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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복음으로 세상 보기: 집은 사람이 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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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09 ㅣ No.1460

[복음으로 세상 보기] 집은 사람이 사는 곳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 천벌을 받아야 해!” 음식의 생산이나 유통과정에서 인체에 유해한 첨가물을 넣었거나 유통기한을 속였거나 혹은 품질 표시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음식물에 관한 사고가 나면 늘 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먹을 것에 대한 부정이 생겼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관대하지 않습니다. 생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식주라고 하여 먹을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던 집에 대해서는 입장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정부부처의 공직자를 임명하면 청문회라는 것을 국회에서 합니다. 이 사람이 공직자로서 적절한 자질을 갖추었는가를 심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직 후보자들의 대부분이 갖고 있는 부적절한 사유가 있으니 바로 집에 관한 것입니다. 위장전입이니 다운계약서니 하는 것입니다.

 

위장전입은 거주지를 실재로 옮기지 않고 주민등록법상 주소만 바꾸는 것입니다. 현재 살고 있는 것과 다른 곳의 좋은 학군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하여 위장전입을 하는 것입니다. 다운계약서는 실재 금액보다 적은 금액으로 계약서를 체결하는 것입니다. 탈세를 위한 것이지요. 그리고 재산 목록을 보면 혼자서 많은 집을 가지고 있거나 미성년자인 자녀의 이름으로도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내용도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70년대 이후 집장사라는 것이 생기면서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재산의 증식을 위해서 사고 파는 수단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재산을 모은 사람을 수단이 좋은 사람, 성공한 사람으로 보게 됩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도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의 사람들이 35%의 주택자산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840여만 가구가 자기 주택이 없는 무주택자이며, 반면 11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가구는 3만7000가구였습니다. 쏠림현상이 무척이나 커 보입니다. 분명한 불균형입니다.

 

지금도 ‘땅부자’라는 말이 있고,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집이 사고 파는 집이 되었을 때 정작 그곳에 살 사람들은 지속적인 빈곤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인식은 집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거 빈곤층의 모습을 살펴보면 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곰팡이와 습기로 가득 찬 환경, 세균과 바퀴벌레에 시달리며 철마다 감기와 바이러스성 질환을 달고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열악한 주거환경에 살 수 밖에 없는 아동 청소년들의 고통은 더합니다. 보금자리의 집이 아니라 불안하고 두려운 집입니다.

 

 

사유재산이라도 다른 이들의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라면 즉시 물려야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빈민들과 함께 한 대회에서 “우리 사회에 집이 없어 고통 받는 사람이 있는 한 누구도 호화주택을 짓거나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사회적 권리가 없고, 최저 생계비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누구도 호의호식할 수 없다.”며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신앙인들의 동참을 호소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런 호소에 동참하며 90년대 말 전세 값 폭등이 있었을 때에 전세 값을 올리는 것을 자제한 신자들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한편에서는 내 집 내 마음대로 하는 것에 대해서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다며 사유재산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의 거처를 마련하셨습니다.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당신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마련하고 제비도 제 둥지가 있어 그곳에 새끼들을 칩니다. 행복합니다, 당신의 집에 사는 이들!”(시편 84) 그리고 복음의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다 마련해 주실 것이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셨는데 우리 시대에 한쪽으로 치우친 궁핍과 빈곤은 도가 지나친 것입니다. 무엇인가 잘못 놓아진 것이 분명합니다.

 

교회는 개인이 지닌 사유재산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재산에는 공공의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를 ‘재화의 보편적 목적’이라고 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 182항에서는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을 이야기하는데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은 가난한 이들, 소외받는 이들, 어느 모로든 자신의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는 생활 조건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다시 한 번 강력히 확언하여야 한다.”고 표현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 178항은 “재화의 보편적 목적은 그 합법적 소유자가 자기 재화를 사용하는 방식에 의무를 부과한다. 개인들은 자기가 가진 자원을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고 써 버리기보다는, 자신과 자기 가족만이 아니라 공동선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방식으로 활용하여야 한다.”고 정리합니다. 즉 자신이 가진 사유재산이라 하더라도 사유재산의 소유나 사용이 다른 이들의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라면 즉시 물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이 재산이 됩니다. 가격이 매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아파트, 똑같은 평수라도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다른 물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회사의 같은 제품은 원가에 따라서 어느 곳에서 팔든지 같은 가격입니다. 땅값이 지역마다 달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땅의 주인이 아닙니다. 땅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땅은 없습니다. 다만 잘 사용하다가 하늘나라로 갈 때에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에 다시 내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재화의 격차가 빈곤을 만들어냅니다. 그 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불균형은 지속적으로 가속이 붙습니다. 한 번 부자는 영원한 부자요, 한 번 빈민이면 영원한 빈민입니다. 차별 없는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로 보더라도 공정하지 않은 일입니다.

 

 

집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 역시 비난받아야

 

그 집을 다시 사람이 사는 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집의 기능을 단순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고 팔아서 재산을 증식하는 도구가 아니라 가족이 모이고, 따뜻한 저녁을 나누고, 하루의 피로를 풀고, 서로의 애정을 키워나가는 거룩한 성장의 자리가 바로 집입니다. 사람을 맞아들이고 회복하고 성장시키는 자리가 집입니다. 그런 집이 재산을 늘리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 환대도 회복도 성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제 빈곤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게을러서, 변변치 못해서, 능력이 없어서 빈곤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어서 자신의 수입의 상당한 부분을 주거에 사용하는 주거빈민들에게 가족을 양육하고 노후를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 스스로만이 책임질 일이 아닙니다. 정치공동체라고 불리는 국가의 책무가 여기에 있습니다. 집값을 안정시켜서 누구라도 자신의 집에서 살도록 해야 합니다. 거품으로 가득 찬 집값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낮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받듯이 사는 집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 역시 비난받아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리를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의 가난을 대가로 내 재산을 불렸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사무엘기 하권 12장에서 예언자 나탄은 양과 소가 매우 많은 부자가 자기 손님에게 대접하기 위해서 이웃의 가난한 자의 유일한 한 마리 양을 잡았다며 밧 세바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적진에 내보내 죽게 한 다윗 왕을 힐난합니다. 자기 것을 무한 증식하기 위해서 가난한 이들의 몫을 빼앗았으니 말입니다. 혹시 우리를 통해서 그런 고통을 받고 있는 이웃은 없을지 다시 한 번 살펴야하지 않을까요? 집은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1월호, 나승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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