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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서울대교구 도림동성당: 6.25 전쟁 때 이현종 야고보 신부와 서 마리노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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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3-07 ㅣ No.1754

[신앙의 땅] 서울대교구 도림동성당


6.25 전쟁 때 이현종 야고보 신부와 서 마리노 순교

 

 

1950년 7월3일 오후 2시, 북한군 두 명이 도림동성당에 들이닥쳐 성당 관리인 서 마리노를 잡아간다. 한 시간 뒤, 북한군 30여 명이 마리노를 끌고 성당으로 오는 것을 본 이현종 야고보 신부님은 로만칼라로 정장을 하고 성무일도를 든 채 성전으로 당당하게 발을 옮긴다. 성전에서 만난 북한군이 “너는 무엇하는 사람이냐?”라고 묻자, 신부님은 서슴지 않고 “나는 이 성당의 신부요.”라고 한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탕! 탕! 탕! 총성이 성당을 울리고, 신부님은 그 자리에 쓰러진다.

 

“나를 죽이는 것이 그렇게도 원이라면 마저 쏘시오. 당신들이 내 육신은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이오.”라고 하시자, “너는 남의 돈을 착취하여 생활하는 자 중의 하나 아니냐.”라며 다시 총을 난사한다. 총소리에 놀란 마리노가 급히 뛰어나오자, 북한군은 마리노에게 “너는 무엇 하는 사람이냐”라며 총을 들이댄다. “나는 이 성당 일꾼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구가 불을 뿜는다. 북한군이 떠난 후 이 광경을 숨어서 목격한 안정순 자매와 사제관 식복사 정 막달레나가 조심스럽게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아직 숨이 붙어 괴로워하던 신부님은 “마리노는 죽었으니 그를 위해 기도해주어라. 그리고 내 고모에게 연락 좀 해다오.” 라고 힘겹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이렇게 돌아가신 이현종 야고보 신부님은 6.25 전쟁 때 한강이남에서 순교한 첫 번째 사제가 되었다.

 

- 순교기념비.

 

 

6.25 전쟁 초기, 한강 이남에 방어선을 친 국군이 북한군의 도하를 저지하려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때, 한강에서 직선거리로 3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도림동성당은 총소리와 포탄 터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피난행렬이 끝없이 이어질 때, 도림동 주임신부님도 야고보 보좌신부님과 함께 6월28일경 하우현으로 떠나셨다. 하지만 야고보 신부님은 아직 남아있던 신자들 걱정에 다시 돌아와 성무를 집행하셨다.

 

2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봉사단체인 ‘기사회’와 마리노가 신부님과 함께 했다. 하지만 6월30일쯤 전세가 더욱 악화되자 기사회 회원들도 대부분 떠나고, 야고보 신부님은 마리노에게도 피난을 권유했으나 마리노는 남아있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평소와 다름없이 미사를 드리고 성무를 보며 신자들과 함께 하셨다. 7월3일 새벽, 북한군이 탱크를 앞세워 한강철교를 지나 물밀듯 내려와 마침내 한강방어선이 무너지고, 국군이 서둘러 남쪽으로 이동한 뒤까지도 의연하게 성무와 성당 일을 하던 두 사람은 그날 북한군에 의해 순교를 하게 되었다.

 

 

6.25 전쟁 때 한강이남에서 순교한 첫 번째 사제

 

이현종 야고보 신부님은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해곡리에서 1922년 7월14일 이범옥 마르코와 신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3살 때 어머니가 선종하자 아버지는 큰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렸다. 졸지에 고아가 된 야고보 신부님은 신앙심이 큰 고모들과 삼촌의 손에서 자랐다. 특히 큰 고모인 막달레나는 동정녀로, 야고보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어머니 역할까지 하며 조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 야고보 신부님 동상.

 

 

어릴 때 복사를 한 야고보 신부님은 1937년 소신학교인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1944년 본과인 성신대학교 철학과정에 진입, 1950년 4월15일 명동성당에서 노기남 주교님의 집전으로 동료 9명과 함께 사제 서품을 받고, 4월22일 도림동성당 보좌신부로 부임하여 순교하기까지 충실히 하느님의 종으로 봉사했다.

 

서봉구 마리노 형제는 1926년 7월3일 강원도 회성군 공근면 갈마곡에서 태어났지만 길에서 떠돌다 5살 때인 1931년에 당시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풍수원성당 주임신부님의 손에 거두어져 세례를 받고 본당 고아원인 영애원에서 길러졌다. 그 뒤 이 성당 출신인 정원진 루카 신부님이 1941년 도림동성당 2대 주임신부로 부임하면서 마리노를 데리고 왔다. 마리노는 루카 신부님이 프랑스에서 구입하여 도림동성당에 설치한 종을 처음부터 타종하는 등 삼종지기와 성당 관리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생각하고 충실히 수행하였다. 마리노는 친구들이 놀려도 웃음으로 대하고, 신부님 말씀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실행했다고 전해진다.

 

 

서울에서 4번째로 설립된 유서 깊은 본당

 

도림동성당은 야고보 신부님과 마리노 형제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1963년 준공한 새 성전의 머릿돌에 “이야고보 신부 순교 기념”이라 새기고, 1988년 7월2일 정식 추모행사를 시작으로 1989년 7월3일에는 순교기념비 제막식을 가졌으며, 야고보 장학회를 설립하여 장학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또한 2017년부터 순교기념관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오는 7월 순교비가 있는 자리에 기념관을 완공할 예정이다. 이 기념관은 야고보 신부님과 마리노 형제의 삶과 순교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형상으로 지어져, 신부님께서 쓰셨던 유물과 마리노가 매일 쳤던 종 등이 전시될 예정이다.

 

성당 순례를 위해 버스를 이용할 경우, 도림새마을금고에서 하차하여 건너편 자이아파트 쪽으로 올라가면 돈보스코 유치원을 만난다. 성당 문을 지나 유치원 오른쪽으로 따라가면 갈색으로 된 순교터가 보인다. 이 순교터 표식을 끼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위쪽에는 순교비가 세워져있다. 순교비를 지난 몇 계단 위 오른쪽에 야고보 신부님 동상이, 왼쪽으로 은행나무를 가운데 둔 성전과 회랑이 보인다. 회랑이 시작되는 입구에는 요한 보스코 성인상이 있으며, 이 회랑을 따라 왼쪽으로 쭉 가면 5월에 아름다운 장미꽃으로 둘러싸이는 성모상과 성전입구에 이른다.

 

넓은 공간과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도림동성당은 3월부터 주말마다 혼배미사가 끊이지 않는다. 도림동성당은 서울에서 4번째로 설립된 본당으로, 현재 6천여 명의 신자들과 3개 꾸리아 360여 명의 레지오 단원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3월호, 박연근 아오스딩(서울 S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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