산한 죽음의 자리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한다면 얼마나 서운하겠습니까?

 

한 달 뒤 미사를 약속하고 헤어지는 발걸음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운데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라니요!”(사형수 형제의 편지글 중에서)

 

12월이 되면 2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항상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다.

 

7년의 보좌신부를 마치고 교정사목위원회에 발령을 받고 교도소를 다니며 수용자들을 만나고 미사를 봉헌한지 한 달 정도 되는 날이었습니다. 막 퇴근하려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내일 사형집행이 있습니다. 아침 9시까지 구치소로 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비밀로 해주십시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사형집행!!!

 

이제 교정사목에 온지 겨우 한 달 되는데… 일반 수용자들을 만나는 것도 어색하고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형수를 사형집행장에서… 정신을 차리고 위원장 신부님과 밤늦게 연락이 돼서 위원장 신부님이 집행되는 사형수를 위해 함께 하시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사형수와 사형집행, 사형폐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사형수와 사형집행이라는 것이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다음 날 총 23명의 사형수가 5곳의 사형장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위원장 신부님은 하루종일 사형수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셨습니다. 그것이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1997년 12월30일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정권을 인수인계하던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다음날 2명의 사형수를 위한 장례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사형집행장에 안 들어갔지만 엄청난 경험을 했습니다. 심신이 피폐해지고, 제 감정을 어떻게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집행형장에 함께 있던 신부님은 어떠하셨을까.

 

다음해 4월에 처음으로 사형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사형수를 만나러 가던 날은 긴장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긴장감과 두려움은 직접 사형수들을 만나자 마자 사라졌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최고수(사형수를 최고의 형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최고수라고 부름)들을 보면서 ‘아! 우리와 똑같네. 사형수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형제도는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반 생명의 문화

 

교정사목을 하기 전에 사형제도에 대한 깊은 고민과 관심이 없었습니다. 빈민과 교정사목을 함께 하시던 존경하던 선배 신부님이 사형수에 대한 얘기를 하셨지만 관심 없이 흘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형집행형장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집행이라는 것이 눈앞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사형수들을 만나 그들이 겪었던 삶의 애환과 아픔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참회하면서 매일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보면서 사형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왜 사형수들을 오랫동안 만났고 함께 했던 신부님, 스님, 목사님과 변호사님들이 중심이 되어 사형폐지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형집행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교정사목을 13년간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계속 사형집행이 이루어졌다면 그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 역시 가톨릭출판사 사장과 교정사목을 하실 때 사형집행에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집행형장에서 사형대가 부러져 사형수가 두 번 교수대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가 당시 젊은 김수환 신부에게 태연하게 다가와 “제가 지금 제일 죽기 좋은 때입니다. 모든 준비가 다 돼 있습니다.”라며 위로하더랍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사형수 미사를 요청할 때마다 마다하지 않으시고 사형수를 찾아가 미사를 봉헌해 주시며 사형폐지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셨습니다.

 

추기경은 사형폐지에 대한 반대의견이 많은 시절에도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민의 찬반 논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이때 생명 존중 사상을 무엇보다 우선시한다면 사형 제도를 폐지할 수 있을 것”라며 사형폐지를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사형제도를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반생명의 문화”이며, “사형은 용서가 없는 것이죠. 용서는 바로 사랑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흉악범을 엄벌에 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생명만큼은 살려둔 채 용서하고 화해하려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형제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공식 가르침은 사형제도에 반대하면서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미 매년 11월30일을 사형 반대의 날로 선포하고, ‘시티 오브 라이트’(City of Light) 운동을 벌여, 이 날이 되면 사형을 반대하는 의미에서 콜로세움에 불을 밝혔고, 기회 있을 때마다 사형폐지에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사형폐지 운동은 생명운동

 

사형폐지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8월2일 사형을 조건부 허용하던 기존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67항을 “사형은 용인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개정할 것을 지시하며 사형반대로 입장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공정한 절차를 거친 사법부의 권한으로 행사된 사형구형은 몇몇 중대한 범죄에 대한 적합한 대응으로, 또한 그것이 극단적이라 하더라도 공동선의 보호를 위해 동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심각한 범죄를 범한 후에도 인간의 존엄은 침해할 수 없다는 인식이 더욱 생명력을 지닙니다…. 교회는 복음에 비추어 ‘사형은 개인의 불가침성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전 세계의 사형제 폐지를 위한 결의를 통해 가르침을 살아갑니다.”

 

교회가 사형폐지를 명확히 하는 것은 생명권과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형제 폐지는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운동입니다. 어릴 때부터 잘못한 사람은 죽여도 괜찮다는 교육을 받으면 자신의 생각과 가치, 이념이 다른 사람들은 죽어도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생명 유무를 판단한다면 그보다 무서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어릴 때부터 잘못한 사람은 벌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람의 생명만큼은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가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이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생명까지도 존중되고 지켜지는 사회가 된다면 국민 모두가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고 보호하는 문화가 싹트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형폐지운동은 사형수의 형 집행을 막자는 것을 뛰어넘어 이 사회에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생명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월호, 이영우 토마스 신부(서울대교구 봉천3동(선교)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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