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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17: 읽고, 생각하고, 쓰게 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성교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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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01 ㅣ No.1495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17) 읽고, 생각하고, 쓰게 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성교육 ①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사도행전 9,8)

 

 

성관계를 재미있게 강요하는 사회

 

“‘노팬티 스킬’을 실제로 구사할 때는 이런 방법을 써보라고 제가 조언한 적이 있는데, 약간 어둑어둑한 레스토랑 같은 데서 술을 같이 먹다가, “잠깐, 자기야 나 화장실 좀” 이렇게 말하고, 갔다가 오는 길에 “자기야 손 좀” (말하고) 손을 주면, “(팬티를) 꺼내 가지고 이렇게 (주는)….” 

 

(노팬티 스킬 : 여성이 입고 있는 팬티를 벗어서 호감이 있거나 연애 상대인 남성의 손에 쥐여줌으로써 성관계를 제안하는 유혹의 기술)

 

사석에서 나누는 음담패설이 아니다. 큰 인기를 끌었던 TV 토크쇼 ‘마녀사냥’의 한 장면이다. 한 패널의 이 말이 이어지자 곧바로 사회자는 남성들의 반응을 조사한다.

 

“여자 친구가 이렇게 해주면 상당히 자극적이고 끌릴 것 같다? 어떤가요? 버튼을 눌러주세요. 솔직하게요. (결과) 보겠습니다. 15명 중 12명이 좋다고 선택! 와~~”

 

이 프로그램은 성관계가 없는 남녀의 연애를 큰 문제로 인식하고, 성관계 성공을 위한 여러 가지 유혹의 기술을 조언해줬다. 사귄 지 2년이 넘었는데 성관계 하자는 말이 없는 남친을 문제라고 여긴 여성이 남친을 신고하고, 특별 기술의 전수를 약속받는다. 프로그램에선 여친은 성관계를 너무너무 원하는데, 남친이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유지되는 순결을 두고는 ‘강제 순결’이라고 명명한다. 20대 커플이 성관계 없이 연애하는 것 자체를 중병으로 다룬다. 사실인지 의심스럽다면, ‘마녀사냥 레전드’로 검색해 보면 된다.

 

호기심과 욕망만을 자극하면서 성을 그저 쾌락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가벼운 대화가 공신력 있는 방송의 형태로 전파되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겐 이들이 하는 말이 곧 따라야만 하는 규범처럼 인식된다. 일부의 하위 문화에 불과했던 내용이 개방의 명분으로 방송을 타면서 주류 문화화했기 때문에 대학 2~3학년인데도 성 경험이 없으면 오히려 친구들 사이에서 ‘샌님’, ‘중전마마’라고 불리며 놀림감이 된다. 우리는 성관계를 강요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진실에 눈뜨게 하는 첫 작업은 ‘읽기’

 

이런 사회에서 성(性)은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이나 돌려먹을 수 있는 음식쯤으로 취급받는다. 성이 인간의 존엄성과 결부되기 때문에 절대로 물건이나 도구로 취급될 수 없다는 상식은 머리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다. 심리적 무방비 상태에서 ‘마녀사냥’과 같은 상업적 영상물만 재미있게 본 결과다. 책임과 인격의 가치가 진입을 시도하면 이미 자리 잡은 생각 ‘섹스=게임’이 밀쳐내기 때문에 교육자가 상처받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어떤 교육적 접근을 해야 할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럽다는 생각만 들었다. 애초에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더욱 성관계를 안 할 것이다. 많이 사랑하면 그냥 자연스럽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뭐 하게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였다. 아무리 사랑해도 하기 싫을 수 있는 것이고, 남들이 다 한다고 나도 해야 되는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다. 나는 지금까지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절대 성관계를 안 할 것이다. 성인이 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정말 싫다. 나는 책임질 자신이 없다. 아이가 생기면 현실적으로는 ‘낙태를 해야겠다’며 가볍게 말하지만 내 성격으로는 낙태를 못 할 것 같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하기 싫으니 안 하는 게 마음 편하다.”

 

보건교사가 고민이 많아 보이는 중2 여학생을 발견해 상담한 후, 책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사랑과 책임의 성교육 편지1」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는 과제를 내주고 받은 글이다. 교사는 ‘더럽다’는 생각도 문제라고 판단해서 2차 상담을 했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같은 반 남학생이 계속 “성관계 하자”고 했고, 여학생이 장난으로 “그래”라고 했더니 남학생은 구체적인 계획을 말하면서 성관계를 강요했던 것이다. “교실에 8시까지 와라.”, “학원 화장실에서 보자.”, “공원 놀이터에서 보자.” 등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여학생은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냥 장난이었어”라고 했더니 나중에는 남학생이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그후 그 친구를 교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더럽다’라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마구마구 올라왔다고 했다. 면담 후 진행된 읽기와 쓰기 교육이 여학생에게 문제의 뿌리를 드러나게 해서 인식시킨 것이다.

 

 

거짓을 물리치는 ‘읽기’와 ‘쓰기’의 힘

 

“나는 지금까지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는 독서를 통한 자기 성찰이다. 여학생은 왜 ‘성관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TV, 인터넷, 스마트폰을 통해서 일상적으로 보는 내용들이 때로는 은근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하라는 메시지를 주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학생은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무의식에 들어와 있는 생각이 내가 주체적으로 형성한 것도 아니고 또 거기에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책임질 자신이 없다”는 책을 읽었기 때문에 성관계에 따르는 책임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는 뜻이다. 상업적 영상물에서는 전혀 보여주지 않고, 피임교육에서는 콘돔으로 임신을 막을 수 있다고만 쉽게 말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이 ‘책임’인데 읽기와 쓰기가 책임의 정확한 내용을 일깨웠다.

 

여학생이 거짓을 물리치고 진실을 인식할 수 있었던 이유는 훈련된 교사의 상담, 독서, 쓰기 지도가 있었던 덕분이다. 거대 기업이 주도하는 매체의 횡포를 봉쇄하기는 어렵다. 성을 쾌락의 도구로만 각인시키는 영화, 드라마, 뮤비, 광고, 포르노 등의 제작과 유포를 차단하기가 불가능하다면, 이것을 걸러 볼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을 키워서 기업의 영업 활동을 무력화시키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성교육’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이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도덕적 문제를 매우 피상적으로 다루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고, 도덕적 가치들 안에서 우리가 성숙하는 길을 제시해주는 교육이 필요합니다.”(「복음의 기쁨」 62쪽)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4월 1일, 이광호 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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