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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분노 다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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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21 ㅣ No.835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분노 다루기

 

 

분노(Ira)의 자화상

 

분노는 타인을 벌하고자 하는 욕구와 싫어하는 감정을 무절제하게 터뜨리는 것으로 화나 격분이나 노여움, 울분 또는 분개, 원한과 분통, 짜증, 부아 등 여러 의미를 포함한다. 칠죄종 가운데 분노는 다른 죄종보다 비교적 알아차리기 쉽고 강력하며, 큰 수치심을 준다.

 

또한 자신과 타인에게 큰 상처를 주고 불행과 정신 병리적 행동을 초래할 정도로 파괴적인 영향력이 크다.

 

사막 교부들은 분노에 대해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분노하면 그동안의 수도 생활이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암모나스 아빠스는 14년간이나 분노에서 자신을 구해 달라고 밤낮으로 기도했다.

 

이시도로 성인 또한 수도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분노가 자신의 목구멍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힘썼다고 한다. 사막 교부들은 분노하는 것을 일종의 ‘영적 살인’으로 보았다.

 

많은 이가 분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순간을 체험해 보았을 것이다. 화낸 뒤 깊이 후회하며 언제나 새로 결심하지만 효과가 없었던 순간, 결심하는 그 순간이나 며칠은 기억하지만 막상 분노 버튼이 눌러지면 좋은 결심과 의도는 사라지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어 분노를 표출했던 순간, 이로 말미암아 점점 깊은 후회에 빠져들면서 좌절하거나 분노 다루기를 아예 포기했던 순간 등 말이다.

 

 

지난날의 상처가 만든 만성적 분노

 

다른 여느 감정보다 분노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정신과나 상담소를 찾는 이들 가운데 많은 이가 분노로 고통을 겪는다. 대부분은 어린 시절의 상처로 형성된 ‘만성적 분노’와, 현재의 대인 관계나 결혼 생활과 일상의 작은 다툼에서 일어나는 ‘일시적 분노’ 등 다양한 형태의 분노를 호소한다.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일시적 분노’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다음의 예에서 보듯이 일상의 작은 분노는 지난날의 상처가 만든 ‘만성적 분노’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40대 후반의 요한 형제님은 매우 다혈질입니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이 그를 일컬어 ‘평상시에는 양처럼 온순한데 화가 나면 다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최근에 가벼운 자동차 접촉 사고가 있었는데 상대 차량 여성 운전자에게 무슨 분풀이라도 하듯이 심한 욕을 하였습니다.

 

잠시 뒤 정신이 들면서 ‘내 탓이오’ 스티커를 차에 붙인 채 화풀이를 한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졌고 화가 나면 이성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자신이 두렵다고 합니다”(졸저 「신앙도 레슨이 필요해」 중에서).

 

 

분노에서 오는 우발적 범죄

 

우리는 개인의 분노가 엄청난 사건 사고로 이어져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경우를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된다.

 

“2017년 6월 경남 양산의 15층 아파트 외벽에서 작업하던 작업자가 켠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며 옥상에 올라가 밧줄을 잘라 작업자를 숨지게 했다.”

 

이외에도 층간 소음이나 돈, 성폭력, 상급자와의 갈등, 부부 싸움 등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분노와 관련된 사건이 발생한다. 이것으로 많은 이가 불안을 느끼거나 다른 분노로 이어지게 된다. 지난날에도 분노로 말미암은 사건은 늘 있었지만 최근의 사건은 지난날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 준다.

 

지난날의 사건은 원한과 상처로 말미암은 ‘복수’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반면 최근에는 자신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묻지 마 범죄’나 ‘우발적 범죄’가 늘고 있다. 살인과 강간, 폭력, 절도 등의 범행 동기 가운데 분노로 말미암은 우발적 범죄가 상위권을 차지한다.

 

또한 개인의 분노는 자녀를 비롯해 다른 이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점차 폭력 사회와 폭력 문화를 만들어 낸다. 오늘날 ‘분노 조절 장애’를 앓는 아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위험 상황을 알려 주는 하나의 신호이다.

 

사제이며 심리학자인 로세티 신부는 비록 정신 질환이나 대인 관계 중독, 성적 일탈, 섭식 장애 등 다양한 형태로 그 증상이 나타나지만 많은 문제의 원인이 분노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필자가 만난 내담자들의 경우를 볼 때, 로세티 신부의 지적은 타당성이 있다.

 

 

분노에 대한 오해

 

분노는 우리 삶의 큰 방해꾼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감정이 부정적인 것이거나 마땅히 제거되어야 하는 것으로만 여기는 것은 분노에 대한 개념을 축소하거나 오해하는 것이다. 이는 분노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태도와도 거리가 멀다.

 

그동안 우리는 정신 의학과 심리학 분야의 연구를 통해 분노에 대해 좋은 정보와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많이 제공받았다. 하지만 일부 연구자나 그리스도인이 분노를 여전히 미성숙이나 죄, 악, 적대감, 공격성과 동일하게 여기기도 한다. 심지어는 분노를 ‘미친 상태’(정신 이상)로 여기기도 하는 등 분노에 대해 오해하기도 한다.

 

또한 분노를 두고 ‘감정을 느끼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경증적인 억압을 그리스도인의 덕으로 여기기도 한다. 분노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면서 이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오해를 살펴보자.

 

■ 분노는 미친 상태다?

 

이따금 화를 드러내는 것을 무조건 통제력을 상실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화가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부 인격 장애나 분노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그런 상태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지만 화를 느끼고 그것을 건강하게 드러내는 경우는 미친 상태가 아니다.

 

■ 분노는 악이다?

 

분노는 외부 자극에 대한 한 가지 반응으로 분노를 통해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도록 자신을 각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만일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위협을 느끼게 될 때 스스로를 각성시켜 자기의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을 준다면 그것은 악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분노는 마치 인간 본성에 존재하는 경보기와 같다. 이 경보기가 발동하면 외부 자극으로 도주하거나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싸우거나 반격하는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추진력을 갖게 된다.

 

이때 이 추진 에너지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선택할지가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분노라는 추진 에너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잘못 사용한 사람에게 있기에 분노 자체가 악이 될 수는 없다.

 

■ 분노는 우리를 파괴한다?

 

분노는 다양한 형태로 자신과 타인의 삶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창조적인 힘을 발휘하여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임상 심리학자인 콘라드 바즈 박사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분노가 생명을 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분노는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나는 나치에 체포되어 2년간 부켄발트 강제 노동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나와 함께 수용소로 보내진 천 명의 죄수 가운데 고난을 이기고 살아남은 사람은 단 여섯 명에 불과했다. 나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분노였다고 생각한다”( 「I will give them A New Heart」 중에서).

 

물론 바즈 박사도 나치에 대한 분노만 가지고 있다면 자신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분노와 함께 신앙에 대한 희망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자신을 살아남게 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 분노는 미성숙한 신앙의 표지이다?

 

우리는 자신이 고통받는 순간에 타인에게 분노를 느낄 때가 있다. 가끔 그 분노의 대상이 부모나 가까운 이웃일 때도 있고 하느님일 때도 있다. 때로는 그 분노가 하느님에 대한 저항으로 또는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부인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지만 이를 불신앙이나 미숙한 신앙으로 볼 수는 없다. 사람들과 하느님께 분노했던 예레미야(18,23 참조)나 욥(10,8-9; 16-17 참조)의 신앙을 미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김인호 루카 - 대전교구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신앙도 레슨이 필요해」,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하기」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성찰」, 「너무 빨리 용서하지 마라」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8년 5월호, 김인호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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