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강론자료

2018-11-11.....연중 제32주일.....평신도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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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11-11 ㅣ No.2275

연중 제32주일 (나해)

1열왕기 17,10-16      히브리 9,24-28       마르 12,38-44

2018. 11. 11. (주일) 이태원. 평신도 주일-2017년부터 기념주일 변경.

<토요일18. / 주일0630>

주제 : 하느님께 봉헌하는 나의 자세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목적은 당연히 갖겠습니다만, 이왕이면 힘들고 가난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부자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마음에 편할 것입니다. 또한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나 부자로 살고 싶다고 말할 것입니다. 가난은 삶에서 여러 가지로 힘든 조건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난한 사람으로 사는 것과 부자로 사는 것을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상의 삶에 큰 흔적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정성이 많이 모이는 것보다는 부자인 사람의 몇 명이 힘을 보태는 것이 낫습니다. 이론은 이렇습니다만, 세상을 대하면서, 우리는 부자의 행동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많다는 세상에서 부자를 질투하는 것일까요? 이 시간에 가난한 사람과 부자인 사람의 비교하는 제 얘기가, 여러분 가운데 부자로 사는 분들에게 피해가 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 시간에 하는 말이 부자를 미워하거나 그들의 역할을 낮추어보자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며 올바른 길을 알려주던 율법학자들의 행동에 비교하여, 성전에서 자신이 가졌다는 것을 모두 봉헌한 가난한 과부의 모습을 비교하는 이야기이고, 그 일이 일어났던 자리에 계셨던 예수님의 평가에 관한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가르치는 역할을 하던 사람들의 삶과 가난한 과부의 삶에서 어떤 모습이 좋아 보입니까? 둘 중의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못할 일은 없지만, 이 선택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가난한 과부보다 더 많은 돈을 봉헌했을 사람들을 나쁜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가난한 과부로 등장한 여인의 현실을 좋게 볼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가 봉헌한 금액은 렙톤 두 닢, 콰드란스 한 닢의 금액은 요즘으로 계산하면 500원쯤이 넘는 금액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이 봉헌한 금액이 가장 많은 것이라고, 세상의 논리가 아닌 다른 비교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판단하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앞에 나왔을 때, 내어놓는 정성을 생각하면우리의 삶은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나는 세상에서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 부자이면서, 복음에서 가난한 과부와 그녀가 봉헌한 것을 칭찬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오늘부터는 가난한 과부처럼 가진 것을 적게 내고, 금액은 적지만 남들보다 많이 냈다는 소리를 들고 살겠다고 작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물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일지 그 사정은 개인만이 아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예언자를 손님으로 모셨던, 사렙타마을의 과부가 한 행동이야기는 어떻게 알아듣겠습니까? 가난한 과부는 그녀가 세상에서 살 수 있었던 생애의 마지막 날에, 한 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재료만 있었는데도, 엘리야예언자가 하는 말을 따라 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하느님의 사람에게 먼저 가져옵니다. 과부가 무슨 생각으로 했는지는 모르지만, 현실의 어떤 사람이 이 여인처럼 움직이겠습니까? 더더구나 세상에서 내가 준비한 음식을 먹은 사람이 내게 기적을 베풀어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보이는 행동은 더 많이 영향을 입을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신앙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 열왕기독서의 말씀과 마르코복음에는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이었던, 돈이 없는 사람들의 행동을 크게 보는 얘기입니다만, 물질의 가난은 아무리 좋게 해석을 한다고 해도 칭송할 수 없는 힘겨운 일입니다. 부자로 사는 사람들의 행동을 질투할 일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부자로 사는 것이 죄악은 아닙니다. 다만 세상에서 우리가 드러내는 자세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그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는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사제로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친 결과로 인류에게 구원의 선물이 실현되었다는 히브리서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겠다고 생각을 결정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잊지 않고 실천해야할 하느님의 뜻은 어떤 것이겠는지 겸손하게 기도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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