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화)
(백)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강론자료

2018-04-15.....부활 제3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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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4-28 ㅣ No.2202

부활 제3주일 (나해)

사도 3,13-15.17-19           1요한 2,1-5ㄱ         루카 24,35-48

2018. 4. 15. 이태원

 

주제 : 복음을 믿고 따르는 어려움

사람의 삶에는 옳고 바르게 여기는 일이 많습니다. 옳게 여기는 것은 계속되어야 할 일이고, 옳지 않은 것은 바뀌어야 할 일입니다. 다양한 일을 만나면서, 사람은 자신의 귀로 듣고 따르는 내용이 옳고 바른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드러나는 내용에 따라 신념이 있다고 여길 것인지, 고집을 부린다고 할 것인지 표현은 다르지만, 사람의 삶은 다양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얼마나 옳다고 여기십니까? 옳다고 여긴다는 것의 의미는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는 뜻도 될 수 있고, 나에게 손해가 된다고 해도 마음을 바꾸지 않아야 한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서 특별한 일을 하신 하느님의 업적을 기억하고,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 삶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신앙인으로 사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사실 때로는 질문이 많아도 응답을 얻을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대답을 얻을 수 없다면, 허탈하고, 허망하고, 내가 왜 그렇게 힘을 쓰고 살아야 하는지를 질문하겠지만, 그 대답도 얻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세상의 대답을 듣겠다는 도전입니다. 도전이라는 낱말의 뜻은 상대에 맞서 싸움을 거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내가 상대방을 이기고 싶고, 내가 상대방을 내 뜻대로 이끌고 싶을 때 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니 도전을 설명하면, 반드시 한쪽은 지게 돼 있는 것이 정해진 순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신앙의 자세로 누군가에 도전한다면, 그 싸움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에 이길 것인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싸웠을 때 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싸움에 나서는 사람이 생각할 내용은 아닙니다.

 

신앙인의 삶을 싸움이라고 설명하면, 그 신앙을 충실하게 지키고 드러내는 사람으로 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자기 주변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을 향하여, 무슨 힘으로 큰소리를 쳤을까요? 그렇게 선포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바꾸고 돌아온다고 생각했을까요? 보장과 확증은 없는 세상에서, 베드로사도는 무엇을 믿고 그렇게 살았을지 생각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중요한 일에 부딪혀보자는 것이고 우리의 행동을 살피는 일입니다.

 

베드로사도가 선포한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조건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죄가 지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누가 지울 수 있는지 주체로 나온 표현은 없습니다만, 사람이 자기 삶을 돌이킨다는 것은 죄가 삶에서 지워지게 하는데 중요한 조건입니다.

 

어제나 오늘에 등장한 내용은 아닙니다만, 요즘 들어서 신천지와 제7안식일재림교를 비롯하여 많은 종파가 선교에 열을 올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을 모른다거나 잘 대하지 않은 우리 신앙인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에 따라 우리 신자에서 많은 사람이 그리로 넘어갑니다. 전에 신앙인으로 살던 사람들이 처음 들은 기상천외한 가르침을 만난 것처럼 생각하고, 그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으로 살기만 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신앙을 내던져도 아무런 잘못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겁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의 내용을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이유도 없지만, 그들은 2000년을 지켜온 믿음의 내용에서,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것들을 골라 이제까지 듣지도 못한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성체성사를 거부하고, 고해성사를 부정하며, 교황과 주교들을 사탄의 하수인으로 해석하고, 예언서의 말씀이 자기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놀라운 주장을 하며, 천주교회만 사라지면 옳은 세상이 될 것처럼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자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을 따라 그리로 넘어갑니다. 3년 전 사무실 옆, ’마르코방에서 월요일에 성경공부를 한다고 모였던 사람들도 그들의 하나였다는 것을 늦게 깨달은 일이 있습니다.

 

복음을 믿고 따르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서 구운 생선을 받아 드시는 모습으로 당신의 부활을 실증하셨지만, 그 모습을 보고나서 제자들에게 부활의 믿음이 생겼을까요? 믿음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자리를 잡는지 사람이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엠마오에서 돌아온 두 명의 제자가 전하는 얘기를 듣고, 예수님께서 구운 생선을 드시는 것을 보았지만, 제자들이 참다운 사람으로 살게 되었는지, 그다음의 일을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태어나시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의 위에서 당신의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그렇게 시작된 구원이 우리를 통해서 펼쳐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는 사람이겠습니까? 그리고 현실에서 내가 드러내는 삶의 모습이 예수님께서 원하신 일을 실천하는 것인지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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